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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Jul 06. 2021

여행 = 나를 발견하는 시간

터키


저는 할 줄 아는 언어가 없어요.


     터키에서 행복한 백수 생활을 한지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때에 아빠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있는 딸을 보기가 안타까워서 인지 영어를 배워보라는 제안을 하셨다. 나도 이제 막 놀기만 하는 게 지루해질 때라 흔쾌히 배우겠다고 했고 성인이 되어서 하는 첫 외국어 공부는 시작되었다.

   

    앙카라 시내(kızlay)에 있는 한 영어 학원을 가게 되었다. 이때 나의 형편없는 영어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느낌 상 레벨테스트는 잘 봤던 것 같은데 느낌뿐이었나 보다 알파벳부터 배우는 초급반으로 들어간 게 당시 내 영어 실력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다니기로 한 학원이 나름 유명하다고 해서 한국인 한 명쯤은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한국인은커녕 동양인 한 명 도 볼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외국인이 터키에서 터키어학원이 아닌 영어학원을 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때부터 나의 걱정은 시작되었다. 군중들 속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편이라 터키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는데 그 많은 터키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반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지? 하는 생각에 어느 순간 교실 문 앞에 다다랐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걱정되는 마음을 한가득 품고 교실로 들어가자 학생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우연히 보게 된 신기한 외국인을 향한 시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 시작이다.”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첫 수업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내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는 선생님,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수업 중간중간 들려오는 터키어.


    수업 들어가기 전 행정실 선생님께선 "이 학원 선생님들은 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 영어를 배울 때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거야"라고 하셔서 당연히 터키어를 못하실 줄 알았는데 터키어를 터키인 못지않게 잘하셨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영어권 국가로 여행 한번 다녀온 적 없는 외국어 잘하는 아시아(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사람들이었다. 외모를 보면 딱 알지 않느냐 싶을 수도 있지만 미국은 교포나 혼혈이 많으니까 우리 모두 별 다른 의심 없이 그분들 중 몇 분 일거라고 생각했다.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잊혀갈 때 즈음 알파벳의 N에 해당하는 단어까지 배우고 첫 교시가 끝났다. 선생님의 쉬고 오자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열댓 명이 나를 둘러쌓았고 그 아이들은 특유의 발음과 몸짓으로 제대로 된 문장 구성이라곤 하나 없는 본인들만의 영어를 구사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 한국”
“남한? 북한?”
“남한..”
“너 눈 되게 신기하게 생겼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오늘 끝나고 뭐해? 우리 집 놀러 올래?”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다행히 눈치껏 알아듣는 정도는 했다. 동시에 그렇게 많은 질문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면서 답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예의 있는 어투로 나에게 관심을 표하던 친구와 수업이 끝난 후 앙카라 시내에 있는 유명한 모스크를 가게 된 이야기가 있는데 아직도 친구랑 그날 얘기를 하면 배꼽이 빠지게 웃곤 한다. 당시 터키어도 영어도 할 줄 몰랐던 내게 터키 모스크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려고 온갖 표정과 몸짓을 이용해서 소통을 시도했던 게 생각이 난다.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터키어와 영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대화라는 걸 하니 별 것 아닌 일이 얼마나 재밌는 추억이 됐는지 그때 그 친구의 손을 잡았던 내가 참 대견할 정도다.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들과 기죽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친구 덕분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관계를 도피해 갔지만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외국어를 배우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전’ 이란 걸 서서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터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케밥이 아닌 올리브


다양한 종류의 올리브를 팔고 있는 집 앞 슈퍼의 진열대

   여행을 하면 각 나라마다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게 재밌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 특정한 나라나 지역을 말했을 때 생각나는 음식들이 몇 가지 있는데 나는 터키라는 단어를 보면 올리브가 떠오른다. 나와 터키 올리브의 첫 만남은 이렇다. 터키 친구들로부터 터키는 올리브가 매 끼니 식탁에 올라가는 나라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올리브를 키워서 재배를 하나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의문이 풀린 건 카파도키아로 가는 여행 길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카파도키아로 가는 고속도로 중간에서 아주 큰 올리브 농장을 봤을 때였다. 평생 그렇게 많은 올리브 나무를 보게 되는 것과 그것들이 휑 하다 못해 갈색 빛을 내고 있는 고속도로 길가에 떡하니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어울리는 게 재밌어서 실소가 터졌다.


