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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Jul 07. 2018

샴푸의 요정 이해하기

즉흥현상곡 ㅣ 신정훈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최근 유빈이 신곡을 발매했다. 숙녀란 곡으로, 시티 팝장르다.꽂혀서 수십 번을 반복청취했다.장르명을듣자,명쾌한 구분 짓기가 가능했다.'규정'작업을 통해 카테고리가 생긴다.시티팝은80, 90 년도 유행했던 일본발 장르로, 한국 음악시장에도 영향을 끼쳤다. 초창기 국내 시티팝 목록을 보던 중, 즐겨듣던곡을발견했다.한국대표시티팝 곡인 샴푸의 요정을 다시 듣게 된배경이다.곡의탄생배경이 궁금해 리서치를 하던중,모티프가 된 시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내용이 직관적이면서도 심오해 몇번인가 되뇌었다.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이번20분글쓰기에서 동명의 원작 시'샴푸의 요정'을 읽고분석하게 됐다. 


샴푸의요정

사내는추리극장이싫다. 국내 소식이
싫고운동경기가싫고문제의외화가
싫다. 안 본다. 그리고 방송출연하는
많은다른여인들이역겹다. 나는 그녀만을 본다.
여덟시반의그녀를기다린다.보시겠읍니까
15초동안그녀는샴푸회사를위해
광고하지요.보시겠읍니까

그녀는인사를잘한다. 안녕하셔요
그녀는미소띠며속삭인다
파란물방울무늬잠옷을입고
그녀는머리를감아보인다. 무지개를 실은
동글동글한거품이티브이화면을완전히
메운다. 그러면 샴푸의 요정이 속삭이는 거지
새로나온샴푸, 당신이 결정한 샴푸라고
향기가좋은샴푸, 세계인이 함께 쓰는 샴푸
아마당신은사랑에빠질거예요
라고속삭이는것이지

미용주식회사가있다. 아시아 굴지의
미용주식회사가있다. 그리고
우리들에겐요정이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요정
매일저녁여덟시반, 티브이 화면을 찢으며
우리곁에날아오는샴푸의요정. 그녀는 15
초동안지껄이고
캄캄한화면뒤로사라진다.여덟시반.
매일저녁여덟시반에는그녀가
출연하는광고가있다. 기다려 주세요

광고가끝나면사내는무기력하게
티브이를꺼버린다. 매일 저녁 15초가 필요할뿐
사내는사진을들여다본다.짝사랑하는
그녀사진을사내는모은다. 방에 붙이기도 한다
흰이를드러내고웃는모습. 수영복을 입은 모습
승마복을멋지게입은사진을그는모은다.
그리고칼에대어잘라낸다.샴푸의요정이
어느영화에출연해서보여주는
곧입술이닿으려는찰나의남자배우입술을
면도날로잘라낸다.

선전문안이들끓는밤열한시
나지막이샴푸의요정이속삭이지않는가
그녀의노래가귓전에맴돌지않는가.
쓰세요, 쓰세요, 사랑의 향기를
느껴보세요. 그리고 그녀의 약속이
가슴속에고동치지않는가. 오늘 밤
당신을찾아가겠어요,광고속에서
그녀는약속했었지.욕망이들끓는사내의머리통

옷을벗는요정. 담배불 자국이 송송한 소파에
비스듬이눕는요정. 신비스레 신비스레
가라앉는요정. 뜨거운 입술로
이리오세요예쁜아기, 속살거리는 요정
환영이들끓는밤열두시, 이윽고 샴푸의 요정은
그의머리를끌어당겨
냄새를맡아본다. 제가 권한 것을 쓰셨겠지요
물론그러하셨겠지요?

0시삼십분. 사내는 샴푸가 아닌
다른이야기가하고싶다. 무언가
시도하고싶다. 그러나 그녀는 실내화를 끌며
얼마나잽싸게달아나는가.참잘하셨어요
샴푸는역시우리것이최고랍니다.계속
애용해주세요. 분홍빛 잠옷을 끌며
샴푸의요정은사라진다.아아
좀더있어주세요! 좀더!

꿈에서깨어나
사내는타자기를두드려댄다.
딱딱딱딱딱
굴지의미용주식회사가있다.
그리고현존하는유일한요정은
샴푸요정이다.


내용을 정리하면,
화자는 상업 광고 모델인 그녀에게 빠졌다. 방송에 출연하는 다른 여인들은 역겨우나그녀는 고결하다. 그녀가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녀의 인품? 그녀의 고상함? 그녀의 순결함?그녀의 실존을 화자는 알 길이 없다. 그녀와의 모든 접점은 TV를 통해 이뤄진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유일하며 절대적인 이유다. 다른 이유는 필요치 않다. 그녀에게 매혹돼 합리성을 잃는다.
화자의 망상은 콘티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 든다. 그녀의 말이, 행동이 자신을 향한다 믿는다. 시청이란 수동적 행위에서 팬심은 확장된다. 다른 활동을 찾아보고, 상대 배우에 저주를 내리기도 한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커지자, 꿈 (혹은 환상)을 통해 그녀와 만나게 된다. 환상 속에서 조차 그녀와 진심을 나눌 수 없다.그녀는 광고하는 샴푸를 사용했는지 묻고 떠나버린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에게 깊게 몰입한다. 

시의 키워드를 꼽자면,
1. 자본주의 사회가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
2. 상품의 홍수
3. 이미지의 사회
4. 이미지의 맹목적 추종
5. 이미지의 허무/ 실체 없는 이미지
6. 단절의 시대 (소통의 부재)
 정도다.

시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첫 번째, 자본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다. 아래 2~5번 항목은 모두 이 아래 포함되어 있고, 유기적으로연결되어 있다. 보들리아르의 시뮬라르크 개념을 사용해 이해하면 '이미지'란 키워드가 '자본주의' 키워드를 압도할 위험이 있으나,자본주의의 큰 맥락 안에서 읽으면 조금 더 깊은 이해가 있을 수 있다. 실재를 반영한이미지가 실재를 감추고 변형하며, 관계를 끊고 종래에는 그 자체로 새로운 가치가 된다는 게 요다.화자는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재탄생한 이미지를 사랑하고, 영유한다.상품의 홍수는 이미지의 홍수로 변하고, 대중 매체는 이미지를 퍼다 나른다.잡지도, 영화관도, TV도 그 채널이다.나는 실재를 무시하며 이미지를 사랑하는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이미지로서의그녀는 진정한 화자의 샴푸의 요정이 됐다. 우리에게 허무하며, 실체없는 헛스윙으로 보이지만, 그에게 실체는 확실해진다. 


단순히 자본주의의 병폐라고 작품을 읽고 싶지 않았다. 캐캐 묵은 담론이 되고,상투적인 시로 거듭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들리아르의 이론을 가져와 이미지에빠진 남자가 이미지를 그 자체로 수용하는 과정과, 어쩔 수 없는 사회의 압력이 그의 행동을 고착화시키는 촉매가된다 읽었다. 자본주의의 부작용으로 단정 짓는 순간 그의 행동은 단순히 어리석고 애처로운 게 된다.화자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작업이 다채로운 감각을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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