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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29. 2018

낮술을 허하라

술시에 만나요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오늘 낮술 한잔할래?

-무슨 낮부터 술이야.


낮에 술을 마시는 것을 상당히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점심에 반주(飯酒)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그것도 손님이 오거나 특별하게 축하할 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다. 혹시나 누군가 점심을 먹으며 소주나 맥주를 곁들이는 모습을 봤더라면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팔자 좋다.


우리나라는 술을 좋아하지만, 낮술은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낮에 술 좀 마시는 것 가지고 무슨 불순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같은 행위라도 밤이라면 당연한 것이고, 낮이라면 이상한 것이다. 보통 저녁 술자리 시간은 10시나 11시 정도에 마친다. 집에 귀가하는 시간도 있으니 대략 3-4시간 정도 허용된 건데 그 시간 동안 즐겁고, 재밌고, 생산적이고,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하기에는 시간이 짧을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빨리 취하기 위해서 폭탄주, 양주, 소주처럼 도수 높은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다. 밤에는 좀 더 밀도 있고, 쾌락적인 것을 찾게 된다.


하지만 낮술은 그와 반대인 경우가 많다. 낮술은 상대적으로 허용된 시간이 길다. 급하게 취할 이유도 없다. 술을 마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대화가 목적이다. 또한 낮술을 마시면 술자리가 끝나도 아직 밤이 아니라서 좋다. 말을 빌려오면 ‘한참을 마셔도 해가 지지 않았다는 일종의 안도감. 여기서 끝이 아니라 해가 지고 나서 술을 더 마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바로 낮술의 묘미라고 한다.


-뭐야, 아직 4시밖에 안 됐잖아.


얼큰히 마셨는데, 아직 4시밖에 안 됐다.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시간에 술을 마시고 있으니,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난 소소한 일탈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집에 일찍 귀가할 수도 있다. 사실 낮술 마시면 더 빨리 취한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아마도 햇빛 때문에 금방 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간혹 낮술을 마시고 부모님을 식별하지 못하는 경우는 낮에 도수가 높은 술을 마셔서 취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낮술에 어울리는 술은 도수가 약한 것이 무난하다.


나도 가끔 점심시간에 낮술을 한다. 낮술은 일종의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낮술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덜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여유는 사치나 마찬가지이다. 여유를 부리는 것은 곧 경쟁에서 뒤처지고, 패배하는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낮술을 허해야 한다. 여유가 있어서 낮술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낮술을 하다 보면 여유가 생길 수도 있다. 햇볕이 따뜻한 낮에 야외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낮술 한잔에 마음도 여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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