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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공기 Oct 07. 2019

영의 지점

배우 _ 박보현

Editor's Letter


박보현은 영(靈)이 맑은 배우다.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투명한 호수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부레옥잠 아래에서 붉은 잉어들이 헤엄을 친다. 그녀 안의 뜨거운 에너지가 꿈틀거리듯 잉어가 활보를 해도 호수는 신기하게도 매우 고요하다. 그녀의 눈처럼 말이다. 그 비결이 뭘까? 궁금증을 품고 인터뷰를 하다가 그녀가 영(0)의 지점에 머물러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이는 태도. 그래서 자존감이 높고, 그래서 어떤 역할도 거침없이 잘 해낼 것 같은 배우로 느껴진다. 박보현은 그렇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이다. 


박보현의 스토리텔링




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출신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나요? 


주로 연기를 가르치고 이외에 CF모델, 연극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을 하게된 계기가 있나요? 


현재 한예종 연극원 대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배우는 평생 배우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아무리 배워도 끝이 없어요. 연기 공부를 하는데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고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도 가르치는 일은 무섭고 겁이나요. 그래서 늘 고사하고 망설였는데 여전히 하고 있네요. 


보현님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분이라 굉장히 잘 가르칠 것 같습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또 연기하고...거의 연기가 일상이신데 연기 일에 어떤 재미를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재미라. 사실 무대에서 재미를 많이 느껴보고 싶은데 그리 많이 느껴본 적은 없고 오히려 춤을 출 때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는 찰나적으로 그 '재미'가 찾아오더라구요. 제 존재가 비어있는 느낌이 있어요. 자의식이 사라지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 같은...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왜 연인하고 있을 때 되게 행복한 찰나 "이순간 이대로 좋아!" 이럴 때 있잖아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인지하지 못할 때 말이죠. 


의외네요. 연기를 오래 하셔서 하는 일들을 재미있어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럼 분명 보현님만의 철학이나 가치가 있겠죠? 그것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는 것 아닐까요?  


가르치는 일은 학생들을 좋아하고 그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나이 또래에 맞는,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구요. 

입시연기를 가르치면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아이들이 믿음과 열정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 중. 고등학교에서 연기를 가르치, 정규교과목수업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나와 다른 친구들과의 교류, 소통, 유대감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소중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CF는 연극배우로,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삶을 유지시켜 주는 고마운 일이고 공연을 하는 것은 저에겐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싶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스스로를 계속 성장시키고 싶고 도전하고 싶게 만들어주거든요. 


일을 하며 기억나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KT5G 광고를 찍은 적이 있는데 지진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 역할이였어요. 광고이지만 감정 깊이가 큰 연기를 해야 하는 역할이었어요. 당시 전 대학원에서 다시 연기 공부를 하면서 배우로서 늘 부족한 점만 마주하게 되는 시기다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감독님께서 너무도 세심하게 저를 배려해주시고,  제가 연기만 하면 엄지 척을 하시면서 칭찬해주셨어요. 그때 힘이나고 연기하는 것이 즐겁더라고요. 그 이후로 저의 연기적 고민과 부족함에 대해서 이전보다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이 항상 단점에 대해서 평가받고,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인데요. 그러다 보면 좌절감과 고통의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절망감이 너무 클 때는 내가 이 일을 하면 안되는 사람인가? 성과가 없으면 그만 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 때의 경험을 계기로 이런 고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그때 깨달은 것이 '어떤 역할은 조금 더 많이 나의 부족함과 대면하는 것이고 또 어떤 역할은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특성이 나에게서 발견하는 거구나!' 였습니다.  


보현씨는 굉장히 성숙한 배우인 듯 합니다. 그런 보현씨가 좋아하는 배우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하네요. 


메릴스트립, 쥬디덴치, 나문희 선배님을 좋아합니다. 그 분들의 공통점은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예요. 즉 작품 속의 역할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아내로서, 부모로서도 인생의 역할에서도 충실한 분들입니다. 그런 자연스럽고 건강한 면을 닮고싶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중에는  감정의 기복을 왔다갔다하며 일상에서 방황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사시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그분들은 참 대단하다고 봐요. 사실 배우란 직업은 삶이랑 연기랑 분리되기 힘들어요. 그 사람의 삶이 연기에 녹아져 나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수 중에는 자기 노래처럼 살다가 가신 분들도 있고, 배우 중에는 자기 역할처럼 살다가 가신 분들도 많거든요. 자신이 몰입한 예술활동과 일상적인 삶을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은 진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현씨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무엇일까요? 


어느 작품에서나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해요. 즉 배우 본연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역할 그대로만 존재하는 연기요. 그런 연기를 하려면 정말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물론 배우가 자신 고유의 특성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작품을 분석하고 역할에 몰입하면서 '나를 버리는 동시에 새로운 나를 만나는 지점'이 있어요. 전 그 지점을 '영의 지점'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제로의 초점에 도달하면 자기도 모르게 죽고 부활하는 기분이 들어요. 작품 속에서 내가 모르는 내가  살아가는 신기한 경험이라고 할까요.


보현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네요.  


좋아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전 진짜 '사람'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어떤 음악이 좋아서 그 음악에 빠지기 보다 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다보니 그 사람의 마음을 타고 그 음악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래서 또 '사람' 때문에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상처받고 무척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합니다. 


혹시 힘들었던 그 순간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요? 


음...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첫사랑과 헤어지고 제가 다니던 교회 골방에서 불을 꺼놓고 하루종일 혼자 있었어요. 그런데 진짜 과학시간에 말로만 듣던 '블랙홀'을 경험했어요. 한없이 우주 한 가운데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정말 내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 무서웠어요. 


재밌네요. 보현씨가 연기할 때 항상 통과하는 그 '영의 지점'을 이미 첫사랑과 헤어질 때 경험한 듯 해요. 그런 경험이 지금 보현씨의 연기 접근법을 만든게 아닐까 싶은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 공포감을 한번 겪어본 후 점점 그 과정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박보현의 오리지널리티




나를 위한 것보다 타인을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있는데... 고통과 극한의 아픔을 겪은 다음인 것 같아요. 그런 사람에게서 특유의 눈빛이 있어요. 아름다움과 선함을 추구하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눈빛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Editor's Choice 


배우 박보현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에 이미 도달해 있는 기분이 든다. 자신이 사라지는 고통을 통과한 후에 찾아오는 맑은 눈빛...그 눈빛 너머에는 우리가 꿈꿔왔던 어떤 세상이 존재하는 듯 하다. 




박보현 연기 & 인터뷰 영상



'있는 그대로'는 휴먼 브랜딩 회사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고객의 오리지널리티를 분석하고 
사진과 영상이 포함된 프로필 페이지를 만들어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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