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지나, 꽃이 피다

by 여운

며칠 전 아침, 냄비를 데우다가 그만 태웠다. 부엌에 연기가 퍼졌다. 나는 당황해 창문을 열고 환풍기를 켰다. 허둥대는 모습을 본 아이는 깔깔 웃었다. 주방은 어질러졌지만 나도 웃음이 났다. 서툰 아침도, 당황한 순간도 아이의 웃음 앞에서는 모두 사소한 일이었다. 엉망진창인 그 장면은 따뜻했다.


아이와 함께한 휴직 기간이 끝나간다. 달력에 표시한 복직 날짜가 점점 가까워진다. 마음이 복잡하다.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올라온다. 아이를 안고 보내는 하루는 느리다. 그러나 그 시간이 쌓인 속도는 빠르다. 어느새 휴직과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에 다다랐다.


복직을 앞두니 생각이 많아진다. 다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닐까. 뒤처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사회는 여전히 빠른 사람을 치켜세운다. 멈춘 시간은 ‘경력단절’이나 ‘공백’으로 불린다. 이 단어는 사람을 위축시킨다. 하지만 자연에는 공백이 없다. 겨울도 과정이다.


춘화현상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전에 반드시 추위를 지난다. 일정 기간 낮은 온도를 겪어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추위를 겪지 않으면 봄이 와도 반응하지 않는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어김없이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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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내는 방법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는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삶의 부담을 줄이는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풀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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