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 한 장의 사진으로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 / 025
원시도시_unbalance
“적들의 세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모양이군.”
한창 공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성벽 책임자 한셀은 깜짝 놀라며 사령관을 돌아봤다. 인류 최후의 보루이자 유일한 망치인 헥터 사령관은 그다지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셀은 바짝 달아올랐던 긴장을 내려놓고 사령관 옆으로 가서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봤다.
울울창창한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생동감과 역동성은 무서울 정도였다. 그러나 한셀은 어제 본 모습 그대로인 적의 모습에 내심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가 달라 진거지?’
매일 보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도무지 뭐가 어떻게 달라진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령관님. 걱정하시는 점은 알겠지만, 이 성벽이 완성되면 적들도 더 이상 전진 하지는 못할 겁니다.”
한셀의 말에도 사령관은 여전히 평이한 얼굴로 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은 부드러웠고 햇살은 따가웠다. 만약 30여 년 전이었다면 이 날씨와 햇빛만으로도 삶의 충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성벽의 완성을 1년쯤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겠나? 한셀.”
“네!?”
사령관은 한셀의 반문에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한셀은 자신의 귀를 의심 했지만 분명 잘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말이 사실이라면 사령관은 앞으로의 공사기간은 8개월 남짓 남았음을 통보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사, 사령관님. 불가능합니다! 15년이란 공기를 10년으로 단축시킨 것도 엄청난 무리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나 더 단축시키라니요. 재정의 확보가 된다 해도 물리적인 부분에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만약 그 점을 무시하고 공기를 단축시키면 성벽의 완성도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들어날 것입니다.”
한셀이 헥터의 요구가 불가능의 영역에 있음을 어필하자 사령관은 그제야 한셀을 돌아봤다.
“완벽한 성벽이어야 하네.”
“물론입니다. 사령관님. 그래서 현재의 진행률이 최선입니다. 저의 임무는 완벽한 성벽을 만들어내면서도 최대한 빨리 이 성벽을 완성시키는 것······.”
“한셀. 그러니, 공기 단축에 대한 방법을 찾아 두도록. 그럼 난 내일 다시 오겠네.”
한셀이 잠깐 품었던 기대감은 자신의 말이 사령관으로부터 싹둑 잘렸을 때 이미 날아갔다. 이미 예전에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이라니! 한셀이 최소한 3일, 아니 2일이라도 유예시키려 입을 열려는 순간, 사령관은 등을 돌렸다. 돌아선 사령관을 차마 불러 세울 수 없었던 한셀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공기단축에 필요한 모든 예비일 들과 멀티 리프팅에 대한 가능성, 그리고 그 어떤 조금의 여유 시간까지 싹 다 계산하려면 지금부터 내일 이 시간 까지 잠은커녕 화장실도 갈 시간이 없을 듯 했다.
원시도시 시리즈_unbalance ㅣ 2010, 미발표 ㅣ F2.8, S 1/1,600, ISO 100ㅣ 프린트 사이즈 미지정 ㅣ Original Print. 1/? ㅣ Estate Print ∞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4개월입니다. 그 어떤 조건으로도 완성도를 포기하지 않은 채 성벽을 완성 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년입니다.”
참모들은 사령관이 망루로 이용되는 곳에서 적들을 바라보며 한셀의 보고를 받고 있는 동안 두어 발자국 뒤에서 있었다. 때문에 한셀이 사령관에게 보고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고 몇몇은 그 보고에 환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들이라면 아무리 쥐어짜도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적들을 우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한셀은 불편하게 말을 이었다.
“저도 더 줄이고 싶지만······, 이게 한계입니다. 아니, 이미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만 15세 이상부터 노역에 동원되는 인력수급안도 13세로 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3교대였던 노역시간도 2교대로 바꾸었습니다. 내무부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하겠지만, 관내 모든 크레인의 절반을 징발할뿐더러 자재의 공급역시 1/3로 줄였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떻게 공기를 줄인단 말입니까······.”
한셀은 거의 울 듯 했다. 헥터는 그런 성벽 책임자 한셀의 어깨에 손을 턱하고 올렸다. 한셀은 크게 움찔했지만 사령관은 개념치 않았다.
“군의 지원도 포함했나?”
“당연합니다! 군의 공병대는 교량 위에 놓아둔 차들에 부비트랩을 설치 한 뒤로 바로 성벽 제작에 투입되었습니다!”
한셀은 자신이 그런 것도 감안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사령관에게 섭섭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니. 한셀. 공병대는 말고 말이네.”
“네?”
이번 반문은 어제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지금 사령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겐 2만 명의 정예병이 있지 않은가? 민간인들 보다는 훨씬 나을 텐데 말이지.”
“안됩니다! 사령관님!”
즉각적인 반응은 뒤에 있던 참모진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반응은 완벽한 거부였다. 그러나 마나 한셀은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재계산에 들어갔다. 사령관은 그런 한셀을 두고 참모들을 돌아봤다.
“안 되는 이유는?”
