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늘 김치냄새가 났다

엄마의 시간을 먹다

by 여운

아이는 처음엔 몰랐다.
김치가 이렇게 오래 남는 맛이라는 걸.

부엌에 늘 퍼져 있던 붉은 냄새,
엄마의 손에 묻어 있던 고춧빛,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던 조용한 시간들.
아이의 기억 속에서 김치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다.

어릴 때 아이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시고, 맵고, 낯설어서
고개를 돌리고 코를 찡그렸다.
그러면 엄마는 웃으며 말하곤 했다.
“지금은 몰라도 돼.”

엄마는 말없이 김치를 담갔고,
말없이 밥상에 올렸고,
말없이 그 시간을 살아냈다.
아이는 김치보다 먼저
엄마의 등을 기억했다.
묵묵히 하루를 견디는 모습,
손끝에 남은 붉은 기운,
그 속에 스며 있던 어떤 단단한 마음.

시간이 흐르자,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김치를 피하지 않았다.
밥 위에 올려 먹고,
국물에 말아먹고,
없으면 괜히 허전해졌다.
그때서야 알았다.
김치는 음식이 아니라
엄마가 살아온 시간이란 걸.

어른이 되어 혼자가 된 날,
냉장고 속 김치 한 통을 열며
아이는 문득 울컥했다.
집엔 더 이상 엄마의 기침 소리도,
부엌에서 들리던 칼 소리도 없었지만,
김치 냄새만은 그대로였다.
그 냄새가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어느 겨울,
아이는 처음으로 혼자 김치를 담갔다.
서툰 손으로 배추를 씻고,
양념을 버무리며
문득 깨달았다.
이건 맛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이구나.

그때 아이에게도 아이가 생겼다.
아기는 아직 김치 맛을 모른다.
다만 엄마 품에 안겨
부엌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든다.

아이는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김치 냄새 속에서 자랐겠지.
싫어했다가,
익숙해졌다가,
언젠가는 없으면 허전해지는 날이 왔겠지.

김치는 그렇게
한 집의 반찬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는 마음이 된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한 사랑이
시간 속에서 익어
엄마에게서 아이로,
아이에게서 또 다른 아이로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