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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Nov 14. 2017

축제의 무게

11월의 키워드-축제 ㅣ 이건우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축제라는 단어 앞에서 머뭇거리며 씁쓸한 입맛만 다시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참으로 측은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언젠가의 나는 축제라는 단어만 들어도 두근두근 거리며 축제 그 스스로가 가진 거대한 에너지 자기장을 통과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를 바 없고,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만큼 무기력한 일은 없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제는 축제라는 말을 들으면 설레기는커녕 후회로 관철된 시간의 무게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기만 한다. 

누군가는 데이트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서, 혹은 친구들과의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 또 어떤 이는 단순히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막연한 기대감에서일 수도 있을 것이고, 인스타에 올려 자신의 소셜 라이프를 뽐내기 위해서이거나, 떼를 쓰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서 오는 등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축제가 가진 거대한 에너지 자기장을 견딜만한 사람들만이 참가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설사 타인의 손에 이끌려 참여한들 축제의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결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랬기 때문이며, 올해 초 우연히 지켜보았던 롯데월드타워 개관식 불꽃놀이 축제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 나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예정되었던 일정은 아니었다. 그저 점심에 친구와 함께 밥이나 한 끼 하고 헤어질 요량으로 잠실로 향했다. 잠실역 지하상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친구는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결국 약속시간이 한 참 지나서야 통화가 연결되었다. 짜증 섞인 말을 내뱉기도 전에 석촌호수 앞에서 자동차 사고가 났다는 친구의 말에 부랴부랴 현장에 달려갔다. 연결통로계단을 올라가 밖으로 나가보니 돗대기 시장이 따로 없었다. 핑크빛으로 물든 벛꽃나뭇길 아래에는 핑크빛으로 물든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고, 여기저기 설치되어있는 현수막을 통해 유례없는 불꽃놀이 축제가 오늘밤 롯데월드타워에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창한 주말의 봄날씨에, 만개한 벚꽃에, 거기에 전례 없는 규모의 불꽃놀이에 사람들을 바글바글 거렸고, 친구의 찌그러진 차 주변에도 바글바글 거렸다. 경찰들의 차량통제에 길은 무척이나 막혀보였다. 마음이 급했던 차와 양보하기 싫었던 차가 서로 다투는 와중에 친구의 차가 샌드위치로 박힌 꼴이었다. 나는 친구가 보험처리를 하는 것을 기다려주었고,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함께 가주었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밥을 먹다보니 같이 폭식을 했고, 한껏 부어오른 배를 쉬게 하기 위해 차를 한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롯데월드타워 불꽃놀이 시간이 다가왔고, 마침 친구의 집은 불꽃놀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베스트 스팟이었다. 

내 생애 그런 불꽃놀이는 처음이었다. 지상에서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의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불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이었다. 50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탑을 휘 감도는 불꽃 향연의 장대함과 기이함에 그저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불꽃은 터질 때마다 묵직한 폭발음을 내었고, 일초에 수십 발을 연달아 쏘아대는 폭발음은 온몸을 흔들어놓으며 이성을 마비시켰다. 가끔은 놀라움의 탄성을 내질렀고, 가끔은 환희의 탄성을 내질렀고, 그 마지막에는 두려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한 회분의 불꽃놀이 쇼가 끝나고 나면 자욱한 연기로 인해 탑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순간의 적막감,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무언가가 혹시라도 저 거대한 탑이 내 쪽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비현실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어딘가에서 쿠궁 하고 건물의 밑둥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기이잉 하며 철근이 휘어지는 소리와 함께, 와장창 하며 유리창이 일제히 깨져나면서 점점 내 시야 가득히 다가오는 거대한 탑의 종말. 그것은 곧 내 삶의 종말과 운명의 궤도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 또한 알았기에 나는 그저 이 운명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꿈꾸었던 삶의 가능성을 늘 환영의 세계에 유보해두기만 한 채, 현실에서는 불꽃 한 번 쏘아보지 못한 채 저 500미터가 넘는 탑의 무게에 짓눌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그것이 삶을 방관한 자의 운명이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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