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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Jun 05. 2018

내 인생의 봄은 지금 시작되었다

공통주제 <봄> ㅣ 한공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정작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의 본질은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있습니다. 전 그것을 찾아주고 싶어요.



작가 프로필 ㅣ 한공기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운영자 

보통사람의 사소한 일상이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송중기처럼 청순한 남자이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름도 비슷하다.



요즈음 내 화두는 ‘나라는 거짓말에 속지말자!’이다. 내가 믿고 있는 ‘나’가 과연 진짜 ‘나’인가?란 의문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예를들어 나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정도 마시는데 스스로 과연 커피를 진짜 좋아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한번은어머니가 상황버섯 달인 물을 한잔 만들어 주셨는데 그 맛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차로 마시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은은하고향기로웠다. 특히 섭취하자마자 몸 안에 따듯한 기운이 맴도는게 건강에도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왜 커피를 자주 마시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지금이 글은 매일같이 오는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쓰고있는데 본연의 내 자신으로 돌아와 ‘ 커피 맛 어때? ‘ 물어보았다. 내 솔직한 대답은 ‘ 쓰고 텁텁한게 맛때가리도 없어.’ 이다. 물론 맛이 있는 커피도 있다. 갓볶은 좋은 원두를 갈아만든 커피를마시면 신기할정도로 맛이 3단계의 과정으로 느껴진다. 어떤원두는 끝맛에 단맛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마치 캬라멜이 연상되기도 한다. 즉 무분별적으로 아무데서 커피를막 마시는 행위는 그리 옳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오늘 난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또 최근에 크게 사기당한 적이 있는데 날 사기친 사람은 다름아닌 내 자신이었다. 누가 들으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을 것이다. 요가학원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는데 얼굴도 이쁘고 몸매도 무척육감적이었다. 또 열정적으로 매우 친절하게 알려주는 모습이 무척 인간적인 분이라는 인상을 주었고 순식간에 난 그녀의 매력에 사로잡혀 버렸다. 나는 선생님이 하시는 수업을 모두 수강하고 수업에 갈 때마다 과자나 빵을 사가서 드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3개월정도 지났을 때 즈음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인스타 주소를물었다. 선생님 인스타에 들어가보니 팔로워 수가 거의 연예인 수준이었고 선생님의 포스트 하나가 올라올때마다 좋아요 수는 천 단위였다. 그렇게 인기가 많은 사람에게 내가 직강을 받고있다는 사실에 뿌듯함까지밀려왔다. 선생님이 내 인스타에 맞팔로우 하셨을 때는 마치 사랑고백을 받은 사춘기 소년처럼 뛸듯이 기뻤다. 그렇게 요가쌤 앓이를 한참 겪다가 내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요가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톡!쳐서고개를 돌려봤더니 다름 아닌 그 선생님이었다.


“집에 가시는 길이세요?”

“네…네!”


알고보니 선생님의 집 방향이 내 집 방향과 같아서 같은 지하철을 타곤 했는데, 우린지하철에서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할 때 난 속으로계속 (이거 실화냐?) 되물었다. 그.런.데…10분 정도 요가 관련 대화가 끝나자 우리 둘 사이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요가 말고 여가시간에는 뭐하세요? “

“딱히…그냥 영화보고 책읽고 그래요..”

“영화요? 저도 영화 좋아하는데최근 어떤 영화가 재밌으셨나요?”

“글쎄요, 내가 뭘 봤더라…”

“그럼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글쎄요, 내가 뭘 봤더라…”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내 옆에서 혼자 바쁘게 카톡을 하고, 인스타를 뒤지고, 페이스북을 뒤지고, 네이버 검색 기사를 뒤지는 동안…난 멀뚱멀둥 멍하니 앞만 쳐다보고 있다가 결국 스마트폰을 꺼내고 말았다. 선생님이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으면서 우리는 완전하게 타인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내 기분은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하지못할 정도로 슬프고 먹먹했다. 이게 실화인가? 믿기 힘들정도로… 살면서 굳이 겪어볼 필요가 없는 비극을 온 몸으로 견뎌내고있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철이 내가 내릴 역에 도착했을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하고내리는데 그때 본 그녀의 얼굴은 그 지하철 칸 안에서 제일 못생겨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개월 동안 그녀를 좋아했던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자신에게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세상이 뭔가 바뀐게 아닐까? 하는 낯선 기분이 들었다. 봄은 이미 왔지만, 내게는 바로 오늘부터가 봄이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의 봄은 매년 찾아오는 그런 봄이 아니라 내 인생의 첫 봄이었다. 즉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겨울을 견뎌낸 기분이 들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개운함과 상쾌함 그리고 가벼움. 집을 나와 길을 걷는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도대체내게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그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마치 오랫동안 딱딱하게 붙어있던 눈꺼풀이 드디어 벗겨지고 새로운 눈을 뜬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나없는 내 인생'을 살았던게 아닐까? 지금까지 나의 모든 생각과 판단은 내것이 아닌, 학습되거나 외부로부터 스며든 것이 아닐까? 나는 스스로에게 '온전한 나만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중력과 관성을 무시한체 자유롭게 스스로 영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내 밖의 모든 세상이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안과 밖이 뒤바뀌는 코페루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한없이 여리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함부로 판단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짜 나임을 알게되었을 때 내 안은 대기권 밖의 우주가 되었다. 무한하게 자유하며 영원히 알 수 없는 세계가 내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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