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공기 Dec 18. 2017

공부하는 습관

KEYWORD ONE PAGE <습관>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얼마 전 수능시험이 끝났다. 지진으로 인해 수능 시험이 한 주 연기되다 보니 많은 수험생이 꽤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매년 이맘때면 시끌시끌하다. 수능시험은 작년보다 더 쉬웠는지 혹은 어려웠는지, 대학별 합격선은 몇 점인지 등등 그래서 나도 잠시 그 시절을 회상해보았다.


선생님들은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자주 강조했다. 공부는 습관이 중요하고,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이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데 좋다는 것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공부를 다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 잘하는 사람 치고 의자에 오래 앉아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더구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 태권도 등 운동을 좋아한 영향인지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독서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슨 책을 봐야 할지 고민이었다. 학교도서관보다 좀 더 친숙한 열린글방에 갔다. 항상 만화책과 비디오만 빌리다 보니 그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무협지, 연애소설, 베스트셀러 등 책도 상당히 많았다. 우연히 집어 든 책이 조창인 작가의 ‘가시고기’였다. 이후 김진명, 김하인, 조정래, 베르나르베르베르 등 몰입도가 높은 스토리로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독서의 재미에 흠뻑 빠지기 시작했다. 독서를 하면서 원래 계획대로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은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공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자율학습 시간이면 남들처럼 성문 영어나 수학의 정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와 조정래의 ‘한강’을 보고 있었으니, 지금도 그때 재미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학교도 정말 무자비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의 공부 철학은 일명 맞고 품는 스파르타식이었다. 체벌이 당연시되었던 시절이라 학업 증진과 성적 향상이라는 큰 목적에 따라 학생들을 엄청 때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성적만 오르면 된다는 의식이 아주 깊게 박혀 있었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졸업한 제자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선배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공부했는데 그것을 꽤 오랫동안 하니 습관이 되어버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도 새벽 5시 반이면 눈이 떠져서 그 시간에 틈틈이 외국어 공부를 했고, 현재 아주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즉 늦게까지 공부하라는 것도 모자라서 일찍 일어나서까지 공부하라는 건데 그게 당시에는 꽤 새롭게 들렸다. 그래서 나도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사실 알람시계가 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게 힘들고,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어렵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깨어 있는 시간이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암기과목은 최대한 피했고, 나도 그 선배처럼 외국어를 선택했다. 당시 상당히 유망하다던 중국어책을 펼쳤다. 중국어책을 읽는 둥 마는 둥 노트에 필기하는 등 마는 등 어렵게 첫날을 버텨냈다. 다음날에도 중국어책을 펼쳤다. 근데 문득 내가 왜 중국어 공부를 하는 지 궁금해졌다. 아직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제 2외국어가 중국어도 아닌 데 과연 내가 지금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게 맞을까?


결국은 중국어에서 수학으로 과목을 바꾸었다. 수학은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것이기 때문에 졸리는 새벽에 공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중국어 공부한다고 이틀을 보내고, 다시 수학 공부로 이틀을 견뎌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다 보니 낮에 졸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졸고, 쉬는 시간에도 졸고, 또다시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나를 보니 이것도 못 할 짓이었다. 그래서 4일 만에 포기했다.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한다. 나처럼 아예 습관이 안 되어 있는 사람은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는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것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등 2가지의 방법을 시도해보았다. 결과적으로 그 2가지 노력이 수능시험을 잘 보기 위한 결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니 인생에는 수능시험 외에도 무수히 많은 시험이 있다. 지금 보면 단지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다. 다만,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여러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미리미리 공부하는 습관을 만든 것으로 생각해볼 예정이다. 방 저편에 널브러진 저 책을 보고 있노라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윤성권 작가의 다른 글이 읽고싶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삶은 거대한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