    생각에 생각이 꼬투리를 물어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올리브들을 어떻게 다 소비할까 싶은 적도 있었는데 터키 가정식을 먹어보면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한 끼 식사 테이블에 올라오는 올리브 종류들이 내가 여태 살면서 본 올리브 종류 중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내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리법들로 전부 소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굳이 가정식을 먹어보지 않고도 근처 슈퍼의 올리브 코너만 가보면 알 수가 있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검은 올리브뿐 아니라 빨간 것, 연두색인 것, 쭈글쭈글한 것, 땡땡하고 생기 있는 것, 올리브의 씨를 빼서 그 안에 소시지를 끼워 놓은 올리브, 고추를 끼워서 절여놓은 올리브 등 나로선 감히 맛조차 상상할 수 없는 올리브들을 팔고 있었다.


   피자 위에 올라가 있는 올리브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서 터키인들에게 불티나게 판매되는 것을 보고 “저 음식은 내가 여기에서 몇 년의 시간을 보내든 절대 먹어볼 일 없는 것들 일거야.”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머무르는 여행을 할 때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그때는 몰랐다.


   터키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어느 것도 신기해하지 않을 때 즈음 나는 올리브를 따뜻한 밥에 올려 먹어보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걸 왜 밥에 올려먹어..”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먹게 됐는데 그때의 맛을 잊지 못해 여전히 터키에 다시 가면 밥에 올리브 올려서 원 없이 먹고 올 거라고 다짐한다. (이 글을 접하시는 누구든 터키를 가게 되신다면 혹은 주변에 터키를 가는 지인이 있다면 꼭 올리브는 먹어보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터키는 풀꽃과 같은 존재_오래 보아야 예쁘고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터키에서 거주자가 되어 삶이 여행이 되어 버렸던 것에 큰 감사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 나라의 진가를 알고 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터키의 큰 매력을 꼽자면 지역마다 다른 특징이 강해서 여행하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어딜 가나 전통 음식의 고장이 아니어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어딜 가나 푸르르고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는 한국에 비해 터키는 각 지역의 보이는 색감이 전혀 다르다. 예를 들면 메르신에서 먹는 과일이 앙카라에서는 보기가 힘들고 카파도키아에서는 터키의 역사 건축물과 유명한 열기구를 볼 수 있는 반면 이즈밋에서 볼 수 있는 푸르른 산을 보기는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검은색 빛을 내는 모래로 만들어진 흑사장이 있는 흑해(모래가 검은색이어서 흑해인 것은 아니다.), 마치 그리스에 온 것과 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 보드룸, 아야 소피아 성당과 대중교통 비용만 내고 탈 수 있는 페리가 있는 이스탄불 등 터키에는 이렇듯 다른 흥미를 느끼게 해주는 지역들이 많고 여행해 볼 가치가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초반엔 여행지에서 삶을 살아 나간다는 기대를 품고 친구 집에 초대받아 현지인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 옆 집 어린아이에게 귀여운 손글씨가 쓰여 있는 편지를 받는 일, 친해진 이웃과 집 앞 카페에 가서 대화를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들을 경험하면서 여행지에서의 삶이 역시 매력 있다고 느꼈다.


    특정 나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것이 식문화에 의한 것일 수도,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 수도, 만난 인연 덕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익숙해지는 순간 그곳에서의 삶은 처음 가졌던 설렘과 동 떨어지게 되고 곧장 예전의 것들이 그리워질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해외에서 사는 로망의 거품을 걷어내고 터키를 천천히 둘러보았을 때 가는 곳 어디든 새로운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그때부터 터키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아마 해외가 아닌 한국에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거품을 걷어내고 둘러본다면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곳을 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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