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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Apr 29. 2018

눈오는 풍경

공통주제<눈> ㅣ화이

땅고댄서


어느 날 미드를 보다가 문득, 우리나라도 땅고를 매개로 한 드라마가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땅고라는 춤을 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작가 프로필 ㅣ 화이 

아르헨티나 땅고 댄서이자 땅고 아카데미 '엘 불린' 대표 

도서 '탱고레슨' 저자 



내 동생은 아빠를 닮아서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반면에 나는 스케치는 그럴 듯하게 해 놓고서도 물감을 칠하는 동시에 엉망이 되어 버리는 그림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엄마는 나와 내 동생을 아파트 단지 내의 미술학원에 보냈다.


  사실 진짜 학원도 아니었다. 그냥 집에서 애들 모아놓고 그림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마 허가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일이 성행했다. 아무도 법적으로 문제를 삼지 않았다. 또래의 초등학생 아이들로 바글바글한 그 집에서 고학년은 나뿐인 듯 했다. 아이들은 방이나 거실에 마음에 드는 공간에 자유롭게 이젤을 펴 놓고 스케치북을 얹어 그림을 그렸다. 매일 칠판에 그 날 그려야 할 주제가 적혀 있었다. 선생님이 그림 지도를 얼마나, 어떻게 해 줬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진짜 미술 그림보다는 만화에 가까운 일러스트를 더 많이 그렸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딱히 꾸짖거나 지적을 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내 그림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날의 주제는 ‘눈 오는 풍경’ 이었다. 나는 주변 아이들의 그림을 둘러보았다. 다들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하는 모습, 눈싸움을 하는 모습 등을 그리고 있었다. 식상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이었을 나는 이미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눈 오는 날의 다른 풍경을 그렸다.


  창밖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는 저녁에 엄마는 벽난로 앞의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강아지와 놀고 있다. 아빠는 일을 마치고 막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빠의 머리와 어깨에 눈이 잔뜩 쌓여 있다. 집 안은 훈훈하고 밝은 불빛으로 가득 차 있다. 밖은 눈이 오지만, 이 안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선생님은 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정확하게는 기억할 수 없지만, 눈 오는 풍경이 아니라는 지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눈이 오는 모습은 창밖의 전경으로 분명히 표현했고, 아빠의 머리와 어깨에도 드러나 있다. 눈 오는 풍경이 꼭 외부의 풍경이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눈이 오는 날이기 때문에, 더더욱 집안의 온기와 평화로운 저녁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왜 틀린 것일까.


  나는 그 날로 미술학원을 그만두었다.


  얼마 전 초등학교의 시험문제에서 하늘의 빛깔을 분홍색이라고 썼다고 오답처리를 한 채점방식을 지적하는 포스팅을 본 적이 있다. 정답을 미리 정해두고 그것을 외우라고 하는 주입식 교육방식에는 정말 화가 난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가두는 교육체계가 아닌가. 지금은 그것에 이의 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내 어릴 때만 해도 선생님의 권위는 하늘과도 같았다. 나는 속으로 그 체계에 반항을 했다. 싫어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보이콧 했다. 대신 그 시간에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곤 했다. 주로 무조건 외워야 하는 영어와 수학 과목이 그랬다. 어릴 때부터 되고 싶었던 외과의사의 꿈은 나의 반항심과 맞바꾸었다. 대신 나는 춤을 추었다.


  몸을 쓰는 직업은 추위와는 상극이다. 추우면 근육이 굳어지고, 그 상태에서 몸을 움직이면 근육이나 인대에 무리가 가서 부상이 따르곤 한다. 몸을 쓰면 땀이 나게 되긴 하지만, 몸이 더워질 때까지는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에어컨도 되도록 틀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나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다. 옷을 껴입으면 몸이 둔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게 싫어서 집 안에서 반팔을 입을 정도로 보일러를 세게 틀고 살곤 했다.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겨울이란 계절에 딱 한 가지 마음에 드는 것은 눈이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눈이 오면 걱정부터 한다지만, 나는 그래도 눈이 내리면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하지만, 사실 눈을 반기는 것은 단 몇 초뿐이다. 그 눈을 맞으면서 돌아다니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잠깐 눈을 맞으며 실감을 한 다음에는 얼른 다시 따뜻한 실내로 들어간다.


  가장 좋은 것은, 따뜻한 실내에서 커다란 창을 통해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날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이 아니라 집 안의 풍경을 그린 것은 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항심이거나 다른 사람보다 넓은 사고의 틀이 가져서가 아니라, 단순히 눈이 내릴 때 내가 있고 싶은 곳을 그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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