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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Jul 07. 2018

하트시그널2, 너에게 할말있어

즉흥현상곡 ㅣ 신정훈

호주 멜번의 청소부
저는 글을 막 씁니다. 브레인스토밍하듯 손가락 가는대로 놔두는 식입니다. 


작가 프로필 ㅣ 신정훈 

현상을 쿨하게 응시하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즉흥적인 글쓰기 과정으로 풀어내려 한다. 




배경
 토요일 아침이 되면 와이프와 함께 하트 시그널 2를 시청한다. 연애 세포 자극하는 달달한 방송이 나왔다며 요란을 떨었던 그녀. 이런 프로그램은 함께 봐야 재밌다며 나를 잡아끌어 의자에 앉혔다. 기분 맞추기 위해 2 화 정도를 보자 몰입하게 됐다. 다음 주면 마지막 에피소드다. 매화 빠지지 않고 시청한 시청자로서 여러 코멘트를 남겨볼까 한다. 일정한 규칙 없이 생각나는 키워드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 예정이다. 

썸의 대전
 사귀기 전의 미묘한 관계를 우리는 썸이라고 한다. 공인된 연인이 아니기에 대범한 스킨십이나 정도 이상의 친밀한 표현을 할 수 없다. 대신 경계가 주는 긴장감과 설렘을 얻는다. 문제는 썸의 상대를 만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이다. 내향적인 사람이나 한정된 대인관계,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이들에게 썸은 보기 좋은 떡이다. 그들이 대리만족할 수 있게 만든 프로그램이 하트 시그널이다. 방송은 출연자들이 썸을 탈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연출한다. 
프로그램이 만든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거주자는 모두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그 규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그널 하우스에서 생활해야 하며, 무한 썸을 탈 것이라는 항목이다. 개인 연락처 공유를 할 수 없게 만들어 마지막까지 확실하지 않은 관계(즉 썸)을 유지하게 만든다. 연적이 등장하기 쉬운 구조다. 그 안에서 갈등과 민망한 장면이 탄생한다. 출연자들은 방송국의 취지에 맞게 여러 이성과 데이트한다. 


연출된 썸
방송은 다양한 액티비티와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서 집과 차는 큰 역할을 한다. 호화 저택에서 촬영이 이뤄지는데, 어떤 앵글에서 찍어도 그림이 산다. 포드에서 만든 노란 스포츠카와 대형 SUV는 출연자 모두가 아무 때고 사용할 수 있게 비치되어 있다. 지하철 시간 계산하고 인파 속에 끼이는 화면 대신, 옵션 빵빵한 외제차로 드라이브하는 화면을 건진다. 1000대 1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출연자들의 외모는 말해 입 아프다. 시청자들은 한껏 장식된 썸을 쉴 새 없이 즐길 수 있다. 다만 멋진 썸의 스텐다드는 비루한 우리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 보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현실과의 괴리
현실에선 사랑의 전쟁터가 집 밖이라면, 방송에선 집 안도 전쟁터다. 썸의 사각지대가 없다. 출연자들은 집에서도 풀 메이크업 상태다. 집 안에서 청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아래로 내려 후줄근한 티셔츠와 사각팬티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한다. 오로지 썸을 위해 만들어진 판에 썸 머신으로 거듭난 그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부자연스러움이 나를 더욱 시청자의 입장에 서게 만든다. 다른 말로 그들의 매력 싸움은 비현실적이다. 그런 모습을 썸의 기준으로 잡은 이들에게 불만족스러운 만남이 기다린다. '우리 규빈이 너무 안쓰러워.. 내가 만나줘야겠다.'스크린 앞의 누나들은 0표 받은 그가 안쓰럽고, 한편으론 친숙하게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20대 중반 잘생기고 성격 좋은 행시 패스남이 0표 받는 세상은 없다. 
또한 그들의 모습 역시 편집됐다. 방귀 뀌고, 똥 싸고, 욕하고, 코딱지 파는 장면을 제작진이 쓸 이유가 없다. 썸을 포장하기 위해 그들은 항상 완벽해야 한다. 방송국이 요구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난 행동과 모습은 가차 없이 편집이다. 우리가 보는 SNS처럼, 하루 중 가장 빛나는 타인의 시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이유와 맥이 같다. 

패널
 8 명의 출연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6명의 시그널 해독자 (패널)도 존재한다. 출연자들의 행동과 표정, 말투 등을 근거로 그들의 마음을 해석한다. 사소한 행동들이 단서란 이유로 몇 번이나 반복 재생된다. 패널들이 재단하는 말은 우리의 판단 근거에 영향을 끼친다. 그야말로 대중 매체가 우리에게 어떤 지침을 제시하는 것 같다. 패널들의 말을 듣다 보면, 21세기 한국 사람이 가져야 할 당위성을 주입받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는 응당 ~ 해야 한다는 식의 말을 듣다 보면 세뇌 당하는 기분이 든다. 특히나 가치관 형성이 덜 된 10대 친구들은 더 큰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썸과 이성 관계에 불필요한 규범이 생겨 무의식의 규제를 받는다. 
패널들은 제작자들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판을 키우는 선동꾼이 되는 셈이다. 여러분 이거 보셨죠? 이게 바로 멋진 사람들이 썸 타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해요. 아셨죠?  패널은 감정을 강요하고, 해석의 여지를 줄인다. 이 해석이 맞니 저 해석이 맞지 저마다의 의견을 제시하고 결국 하나의 결정(선택)으로 나아간다.  사람의 감정을 부실한 그들의 역사를 근거로 판단하고 출연자들의 선택을 이유로 그게 맞고 틀렸음을 결정짓는다. 사람의 행동이 단순화된 메커니즘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에 끝 맛이 씁쓸하다. 


관음증
 으리으리한 저택엔 수 십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침대에서, 소파에서 합법적으로 관음의 욕구를 채운다. 잘난 사람들의 일상엔 어떤 일이 있을까? 누군가의 지극이 개인적인 만남과 은밀한 대화를 작은 화면을 통해 지켜본다. 출연에 동의하고 나온다 해도, 그 모든 폭로에 평온할 수 없을 것이다. 웃고 떠들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한 편 죄의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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