“그 2만 명의 군사는 인류 마지막 군대입니다. 저 적들의 도발에 대비해 강도 높은 훈련과 충분한 휴식은 필수입니다! 이미 공병대가 성벽 건설에 모두 투입되어 있어서 웬만한 훈련은 병사들이 직접 진지를 구축하거나 제식, 제목 제거 훈련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때문에 훈련양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자네는 이 성벽이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2만 명의 병사로 저 적들을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인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성벽은 1년이면 완성이 될 것입니다. 그때 강한 군대만 있으면 인류의 마지막 도피처인 이곳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사령관은 군인정신의 모범이라 불릴 수 있는 참모를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참모는 그 미소를 보자 얼굴이 굳었다. 사령관의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헥터의 특징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미소에 숨어진 의도는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6개월 안에 적들이 몰려온다면?”
“그런 징조는 없습니다.”
“징조라······. 난 그걸 믿지 않네.”
“네?”
“자네가 아마 서른 네살인가? 그렇지?”
“그렇습니다.”
“그럼. 자네는 태어나서 세상을 인지하면서부터 인간을 살리는 식물과 파괴하는 식물을 따로 구분하면서 살았겠군.”
“······.”
“하지만 나나 좀 늙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지. 그때만 하더라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식물이란 없었네. 독초나 잡초 따위를 이야기 하려는 생각은 하지 말게. 그것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인간을 죽일 수는 없었으니깐 말이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그런 식물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지. 누가 예측이나 할 수 있었겠나?”
참모는 자신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늙은 사령관 말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마 적들은 마지막을 노리고 있을 걸세. 나는 아직 몇 년을 저렇게 그대로 있는 적들을 이해 할 수 없어. 물과 햇빛은 충분하고 우리들도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있으니 예측 대로였으면 저들은 훨씬 더 세를 불렸을 거야.”
“그거야 저희들이 강에 맹독을 풀어서······.”
“그 독이야,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나 죽일 수 있겠지. 적들은······, 잘 모르겠네. 그래서 나는 걱정이 되네. 늙은 군인의 감이랄까? 내가 만약 철벽같은 방어를 준비하는 적들을 공격 하려고 한다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시간에 공격을 하면 가장 효과가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봤네.”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 완성 되지 않은 성벽이라도 성벽은 성벽입니다. 차라리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다 완성되지 않은 성벽에도 배치될 수 있도록 훈련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내 말이 그걸세.”
“네?”
“생각해 보게. 그 훈련이란 걸 하게 되면 성벽 공사는 자연스럽게 지연될 걸세. 하지만 성벽 공사를 계속 유지하면서 군인들이 성벽 배치 훈련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네. 바로 이 성벽에 최대한 익숙해지는 거지.”
공사에 투입되면서 말이네. 는 생략해도 참모들은 그 말을 들은 것과 다름 없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아나? 저 푸른 적들로부터 이 세상을 구하겠다는 미친놈이 아닐세.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야. 그게 그의 자식이 됐건, 부모가 됐건, 연인이 됐건, 그 한 사람을 살리려는 의지로서 자신을 희생 했을 때, 이 세상도 살리고 그 한사람도 살릴 수 있으니깐 말이야. 현재로서는 한 사람이 군인으로서 내는 힘보다는 성벽을 만들면서 내는 힘이 더 중요할 때야. 이보게. 한셀”
한참을 생각하던 한셀은 사령관의 부름에 흠칫 놀랐다.
“어떤가? 대충 계산이 나왔는가?”
“구체적인 조건은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현재 공기에서 물리적인 부분은 더 이상 증가 할 수 없습니다. 인력은 결국 투입 될 수 있는 양이 한정이 되어 있지만 군대의 자원이라면 공기 증가에 충분히 도움이 될 자원입니다.”
“그래서?”
“1만 명의 지원이면 앞으로······, 대략 6~7개월 쯤 걸릴 것 같습니다.”
사령관의 눈빛이 변했다. 그리고 얼굴에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군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복수.
“됐어. 되도록 6개월 안으로 해줬으면 좋겠군.”
“그, 그건······.”
“군인은 치안유지군 3천명만 두고, 1만 7천명을 지원하겠네. 그리고 노역인력수급안은 만 15세로 그대로 유지하게. 그럼 되겠나?”
한셀은 그제야 얼굴이 밝아졌다.
“해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참모진들은 한셀과 의논해서 성벽이 완성되는 동시에 배치 될 수 있도록 훈련과 공사를 병행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리고 그대로 진행하도록. 성벽이 완성이 되면 바로 공격을 시작할 생각이니깐.”
“네. 사령관님!”
헥터는 적들을 향해 돌아섰다. 아직 망루는 공사 중이었지만 바깥쪽으로는 허리쯤까지 오는 벽이 있었다. 헥터는 그 벽을 양손으로 악 집고 적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규칙이 있느냐 없느냐? 규칙이 있는 악당보다 규칙이 없는 일반인들이 더 무서운 법이지. 바로 너희들이 그랬고, 앞으로 우리들이 그럴 것이다.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우린 인류 문명의 꽃인 콘크리트 문명을 반드시 지켜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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