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움을 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불안을 대신 해결하고 있는 걸까
며칠전 둘째 아이와 놀이터에 갔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늘 사소한 장면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앞선다. 넘어지지는 않을지, 다치지는 않을지, 혹시 실패로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지. 그래서 나는 종종 ‘도와준다’는 이름으로 아이보다 먼저 손을 내민다. 그게 아이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으면서도, 어쩌면 그 손길 안에는 나 자신의 불안이 더 많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행대 앞에서 아이는 잠시 서 있다가 말했다.
“혼자 해볼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섰다. 도와주지 않겠다는 결심보다는, 아이의 선택을 한 번은 그대로 두어보고 싶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아이의 발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초반은 안정적이었지만,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움직임이 멈췄다. 몸은 좌우로 흔들렸고, 오도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손을 내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아이는 숨을 고른 후 나를 불렀다.
“엄마, 도와줘.”
나는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 손을 붙잡고 끝까지 함께 가려 하지 않았다. 가장 균형이 무너질 것 같던 지점에서, 정말 잠깐—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중심을 되찾은 뒤 다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건너갔다.
그 짧은 순간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도움이란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이유로 옆에 붙어 서 있는 것이, 사실은 그 사람이 혼자 설 수 있는 기회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우리는 상대를 위해서라기보다, 불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먼저 개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지속적인 보호가 아니었다.
가장 흔들리는 지점에서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짧은 순간의 손길 하나면 충분했다. 그 이후의 길은 아이 스스로 갈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이미 혼자 잘 살아가고 있다. 다만 어느 순간, 유독 균형이 무너질 것 같은 지점에서 멈춰 서게 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삶을 대신 살아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다시 평정심을 회복하게 해주는 작은 터치일지도 모른다.
도움은 어쩌면,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연습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짜 용기가 필요한 쪽은,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안고도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