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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Nov 17. 2017

플래쉬

KEYWORD ONE PAGE <플래쉬> ㅣ 김혜진

간호사 
저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결국 모든 것이 이 길 위에 있더라구요.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사람도, 글과 음악, 인생의 목적과 같은 것들이 행복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프로필ㅣ 김혜진 


피아노를 전공하고 이후 간호학을 공부하였음.

피아노 치는 간호사  

복지와 힐링에 관심이 많음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다. 태어나 처음 맞이하는 큰 볼거리였다. 캐나다에 사는 사촌언니가 통역을 위해 도우미 -지금은 자원봉사지만 그 땐 그렇게 불렀다 - 로 온다고 하니 부산과 가까운 지역을 크게 벗어나 본 적이 별로 없는 우리 가족에게는 당연히 큰 행사가 된 것이었다. 덥지 않은 계절이 오고, 우리는 노란 꿈돌이가 있는 대전으로 향했다. 넓은 공원같은 엑스포 행사장 입구에는 여러나라의 국기가 쭉 늘어서 있었고 곳곳마다 스튜어디스처럼 날씬하고 예쁜 언니들이 빨간색 모자를 쓰고 손을 흔들며 안내를 해 주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과학에 있어서의 발전과 미래로의 도약을 위한 국제 박람회였다고 하는데 여기저기 체험할 수 있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만져보고 작동시켜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긴 하지만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런것들이 잘 생각이 나지않고 도리어 뉴질랜드 마오리족이 인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오른쪽에는 마른 커플이, 중간에는 약간 통통한 커플이, 왼쪽에는 뚱뚱한 커플이 앞 뒤로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 어떻게 저렇게 세 커플이 왔지 하면서 재미있어 하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무릎을 치고 손을 흔들고, 안그래도 큰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가 하얀 솜뭉치 같은걸 돌리면서 노래를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해 보이던지 어린 나는 넋을 놓고 보았던것 같다. 과학기술보다도 내겐 마오리 족이 더 충격적이었었나보다.


축제. 축제는 언제나 그랬던것 같다. 행사장,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기억 속 몇 장면..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민감한 부류의 사람인 나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철마다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축제에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하지 않았을 뿐, 함께 했던 사람들과 봄엔 벛꽃이 피어 예쁜 캠퍼스로 유명한 경희대에도 해마다 갔었고, 에버랜드에 놀러가서 폐장 전의 불꽃놀이까지 보고 나오곤 했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그다지 남는게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막상 축제는 가고 싶은데 사람들한테 밀리고 치이면서 사람을 구경하러 온것인지, 축제를 즐기러 온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테니 차라리 조용히 산에 가든지 바다에 가고 말지 하는 심정이 들었었다. 하여 같이 나갈 건수(?)가 없을 때는 홀로 조용한 곳을 찾아간다거나 그런 시간을 즐기며 살아온것 같다.


그러던 지난 여름, 성주에 있는 아는 언니의 집에 놀러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언니가 참외 축제가 근처에서 열린다고 하여 멀리까지 갔는데 지역의 특별한 행사에도 한번 가봐야겠다 싶어 축제 기간에 맞춰 내려가게 되었다. 참외로 유명한 고장인 성주. 여름철 내내 과일을 파는 곳에서 성주참외를 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참외의 본고장이라니, 참외구경 제대로 한번 해 볼까. 문을 나서서 행사장을 향해 가던길, 축제를 위한 행렬이 시작되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드론이 날고 있었다. 


축제가 이루어지는 행사장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나와 참외를 먹는 모습, 멀리서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 나무 밑에서 그늘을 찾아 돌아다니던 어르신들의 모습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눈을 돌려보니 노란 참외로 만들어진 초가집, 주렁주렁 열린 참외밭, 노란색 포토존들이 있었다. 그 과일 색깔이 얼마나 예쁘던지. 과일가게에서 파는 참외들은 그렇게 예뻐보이지 않았는데 푸른 잎사귀들과 함께 있는 진한 노랑을 입은 참외들이 너무나 곱게 보였다. 휙 둘러보니 저 쪽 냇가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있고 건너편에는 민속놀이 체험장이 있다. 몇 가지 체험을 하고, 공연도 보고, 사진도 여러장 찍은 후 우리는 행사장을 나왔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축제를 떠올려 본다. 어떤 것이 기억에 남았지, 하며 마치 앨범을 펼치듯 나의 기억의 페이지를 넘겨보니 사진이 몇 장 나온다. 그 날엔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다녔지만, 도리어 추워지는 지금엔 따뜻한 햇살로 기억되는 여름날. 탐스럽고 예쁜 참외들, 그리고 도시에선 볼 수 없었던 참외 잎사귀들. 무엇보다 사람들이 함께했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가족들이, 친구들이, 그리고 우리들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수많은 축제현장을 다니면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교차로를 만들었던것 같다. 일직선 같은 한 사람의 생애가 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하면서 삶의 모습이 입체화되는 것처럼 축제는 시간과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플래쉬를 터뜨려 좋은 추억앨범을 채워주는 기사였던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순간, 각자의 다른 삶이 하나로 엮이면서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이미 얼마나 소중한 것이 되어 있는가.


문득 그저 '함께 한다는 것'이 항상 축제와 같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마치 축제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듯이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이리저리 치이면서 삶을 살기도 하는것 같다. 경쟁이 가득하고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사회가 만들어낸 부작용에서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으므로. 그러나 추억앨범이 가득한 오늘의 축제의 현장을 만드는 사람은 또한 "나 자신"이 되어야 할것 같다. 그것이 세상을 대하는, 사람과 삶을 대하는,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일 테니까. 특별할것 없는 사람도 축제에서는 주인공이 되는것처럼, 특별할것 없는 하루의 어떤 순간 속에서도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을 붙잡아 은빛으로 만들어 둘 수 있다면, 하늘을 빼곡히 채운 별들의 무리를 보는것처럼 우리의 삶도 매 순간이 빛날 수 있을텐데. 이제부턴 하루에 한 번 플래쉬를 터뜨려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 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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