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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Jun 05. 2018

술시에 만나요 ㅣ 윤성권

재생에너지 연구원
책상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 속에서 좀 더 현실적이고 모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 프로필ㅣ 윤성권
평소에 꿈을 디테일하게 꾼다. 그것을 각색해서 쓰면 재밌겠다고 생각함



사람들은 말을 잘하고 싶어 한다. 달변으로 유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유시민 작가를 보면 그 욕구가 더 샘솟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은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다. 평소에 스피치 훈련을 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왔더라면 조금 낫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긴장감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더구나 무슨 말을 할지 멘트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하다 보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점점 말이 꼬일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면 평소보다 조금 더 격조 있고, 멋있는 말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러 어휘 중에서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 게 더 적절할까 고민을 한다. 하지만 긴장되고, 떨리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바로바로 해결될 어휘 선택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말이 꼬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많이 주세요’ 라고 할까 ‘넉넉하게 주세요’라고 할까?

-고맙습니다 라고 할까 감사합니다 라고 할까.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이럴 때 술을 마시면 즉 약간의 알코올이 몸에 들어오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술 마시면 말을 잘한다 라기보다는 머리가 단순해져서 상대적으로 적절한 어휘선택이 더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술 마시면 말을 더 잘한다고 느끼는 것 같다. 과거에 어떤 정치인이 ‘나는 술을 마시면 말을 더 잘한다’ 라면서 폭탄주를 여러 잔 마시고 TV 토론에 출연해서 해프닝이 벌어진 적도 있다. 그 사람도 술을 마시면 어휘선택이 더 잘되는 것처럼 느낀 것이 말을 더 잘하는 것으로 본인을 과대평가한 모양이다.


술 마시고 하는 말 때문에 우리는 울고 웃고 한다. 불교에서 말로 짓는 업을 구업이라고 한다. 대부분 구업을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술을 마셔서 그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술 마시면 용기가 생겨서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술 마시고 실수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술만 마시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을 끄집어내서 분위기를 망치거나, 술만 마시면 사람들을 속이는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연관해서 ‘취중진담’이란 말도 술꾼들이 편의에 맞게 만들어낸 용어라고 생각한다. ‘취중진담’이란 노래는 술을 마시고 용기를 내어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내용이다.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나지 않고, 그래서 불안해할지도 모르는데도 술 마시고 취해서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고백한다. 나도 과거에 취중진담의 힘을 믿고 술 마시고 고백을 해봤지만,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되었다. 노랫말대로 라면 아침에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취했는데 과연 전날에 얼마나 진실한 이야기를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한번 입 밖을 나온 말은 다시 담을 수 없다. 더구나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은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경우가 많고, 본인이 기억도 못 하기 때문에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도 어렵다. 영화 맨인블랙에서 나오는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어서 상대방의 술자리 기억을 잠시 지워준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그러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지만 술 마시면 최대한 쓸데없는 말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분명히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술 마셔도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실수하는 사람 중에 술 안 마신 사람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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