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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Nov 15. 2017

2. 소설쓰기란 무얼까?

소소하다 소설학당 ㅣ 한공기

나의 사부, 윤후명 작가님





소설을 읽는 행위와 쓰는 행위는 연결되어 있지만 분명 다릅니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와 관객과의 차이처럼 말이죠. 

배우도 한때 관객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공연을 보고 마법에 홀린 듯 빠져버린 경험을 한 후, 배우를 꿈꿨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대 밑에서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보이스 트레이닝, 발성, 신체움직임, 감정이입, 몰입, 상대배우와 교감, 즉흥연기, 노래 등등등 연습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분명 "내가 미쳤지. 이 힘든 걸 왜 하겠다고 이토록 고생하는 걸까..." 생각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초심을 잃지 않으며 정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설쓰기도 마찬가지 입니다. 

침대에 누워 새우깡을 먹으며 책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 "이 정도면 나도 하겠다. 나도 소설이나 써볼까?"

그렇게 소설쓰기를 시작해서 뭔가 끄적이다보면 분명 어느새 어떤 한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스토리가 막힌다거나 캐릭터가 미비하다거나 결말을 어떻게 낼지 모르겠거나 그리고 재미가 없거나...(쓰는 것도 읽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봐서 그 한계를 경험하니 안 한 것보다 훨씬 잘한 일입니다. 


저 역시도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저의 가장 큰 한계는 <쓸게 너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뭘 쓰더라도 제가 티브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것의 아류였습니다. 

과연 이것을 쓰는 가치가 있을까? 


만약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전의 그런 자신에게 돌아간다면 이런 애기를 해줄 것입니다. 


일단 소설 쓰기를 멈추고 에세이를 써라. 

소소하다에 가입하라 


아참! 그 때는 소소하다가 아직 없었겠네요. 그럼 " 네가 만들어." 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진 걸까요?)


커피를 만들려면 원두가 필요하듯이 소설의 메인 원료도 필요합니다.   

소설의 메인 원료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잠시 읽기를 멈추고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문장력? 스토리텔링 능력? 오락성? 장르?


아닙니다. 

가장 주 원료는 다름아닌 


나의 경험입니다. 



소설은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그 말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무수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가장 진솔한 소설을 써야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상상과 조사등을 통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캐릭터와 사건도 창출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경험하지 못했지만 작품의 밑바탕에는 내가 드러나는 진실을 써야 합니다. 


많은 작가지망생들이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쓴 소설이나 대본등이 아류에 머뭅니다. 

이는 들뤼즈가 언급한 시뮬라크르에 해당됩니다. 

복제의 복제의 복제의 무한한 반복...


그들이 하는 흔한 변명이 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


그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너가 유일하잖아. 너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봐"


즉 처음 소설쓰기를 접할 때 '소재주의'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특별한 소재로 독자를 사로 잡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우선 내가 아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우선입니다. 

내가 아는 이야기란 내가 경험하고 느낀 이야기입니다. 

글쓴이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인간의 정수, 그것이 소설의 본질입니다. 

그 다음이 흥미로운 사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시작은 자신이 겪은 인상적인 경험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현상과 그에 따른 사유를 교차하면서 글로 풉니다. 


소설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 현상 (객관적 사실) 

- 대사

- 생각 (현상에 대한 인상 및 심리와 과거회상)


이 세개가 융합되서 하나의 시선이 탄생합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에는 세상(규정할 수 없이 무한한)을 보는 단 하나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시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시선 속에 작가의 철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질문자> 잠깐만요, 소설을 쓰려면 꼭 어떤 철학이 있어야 하나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철학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소설이란 단순 어떤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실 소설을 써보기 전에 '시'를 많이 보고 써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의 맛은 문장입니다. 

그 문장 속에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소설도 마찮가지로 문장 하나하나에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결국 소설은 문장쓰기 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장에 소개되었던 예시 


지하철을 탔는데 이쁜 여자를 보았을 때를 가지고 풀어보겠습니다. 


지하철을 탔다. 

이쁜 여자를 보았다. 



이 단순한 사건을 가지고 어떤 문장을 쓸까 고민해 봅니다.


지하철 역을 향해 온 몸을 내던지며 달려갔다. 중요한 미팅이라 집에서 일찍 나와 버스를 탔는데 길이 무척 막혔다. 결국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평소에 운동이 부족했던 것일까? 얼마 뛰지 않았는데 숨이 금새 헐떡거렸고 종아리 근육이 너무 땡겨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개찰구를 지나 에스칼레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 지하철 도착 알림음이 들렸다. 숨을 진정 시키며 잠시 서있으려 했는데 또 어쩔 수 없이 달렸다.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자리가 꽉 차서 또 서있어야만 했다. 


차문에 등을 기대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다가 내 앞에 선 한 여인을 보게되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하고 있었다. 폰 액정에서 비치는 빛 때문인지 얼굴에서 빛이 났다. 하얗고 투명한 피부가 첫눈처럼 경이로워 보였다. 땀이 눈에 스며 들어갔는지 눈이 따끔거렸다. 눈을 껌뻑거리며 손으로 눈을 비비는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매년 첫눈이 올 때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것이 생각났다. 나풀거리는 눈송이를 보고있으니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손을 펼치니 그 위로 눈송이 하나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그 순간 시간도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눈송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교한 무늬로 꽃처럼 만개해 있었다. 너는 어디서 왔니? 눈이 깜짝 놀라지 않게 아주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눈은 점점 사라져 녹아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 문장들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쓴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쓴 것입니다. 

글에는 저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묻어납니다. 

선생님은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하듯이 써라.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저로서는 말하듯이 쓰는 법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숨을 쉬듯이 씁니다. 

말 하듯이 쓰는 것이나 숨을 쉬듯이 쓰는 것이나 똑같다 생각합니다. 

말과 숨에는 저의 철학이 담겨 있으니까요.  


결국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글로 자신의 철학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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