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통주제 <정체성> ㅣ 최미애
명상을 하면서 '관찰'이 취미가 되었어요.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는 관찰 작업을 수행하고, 그렇게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순간 순간 깨달을 수 있도록 뭔가를 좀 써봐야 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작가 프로필 ㅣ 최미애
IT 9년차 직장인.
불교와 명상에 관심이 많아 경전을 읽으며 '집중'과 '관찰' 수행을 하고있다.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세상에 관한 '관찰일기'를 쓰려한다.
나는 이동 중이면 항상 노래를 듣는다. 영어 가사로 된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대체로 가사를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토익 시험을 보면 LC 점수가 RC 점수에 비해 100 점 정도 낮게 나오는 형편없는 귀의 소유자다 보니 영어 가사를 듣고 이해하는 것에는 도저히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에 대해 무엇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던 어느 날 데미안 라이스의 <Volcano>라는 노래에서 아래의 구절이 들린 것은 우연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다.
[What I am to you is not real.]
들려온 문장에서 느껴지는 바에 의구심을 품고 구글 번역기를 돌려 보면 상당히 몹쓸 문장이 튀어나온다. 내가 이 가사로부터 느낀 바를 한국어 문장으로 내 식대로 풀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당신이 나를 무엇으로 여기든, 그것은 실제가 아니에요.]
사실 저 위의 '실제'라는 부분을 '진짜 나' 정도로 바꿔 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무언가 'real'이라는 단어의 미묘함이 흩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있어서 'real'의 반대말은 'fantasy'에 가깝다. 이처럼 'real'을 허구와 반대되는 의미로 볼 때 위의 가사는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허구야.]라고도 읽힌다. 허구란 무엇인가? 실체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보는 '나'는 눈도 두 개 달리고 머리와 팔다리와 몸통이 사람의 형태로 잘 붙어 있는 데다가 손을 뻗어서 형태감이 있는지, 온도는 있는 지도 확인할 수 있는 물질적인 실체가 있는 존재이다. 게다가 함께 해왔던 시간들은? 두 사람이 함께 지나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그 시간 사이에 벌어진 갖가지 사건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들은 실체가 없는 것인가? 둘이 함께 손 잡고 걸었던 길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웃었던 시간들은 분명히 팩트로서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실제가 아닌가. 나는 이 가사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사람의 절망감으로 느껴진다. 분명히 나에게는 'real'한 고유의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고유의 영역을 정체성이라고 가정하자. 사람들은 보통 '내가 생각하는 나'가 '진짜 나'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웃는 낯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이 '진짜 나'라고 판단할 것인가? 화가 나는 마음인가? 아니면 웃고 있는 얼굴인가? 이런 경우 그 사람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자기 자신'이라고 판단한다면 '진짜 나'는 다혈질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 같다고 할 것이며, 그 사람이 다혈질적이라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그 사람이 적절한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웃는 얼굴'이 스스로 쓴 가면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자신의 민낯과는 구분되는 것임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면 타인의 평가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엇갈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가면이 자신의 민낯이기를 갈구하게 되어 페르소나 반대편에 있는 '화가 나는 마음'이라는 영역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면 이때부터는 문제가 된다. 오셀로에서 하나의 까만 돌이 주변의 모든 하얀 돌을 뒤집어 버리는 것처럼 나의 민낯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영역'이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이 되고 만다. 자신에게 좋은 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의 가면을 바라보고 있는 타인의 시선에 점점 좌지우지된다. 이제 가면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타인은 이제 내가 어떤 가면을 써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그게 '나의 정체성' 이어야만 한다고 강요한다.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은 나는 그런 타인의 기대를 마치 나 자신의 바람인 양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된다. 타인의 기대로 세워진 가면은 '좋은 나'가 되고, 민낯의 나는 '혐오스러운 나'로 이분화되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외면하고 있는 나의 민낯이, 온통 검은 돌로 뒤덮여 있어도 분명 가면을 깨고 나가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연인이라면 더욱더 '진짜 나'를 보이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어도 나에게 있어서 '진짜 나'를 보인다는 것은 '혐오스러운 나'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혐오스러운 나'는 내가 느끼기에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무심하고, 혼자 있을 때면 늘 두렵고 잘 우는 사람이다.
