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공기 Dec 18. 2017

타임루프

12월의 키워드-습관 ㅣ 이건우

영화인


작가프로필 ㅣ  이건우

저는 영화연출을 전공했고, 영화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 매니아는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매니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나 캐릭터, 혹은 물음표가 있는 설정 등에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면, 마치 꽃에 물을 주며 어떤 나무로 성장할 지 궁금해하는 것 같이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키워나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이것 참, 초장부터 헛웃음이 나온다. 일 년의 마지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이 순간, 나는 데자뷰를 경험하고 있다. 분명 작년의 지금도 비슷한 순간을 맞이했던 것만 같은데. 제작년의 지금도, 아마 십년 전의 지금도, 큰 틀에서 나라는 사람은 그다지 변한 게 없다는 것 같은 생각이다. 결심하고, 실패하고, 후회하고, 우울해지고, 다시 결심하는 그 끝없는 쳇바퀴 같은 삶이여. 아...저 멀리 우울함이 넘실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침을 꿀꺽 삼키는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나 수없이 반복되는 타임루프와 같은 쳇바퀴 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흐르는 것에 역행하지 않으면 결코 원천에 닿을 수 없다. 흐르는 것은 모두 쓰레기에 불과하다.” 최근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무척 인상적인 구절이어서 형광펜으로 밑줄 쫙 했다. 하루키가 무슨 의도에서 그 말을 인용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내게는 습관이라는 것이 흐름에 역행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물론 내가 말하는 습관이란 악습에 한 한 것인데, 이 놈은 지독한 자기보호본능을 탑재하고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위기에 대처하는 반응이 빠르다. 마치 왕 옆에 바짝 붙어 아첨하는 간신과도 같고, 나라에 위기가 닥쳐도 체재 유지에 급급한 우둔한 공무원들과도 같다. 태생적으로 변화에 대해서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습관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인 우리가 변하게 되면 습관은 그 어디에도 기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습관이 흐름에 역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주범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처음에 언급한 타임루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 보려한다. 최근에 개봉한 ‘마이데쓰데이’라는 영화는 타임루프 소재를 호러 장르에 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살해를 당하는 여대생이 타임루프에 갇힌 이야기인데, 매일같이 죽어야하는 타임루프를 끊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인 자를 찾아내야 끝이 난다. 근데 그게 당연하게도(영화니깐) 쉽지가 않다. 쉽지 않은 것은 내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작년과 다르지 않은, 십년 전과 다르지 않은 내가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도출해낼 수 있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영화의 여주인공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주인공의 반복되는 하루는 나에게는 뻔하고 지루한 하루와도 같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죽고, 그만큼 기력을 소진한 만큼 지쳐버리고 말아, 반복되는 삶에서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꼴이다. 영화의 여주인공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죽게 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체념한다. 역설적이게도 체념을 하는 순간 새로운 삶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똑같은 매일을 살다보니 머리가 좋지 않은 여주인공의 눈에도 자신의 삶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명확하게 보이게 된다. 그녀는 인생을 헛산 것 같고, 자신의 주변인들도 이제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의 편협한 시선과 부적절한 욕망, 가족에 대한 트라우마, 친구와의 잘못된 관계설정 같은 자신의 악습이 만들어 낸 결과가 나를 둘러싼 세계라는 것을(본인은 몰랐겠지만) 깨닫고는 오히려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을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여주인공의 삶은 변해가고, 그런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전혀 다른 시각으로 자신을 살해한 용의자가 보이게 된다.


  뭐, 영화니깐 결국은 그렇게 자신을 죽인 자를 처단하고 다시 내일을 맞게 된다는 내용으로 끝나게 되지만, 우리 삶도 변화할 수 있는 핵심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를 만들어 온, 유지해 온 악습을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써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평소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안에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이동할 수 있는 요인이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건우 님의 글을 읽고싶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나'라는 자동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