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이나사
필기도구들은 저마다 다른 울음소리가 있다. 슬픔의 울음이 아닌 쓰다듬 받는 고양이의 갸르릉거리는 소리다. 꿀꿀, 짹짹, 멍멍처럼 연필은 - 사각사각 - 소리를 낸다고 한다. 종이 위를 걷은 연필의 발자국 소리가 나에게는 소복소복하고 들린다. 눈이 오지 않아도 함께 걸을 이 없어도 연필 한 자루와 함께 오늘도 나만의 겨울왕국으로 산책을 떠난다.
작가 프로필 ㅣ 이나사
Keyword: 계란 & 치즈 매니아
계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여태 내 곁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늘 계란이 곁에 있었다. 계란의 어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하루에 두 알 이상씩은 꼭 먹는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온갖 음식으로 가득 차 있어도 계란 칸이 비어있다면 금란현상이 일어나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 여행 가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 항상 듣던 소리가 바로 치즈다. 참고로 우리 부모님은 김치 세대다. 치즈 세대라 김치가 없어도 밥을 먹을 줄 아는 나에게 계란이 밥이라면 치즈는 반찬이다. 필살기: 수염 난 턱으로 손등 긁기
한동안 사람을 끊었다.
금인현상이라곤 없었다.
같은 사람들 속에 나는 다른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 모여 같음을 만들었다.
같은과 다른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사람을 시작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속에 나는 같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모여 같음을 만든다.
다른과 같은의 갈강이 시작되었다.
금인현상이 생겼다.
* 부연 설명
학창시절엔 남다른게 좋았습니다. Diffrent가 아니라 Unique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Differnt는 양반이고 Wrong이라는 시선을 받게 되었습니다.
탈선한 기차처럼 부드럽게 곧게 뻗은 레일 위가 아닌 자갈, 숲, 논 등을 달리며 바퀴가 찌그러져갔습니다.
응? 왜 이러지? 난 더 달릴 수 있는데?
다리를 내려다보니 한 쪽은 이미 잃어버렸고
나머지 한 쪽은 작은 바위 하나 넘지 못할 정도로 나약해져 있었습니다.
마침내 멈추었습니다.
갈 길 바쁜 승객들은 모두 내려 그들의 행선지로 걸어갔습니다.
하나 둘 떠날 땐 아쉽더니 텅 비어버리니 후련했습니다. 그리움마저 떠나니 더이상 그립지 않습니다.
바쁘게 달리는 동안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개미, 새, 구름, 나무, 풀잎 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때 입에 파이프를 문 어떤 남자가 다가옵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기가 막힌 정비소가 있어. 같이 가볼래? 가기 전에 먼저 프로필을 작성해야 돼."
달릴 수 없다면 걷기부터 시작해보라던 그는 묵묵히 저에게 끝말잇기를 신청합니다.
"오늘은 끝말잇기 말고 이 사진을 감상해봐."
한 발짝 한 발짝 걷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걷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치있는 13가지를 골라봐. 대신 말은 하면 안돼."
이렇게 하나 둘 다가온 사람들은 저의 짐칸을 다 떼어버리고 무임승차를 해버렸습니다.
밤새도록 웃고 떠들다보니 날이 밝아옵니다.
"다음에 또 올테니 그때는 기가 막힌 음악들을 들어보자."
"그 날 우리 세상에 둘도 없이 맛없는 태국 국수를 먹자구.",
"레터스 투 줄리엣 좋아하는 기차는 처음 봐."
이렇게 시작된 칙칙폭폭은 제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다르지 않음을 일깨워주었고
적어도 이들과는 같음을 같다는 행복이 얼마나 따뜻한 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석탄 한 덩이를 꺼내서 입에 물어봅니다. 뿍뿍거리며 매연을 띄우며 감상에 젖습니다.
캬~ 이 맛이었구나.
화장실에서 잠깐 졸고 나왔을 뿐인데 다리에 끈이 동여매져 있었습니다.
이건 뭐지? 아..... 나는 이젠 기차가 아니라 탱크구나.
언제 또 오려나? 3월 26일이라고? 어떻게 기다리지?
편집자 부연설명
작가 이나사님은 글쓰기 공동체 파운틴 회원으로 그가 쓴 부연설명은 파운틴 공동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표현한 것이며 맨 하단의 26일은 파운틴 오프라인 정기모임 날짜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