하지만 연인은 나에게 당신은 상냥하고, 늘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아주 잘 웃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연인의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주 기꺼이 '좋은 나'의 가면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꺼움'이 다른 타인과 연인을 구분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인의 앞에서 웃고 있을 때에도 때로 '진짜 나'는 울고 있다. 그렇기에 당신이 보고 있는 나는 실제가 아니라고 절망한다. 연인이 나를 칭찬할 때 '진짜 나'는 초조해지고 씁쓸해한다. 그리고 묻고 싶어 진다. 그런 나를 대하고 있는 당신은 나를 진짜 얼굴로 보고 있는가?
<Volcano> 노래 가사에서 'Volcano'는 나를 녹이고 당신을 녹이는 대상으로 나온다. 'Volcano'는 그래서 사랑으로도 읽히고 절망으로도 읽힌다. 전체적인 노래의 분위기와 고통스러운 마음을 담은 가사를 보면 절망에 좀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굳이 사랑이라고 읽어 본다. 부디 거기에 사랑이 있어서 당신의 가면과 나의 가면도, '좋은 나'와 '혐오스러운 나'도, 심지어 당신과 나의 실제까지도 녹여서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리고 서로를 뒤섞어 버리길. 그제야 완전한 나를 인식할 수 있으리라.
<Volcano> - Damien Rice
Don't hold yourself like that
그렇게 참으려 하지 마
cause You'll hurt your knees
그러다 무릎을 다칠테니
well I kissed your mouth, and back
뭐, 난 네 입과 등에 키스했지
But that's all I need
그거면 다 돼
Don't build your world around
주변으로 네 세상을 만들어가지마
Volcanoes melt you down
화산들이 널 녹일테니까
And What I am to you is not real
그리고 네게 있어 난 현실이 아닌거지
What I am to you, you do not need
네게 있어 난, 필요 없는 존재
What I am to you is not what you mean to me
네게 있어 나의 의미는 내가 받아들이는 너의 의미가 아냐
You give me miles and miles of mountains
너는 내게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주고
And I'll ask for the sea
나는 바다를 달라고 할게
Don't throw yourself like that
그렇게 내 앞에 네 몸을
In front of me
던져대지마
I kissed your mouth, your back
난 네 입에, 그리고 네 등에 키스했지
Is that all you need?
그거면 다 되는거야?
Don't drag my love around
내 사랑을 끌고 돌아다니지마
Volcanoes melt me down
화산들이 나를 녹여대
And What I am to you is not real
그리고 네게 있어 난 현실이 아닌거지
What I am to you, you do not need
네게 있어 난, 필요 없는 존재
What I am to you is not what you mean to me
네게 있어 나의 의미는 내가 받아들이는 너의 의미가 아냐
You give me miles and miles of mountains
너는 내게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주고
And I'll ask
그리고 난
What I give to you is just what I'm going through
내가 너에게 주는 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
This is nothing new, no, no just another phase of finding
새로울 것도 없지, 그래, 그래 단지 또다른 발견일뿐
what I really need is what makes me bleed
내가 정말 필요한 건 날 피흘리게 한다는 사실
But like a new disease, Lord, she's still too young to treat
하지만 새로운 병처럼, 맙소사, 그녀는 대접하기엔 여전히 너무 어리지
Volcanoes melt you down
화산들이 널 녹여
She's still too young +what i am to you+you do not need+is not real
그녀는 여전히 너무 어려, 네게 있어서 난, 필요 없는 존재, 현실이 아냐
I kissed your mouth
네 입에 키스를 했지
You do not need me
넌 내가 필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