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사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BADA Aug 10. 2015

봄 날은 간다

소설사진 : 한 장의 사진으로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 / 005



봄 날은 간다


“가끔 사람 같은 녀석들이 어슬렁거릴 거야. 충분히 경계를 하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 척 하면서도, 이미 너에 대한 관찰을 모두 끝낸 후야. 그러면 점점 네 눈에 뛰는 날이 많아지겠지. 점점 익숙해지도록 말이야. 영리해. 아니 영악하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 중 하나가 너를 선택한 날이 올 때면 넌 최대한 정중하게 그를 영접해야 해. 어떻게 그 날을 알 수 있냐는 표정이군. 가르쳐 주지. 딱 들어도 알 수 있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로 너를 부를 테니깐, 단박에 알 수 있지. 하지만 넌 그럴 필요가 없지. 왜냐하면 넌 이미······.”     


정말로. 진심으로 내 표정은······. 그러니깐 내가 선택되었다는 그 날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은, 누구나 인정 했을 거다. 아이 참. 그런데 여기엔 나랑 저 녀석 밖에 없으니 내 표정을 설명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미친 거 아니니? 라는 내 표정을 보고도 그딴 소리를 하다니. 그보다 넌 누군데?”    

 

“······. 이런. 벌써 잊어 버렸군. 기억 안나? 작년 오늘 네가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뭐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내가 먼 여행을 한 참이라 배가 좀 많이 고팠기도 했고 꾀죄죄했기 때문에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지만, 섭섭한 건 사실인걸. 자, 잠깐! 이봐 혜지!”     


난 뒤돌아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역시는 역신가? 그리고 다시 그 녀석을 바라봤다.     


“내 이름을 어떻게 알지? 너 대체 뭐야?”     


그러자 그 녀석은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서 거두며 대답했다.     


“기억해 내라. 난 네게 나를 영접하도록 만든, 고양이 행성에서 온 키치리온 판 네투 경이다.”  

   

난 전화기를 들었고, 다이얼을 돌렸다. 1. 1. 2. 

     

“저기요. 이상한 사람이 길을 막고 못 가게 해······요. 갔네요. 해결 됐어요.”     


경찰에 전화를 하자마자 그 녀석은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갔다. 빠르기는 진짜 고양이만큼 날렵했다. 


고양이 행성에서 온 키치리온 판 네투 경
소설, EYE craftsman <세공술사>의 주인공을 차용

작은 연립주택 1층에 혼자 사는 직장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고 엄마가 매번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요즘 같아서는 좀 안 조심 하고 싶은 것 같은 마음이 강하다. 마지막 연애가 무려 3년 전이었으니, 아까 그 미친놈이 진짜 미친놈이 아니라면 아마 모른 척 연락처를 쥐어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그래서 처음엔 말을 들어주고 있었지.     


여튼 아직 토요일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에, 과년한 처자가 혼자 편의점에 삼각 김밥과 라면 그리고 소시지와 우유 참치캔을 사들고 들어오던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다 짜증이었다. 가만 보자 그런데, 오늘은 그 녀석이 올까?       


그때 창밖으로 그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나보다.     


난 작은 접시에 우유를 담고, 다른 접시에는 물에 한 번 살짝 헹군 참치를 담았다. 그리고 소시지를 하나 까서 네 등분을 해서 참치 옆에 놓았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큰방 건물 뒤편으로 나있는 창문으로 향했다. 이 건물은 정면에서 보면 1층 창문이 거의 웬만한 성인키보다 높이 보이지만 약간 경사진 곳에 지어진 탓에 건물 뒤편에서 보면 일층 방 쪽 창문이 땅에서 30cm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창문을 열면 건물 뒤편의 방치된 정원 아닌 정원으로 간단히 드나들 수 있었다.      


역시 그 곳에는 때가 꼬질꼬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내 방 창문 앞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봄이었고, 새싹들이 돋아나는 정원 아닌 정원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는 목련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이미 목련은 팟! 하고 피어나 있었다. 정오의 햇빛이 앙상한 목련 가지를 수월히 통과해 네루에게 가만히 내려앉았다.     


“네루 오랜만이야. 밥 먹자.”     


나는 두개의 접시를 내려놓고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오늘은 한번 쓰다듬게 해줄까? 하는 작은 기대와 함께.     


네루는 잠시 뒤 그루밍을 마치고 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오드아이. 그 눈으로 나를 가만히 보더니 이내 엉덩이를 들고 똑바로 서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접시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안 먹어! 이거 치워!”     


두 개의 접시를 하나씩 앞발로 날려버렸다. ‘안 먹어’에 우유를 ‘이거 치워’에 참치와 소시지를.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봄날은 간다 2 ㅣ 2011, 미발표 ㅣ F9.0, S 1/80, ISO 100ㅣ 프린트 사이즈 미지정 ㅣ Original Print 1/? ㅣ Estate Print ∞


“고, 고양이가 말을 해·······.”


“왜? 놀랐나? 그리고 난 네루가 아니라 네투다! 키치리온 판 네투!”


“네, 네투······? 그, 그건 아까······.”


“불경하다! 경이다 경! 반드시 앞에 서를 붙여라! 미천한 인간 놈아!”     


이 말도 안 되는 일은 대체 무슨······. 그럼 아까 만났던 그 미친놈이 진짜 이 고양이라고!?     


“내가 너를 친히 내 사역인으로 삼은 지 딱 1년 되는 날에 너에게 나타나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너에게 큰 선물을 하려고 했건만. 감히 네가 나를 몰라보고!”


“그, 그런······.”


“아무래도 내가 사역인을 잘못 고른 것 같다. 오늘부로 너를 내 사역인에서 파직한다. 이로서 너는 나 서 키치리온 판 네투의 호의와 보호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훌쩍 맞은편 담장에 올라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대낮에 도깨비, 아니 여우에게 홀린 듯 나는 그 뒷모습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선물이라고? 외로워서 몸부림치는 나를 위한? 그럼 그 선물이라는 건······?     


“저기 네루······. 아니 네투 경. 나도 그런 꼬질꼬질한 모습으로는 싫다구.”     


내가 대체 뭐라고 하는 건지.     


“여튼, 마음 바뀌면 다시 와. 그때는 목욕부터 하고 나서 말 걸어주길 바라.”    

  

난 다시 창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고 한숨자고 나면 이 어이없는 꿈도 깨어나 있겠지.  




※ Original Print 및 Estate print 출력품 소장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adbada@daum.net 으로 문의 부탁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빨간 고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