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하다

미니 리볼버 단편선: 마피아 게임

안구건조증 걸린 미소녀가 본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ㅣ 변효선

by 한공기
스크린샷 2016-01-18 오후 4.20.15.png 청년백수 정치깡패


대학교 들어가서부터 뭔가 마음이 뒤틀릴 때마다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비판하는 건조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야구에도 같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뭔가 정치와 야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사안을 보고서도 같은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시선이 확연히 달라진다. 수비방해냐, 진루방해냐를 두고 전혀 의미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것도 목숨 걸고. 연고지에 따라 팀이 갈린다는 측면도 많이 닮아있다.


작가 프로필 ㅣ 변효선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정치부 기자를 하고싶다.




시발점은 아마 일주일 전 그 날이었을 거다. 그 날은 같이 다니던 친구들 중 우두머리 격인 A양과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A양과는 금방 화해를 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잘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부터 난 무리에서 묘한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만 서로 쪽지를 돌린다거나,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속삭인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들이 잦아졌다. 지난번, 슬쩍 C양의 휴대폰을 곁눈질로 보았을 때 나를 제외한 카카오톡 대화방이 개설된 것도 눈치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내가 말을 꺼내면 급속하게 냉각되는 분위기는 내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은 이미 2학기 중반을 넘어서서 달려가는 중이었다. 이것은 나머지 반 친구들은 저마다의 무리를 형성하고 있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벌써 일주일째 애써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힘겹게 친구들 사이에 꾸역꾸역 들어가 버티고 있는 중이다.


매 쉬는 시간이면 나는 애써 잠이 오는 척, 엎드려야만 했다. 나는 두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죄 없는 발끝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그들에게 자기들끼리만 재밌게 놀 핑계거리를 심어주고, 나에게는 현실 부정의 변명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애꿎은 치맛자락만 구겨댈 뿐이었다.


그렇게 발만 동동 구르면서 하교시간을 재촉하던 중이었다. 점심시간 D양이 갑자기 친한 척 팔짱을 끼며, 마피아 게임을 할 테니 빨리 오라며 서둘러 나를 재촉했다. 그때 난 어색한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내심 ‘내가 예민했나 보다, 오해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또 헛된 희망의 끈을 잡고 바둥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나와 싸웠던 A양이 사회자를 맡았다. 게임은 시작되었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킥킥거리며 서로를 지목하며 웃고 떠들었다. 나 또한 끼고 싶었지만, 목구멍에 투명한 막이 쳐진 것처럼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내가 말을 꺼냈을 때 돌아올 싸늘한 반응이 두려웠으리라. 심장을 콕콕 찌르는 그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음이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느낌을 알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편했던 친구들이 표정 하나, 말투 하나 다 어려워진다.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면서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던 중 "야! ㅇㅇㅇ 넌 왜 아무 말도 안 해? 수상해!"라는 누군가의 말이 귓등을 때렸다. 나는 그 순간 친구들 사이의 묘한 눈빛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자인 A양은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화살은 다 내 쪽으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나는 "나...난..아냐!"라며 우스꽝스럽게 반박했다. 한참을 침묵하던 터라 목소리가 잠긴 통에 나온 이상한 쇳소리는 내 몰골을 더욱 우습게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은 웃음을 터트렸고 내 모습을 더욱 과장해서 흉내 냈다. 화를 냈다간, 오히려 소심하다 몰아세울 것이 뻔해서 화끈거리는 고개를 떨구는 일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분위기는 나를 몰아가는 쪽으로 계속 흘러갔다. 사실 싸운 지 얼마 안 된 A양이 나를 마피아로 찍을 리 는 만무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친구들도 암묵적으로 다들 눈치채고 있음이 확실했다.(당시 우리는 모두 마피아 역할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사회자는 가장 친한 아이를 마피아로 지목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 않는다는 듯, 친구들은 나를 마피아 심판대로 몰아세웠다.


순식간에 투표는 시작되었고, 친구들의 엄지는 모두 아래를 향했다. 그들은 "죽여! 죽여!"를 외치며 낄낄댔다. 그때, 나는 그들이 나를 찾은 이유가 게임을 같이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끈끈한 우정을 과시할 <공공의 적>이 필요함이었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악” 소리도 못 내고 무리에서 처형당했다. 나는 그렇게 죽었다. 물론 나는 마피아는 아니었다. 그렇게 무리에서 다시 한 번 떨구어진 나는 마치 진짜 죽어서 없는 사람처럼 소외되었다.


“넌 죽었으니까 혼자 저리 가서 기다리고 있어. 게임 끝나면 부를게.”


A양의 목소리에 나는 자리를 피해줘야만 했다. 나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잠이 오는 척 책상 위에 엎드렸다. 원래 여자 아이들의 따돌림이란 은근해서 딱히 이렇다 하면서 보여줄 만한 상처가 없다. 그러나 보여줄 수 없다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다시 교복 치마가 조용히 구겨지고 있었다. 심장이 자꾸만 쿡쿡 쑤셔왔다.


마피아게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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