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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Dec 18. 2017

피해망상 습관

KEYWORD ONE PAGE <습관> ㅣ 곽정빈


연구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또 좋아하는 책이 헤르만헤쎄의 데미안입니다. 그래서인지 평소 인간 본연의 양면성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말을 곧 잘하곤 합니다.


작가프로필 ㅣ 곽정빈

저는 3년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지난 1년간 세계여행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두 눈을 황홀하게 채우는 수많은 풍경들보다도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던 무지막지한 혼자만의 시간을 대면해야 했던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간들을 글을 쓰면서 채워 왔습니다. 글을 쓸 때 비로소나 나 스스로가 나 다워지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희미해져만 갔던 나의 자아가 글을 쓰면서 뚜렷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된 제 인생의 2막에서 지속적이고 전문적으로 글을 써나가고자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으로 대표되는 자기개발서를 읽지 않는다.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일 뿐이지, 그 7가지 습관을 답습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즈음 같은 시대에 성공의 기준은 대체 또 뭐란 말인가? 얄팍한 저자들의 상술을 경멸한다. 상술은 문장의 주어를 수험생, 방황하는 십 대, 취준생, 삼십 대 등으로 바꾸고 습관을 원칙, 핵심, 생존전략, 팁 등으로 바꿔가며 매년 반복 재생산된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 상술에 놀아나며 지갑을 탈탈 털어대는 사람들의 수준을 폄하하며 속으로 혀를 끌끌 찬다.

나로써도 본격적으로 자기개발서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던 중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했던 책이 바로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었다. 그 시절엔 어린 마음에 마치 세상의 진리를 담은 바이블이라도 발견한 양 벅찬 가슴을 달래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두세 권 정도가 끝이었다. 더 이상 자기개발서의 책장을 넘기는 일은 없었다. 가끔씩 아버지가 어디선가 가져오신 자기개발서를 읽어보라며 슬쩍 책상으로 밀어주셔도 읽는 시늉만 한 채 덮어버렸다.

실체가 없는 공허한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인데, 세상엔 셀 수 없을 만큼 얼마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데, 그렇게 간단하게 일반화해버리는 주장을 보면 배알이 꼴리고 심사가 뒤틀렸다. 너무도 쉽고 아무렇지 않게 성공을 운운하고, 해야만 하며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단언하는 것이 심히 못마땅했다. 그래서 서점을 둘러보다 자기개발서 서가를 마주치게 될 때면 마치 못 볼 꼴이라도 본 양 고개를 홱 돌렸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내 삶을 일반화시킬 순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대로 내가 정한 나만의 성공을 위해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바로 어제 점심시간 문득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이었다. 최근에 배우 유아인이 SNS 상에서 자칭 페미니스트라 일컫는 수많은 익명의 네티즌들과 언쟁을 벌이는 것이 큰 이슈였다. 일 대 다수의 싸움인데도 형세는 꽤나 호각지세인 듯했다. 유아인이 최근에 게시한 장문의 글을 클릭해 읽어본다. 재치 있는 비유와 어렵지 않으면서도 명료하고 지루하지 않은 문장에 빠져들며 한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중 한 지점에서 눈이 멈춰 섰다.

"저들은 실체 없는 공허한 프레임을 망상으로 가득 채워 폭력의 무기로 사용하고 그 폭력의 피해자들을 짓밟으며 여전히 '피해자 코스프레'로 스스로 면죄부를 가져갑니다"


순간 뜨끔했다. 멈춰 서서 내가 써 내려가던 프레임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일반화는 절대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어'라고 적혀 있었다. 일반화가 가진 불완전성을 근거로 일반화 자체를 부인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일반화를 부정하고 있는 꼴이었다. 저 스스로는 세상을 멋대로 일반화해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서, 원문보다는 요약정리된 요약 글을 선호하면서, 인터넷 기사와 가십거리를 소비하며 실체를 속단하고 있으면서, 일반화를 부정하는 꼴이라니 다름 아닌 키보드 워리어가 바로 여기 있었구나. 저 SNS에서 익명으로 자칭 피해자를 운운하는 이들의 잔상이 시야 앞을 스친다.

어쩌면 난 일반화된 문장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얼굴을 붉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코비의 책을 폄하했던 것은, 결코 그 세상의 성공이라 불리는 것에 결코 가까이 있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피해 망상은 아니었을까? 이 모습이야말로 정말이지 피해자 코스프레 그 자체 아닌가? 세상의 성공의 기준은 절대 돈이 아니야라고 외치면서 막상 나 자신은 돈 때문에 쩔쩔매고 있지는 않나? YOLO, Seize The Day를 되뇌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꼴은 또 어떠한가?

"그들은 옳고 그름을 볼 수 있으면서도 꿈에서 깨지 않고 현실을 스스로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당한 자신들의 존재와 영역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성공의 기준은 모두가 다 다른 것이라는 말은 아주 그럴싸한 변명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문장의 진의는 무시하고 내 편의대로 긁어다 붙여 입맛대로 사용했다. 세상에 통용되는 성공에는 조소를 던지면서, 정작 구체적인 내 삶의 성공은 그려놓지도 않은 채로 외면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명백히 내 삶에 대한 직무유기였다. 부끄럽다.

일반화. 예민한 감수성과 번뜩이는 통찰력으로 세상에 흩어진 낱낱의 것을 하나의 질서로 정렬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일련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사람은 일반화를 통해 세계를 더듬을 수 있고 그 과정의 끝에서 비로소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 가득한 일반화를 기꺼이 들여다보고 마땅히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비판할 것을 비판하면 되는 것이다. 일반화가 가진 한계가 결국 일반화의 가장 큰 축복인 것을...

자기개발서를 읽지 않고서 난 자기개발서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뉘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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