brunch

매거진 소소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공기 Nov 15. 2017

쇠고기 뭇국

신장개업 상호미정ㅣ 곽정빈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원래 국이나 찌개는 잘 먹지 않았다. 어쩌다 국이 나오면 건더기야 조금씩 건져먹기는 했지만 국물을 바닥까지 긁어 먹은 적은 맹세코 거의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제와 그 이유를 추측해보면 왠지 모르게 국물로 배를 채울 바에야 다른 반찬으로 하는 것을 선호했던 것 같고, 가뜩이나 나트륨은 줄일수록 건강에 좋다는 항간의 말을 의식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그 국이란 것을 꽤나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잘 모르겠다. 이제껏 딱히 국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러하듯 이제 와서야 국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분명하지는 않다. 오랫동안 해외를 돌아다니며 한식을 고파했던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집을 나와 홀로 독립해 살다 보니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국을 선호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유가 어찌됐든 나는 지금 그 국을 즐겨 하고 있다.



쇠고기 뭇국을 했다. 처음 해보는 것이었지만 어려울 것은 전혀 없었다. 국거리용 쇠고기, 대파, 무, 마늘, 양파 등 갖가지 재료들을 다 때려 넣고 오래도록 끓이기만 하면 된다. 국이란 시간의 힘을 이용하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재료의 맛이 국에 진하게 배어져 나오는 법이다. 설령 너무 졸아버리게 되면 물을 더 넣고, 그러다 다시 너무 싱거워지면 다시 오랜 불로 졸이는 것. 자고로 짠맛 정도를 구분할 수 있는 미각만 지녔다면 국은 결코 망할 수가 없는 요리다.


이전 직장이 있는 창원에는 한 유명한 사골꼬리곰탕 집이 있었는데, 그 가게의 전면에는 사람만큼이나 큼직한 네 개의 솥이 비치되어 1년 365일을 쉬지 않고 사골을 끓여내고 있었다. 각각의 솥에는 숫자가 끊임없이 갱신되는 가스 계량기가 보기 좋게 매달려서 마케팅으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개업한 이후로 단 한 차례의 멈춤도 없이 계속해서 사골을 우려내고 있다는 뜻일 테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한 국을 오래도록 끓일 경우에야 그 맛이 깊고 진해지는 것이지, 이미 수 차례 고아낸 사골로 새 국을 끓인다고 맛이 깊어질 리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되려 죽고 나서도 결코 죽어지지 못하고 있는 토막 난 소들이 다 불쌍할 따름이다. 오죽하면 흔한 시쳇말로 이젠 그만 좀 우려먹으라는 표현까지 생겼겠는가?


최근 한 프로젝트가 끝났다. 지금 이 회사에 들어와서 맡게 된 첫 프로젝트였고, 최초 설계단계부터 양산단계까지 손수 진행한 것은 내 커리어에 있어서도 처음이었다. 근 8개월 정도의 시간동안 수많은 기술적 문제에 봉착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신규 부품과 회로도 여럿 적용해보고, 외부 시험연구소를 수 차례 방문하며 세상에 내보인 나만의 첫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영업부에서 온 반응은 냉랭했다. 해당 제품의 단가가 너무 높아 팔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황당했다. 내가 입사하기 이전에 이미 기획된 프로젝트였고, 목표단가에 대한 언질은 단 한 차례도 받은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내가 담당한 회로 파트는 단가를 낮출 여지도 없는 영역이었다. 어찌됐든 현 시점에서 그 프로젝트의 최초 기획자이자 승인자는 지금 이곳에 없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이미 투입된 개발비에 대한 책임 소지도 허공에 떠버렸다. 괜히 건드렸다가 불거질 문제를 애써 드러내서 감당할 부서가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양산 목전에서 잠정 보류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한 일 이주 동안은 자리에 마냥 멍하게 앉아만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이 모습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로 솥에 풍덩 빠져서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위해 마냥 오래도록 고아진 국거리 꼴과 다름없지 않은가. 기껏 끓여냈더니 이 국은 이제 못 먹을 것이란다. 사실 별일은 아니다. 회사에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한 것이다. 심지어 그 동안 월급은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지 않았는가. 내가 아니었다면 그 누군가가 했어야 할 일이고. 어차피 며칠 있다가는 또 다른 국을 끓여내야 할 것이다. 딱 그 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국가의 국민으로써, 한 조직의 임직원으로써, 한 단체의 구성원으로써 그런 낱낱의 개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곳엔 마치 아무리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려 보아도 결코 볼 수 없는 담장 너머의 그 어떤 것이 있는 것만 같다. 지난 10년 간 이 작은 반도 국가에서 일어난 일들은, 과연 그 10년 간의 우리 국민들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나. 그렇게 생각해보면 거대한 조직 안에서 개인의 힘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미약할 따름인 것이다. 미약해서 너무도 무력하다.


최근에 고향 친구 결혼식으로 창원엘 다녀왔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그런지 날은 꽤나 쌀쌀하고 바람은 차가웠지만 시청 앞 로터리 앞에는 수감번호 503의 석방을 요구하는 행렬이 운집해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광화문 광장 정도에서만 일어나는 지극히 의도된 관제시위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작은 지방 도시에서도 그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멍하니 그렇게 한 동안 그들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각기 제 자리에서 자신들의 전력을 다해 끓여낸 그 국이 결국 아랫 세대들에게 감당하기도 벅찬 큰 멍에와 굴레가 되고 있다는 것을...


당연히 모를 것이다. 아니 애써 모른체 하는 것이다. 그들이 태극기를 흔들어가며 지켜내고 있는 것이 어찌 저 썩디 썩은 수구꼴통들의 기득권이겠는가. 자신이 빚은 화살이 자신의 손주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시위를 당길 사람은 세상에 없다. 다만 그들이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어가며 이룩해 온 내 나라 내 땅.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리에 개최해낸 글로벌 IT 선진 강국. 대한민국. 그리고 그 눈부신 성장의 상징이었던 어느 한 일본인의 늙은 딸. 믿기지 않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 지난 자신의 모든 삶을 부정하는 일일지도... 그것마저 무너지면 그 삶은 얼마나 초라할까. 말라 비틀어져 더이상 우려낼 것이 없는 국거리처럼.

 

근래 내가 국을 좋아하게 된 만큼이나 그들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그 모습 또한 내 모습이기도 하니까. 국거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해가며 국물을 우려내듯이 그대들 역시 그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 무엇인가를 위해 소진되어 오지 않았는가. 설령 그것이 공허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곽정빈님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2. 소설쓰기란 무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