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 럼피우스 (MISS RUMPHIUS))'를 읽고
나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그림책과 관련된 활동으로 그림책 놀이 지도사 과정도 개설하여 강의도 하고 있고, 아이들과 그림책과 함께하는 수업도 오래 해오고 있고, 무엇보다 그림책을 많이 본다. 늘 즐겨 본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책은 유아들만 향유하는 책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서점만, 그림책을 한쪽으로 몰아 유아용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0~100세까지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림책은 매력 덩어리이다. 그림만 보아도 내용을 알 수 있고, 마치 미술관을 온 것 같이 그림에 몰입할 수도 있고, 때로 정감 있는 이야기가 그리울 땐 글을 읽으며 잔잔한 감동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때로는 눈시울도 촉촉하게 젖게 한다.
내가 애장 하는 그림책이 10여 권은 넘는다. 따끈따끈하게 새로 태어난 그림책에도 시선을 주고 그리고 내가 애장 하는 그림책 목록에 끼어들기도 하지만, 그림책을 보며 보낸 28여 년의 시간 속에서도 나만의 그림책 전당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책들이 있다.
그중 한 권이 '미스 럼피우스'이다. 미국의 작가 바버러 쿠니가 1982년에 출판한 책이다. 미스 럼피우스는 어린 시절에는 앨리스라고 불렸다. 바닷가 도시에 사는 앨리스는 저녁이면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를 들었다. 앨리스의 꿈은 먼 곳에 가보는 것이었고,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와서 살 거라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앨리스에게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라고 하셨다. 앨리스는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앨리스가 어른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몸이 아파지자 바닷가 마을로 돌아온다. 늘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도,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어.'라며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럼피우스의 생각에 세상은 이미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삶의 지침이 된 책이다. 지치고 위로받고 싶고 이기적인 마음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그리고 주변의 지인들과의 마찰 속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찾게 되는 책이다.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해결사처럼. 주인공 미스 럼피우스의 삶을 생각한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값진 것이 봉사라고 하는데, 모두가 살기 바쁜 현대에는 봉사는 할 일이 없거나, 뭔가 부족한 사람들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봉사를 하고 있지만, 봉사를 시작한 초기에는 상당히 많이 흔들렸다. 이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었으면서도 괜한 일을 한 것 같은 후회를 자주 하곤 한다.
미스 럼피우스가 자신이 한 일에 대가를 바랐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병든 몸으로 씨앗을 구입하고 정신 나간 늙은이라고 불리면서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루핀 꽃씨를 뿌렸던 일은. 할아버지의 말씀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일이었다면, 그런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면 금세 그만두었을 일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씀은 어린 앨리스의 마음에 작은 씨앗이었고, 그 씨앗이 자라 럼피우스의 마음에서 단단한 나무가 되어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이 생각한 일을 해냈고, 바닷가 마을은 봄이 되면 온 마을에 루핀 꽃이 가득 뒤덮인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사람이 살면서, 앨리스의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들을 한다면, 앨리스의 말처럼 세상은 멋질 거다. 우리 각자의 삶이 힘겨운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보다는 자신만 아름답고자 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보다 우리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되도록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세상은 훨씬 멋져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