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사진 : 한 장의 사진으로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이야기 / 027
그, 빈자리.
“또?”
“······.”
상일은 말이 없었다. 딱 보기에도 다 식어빠진 자판기 커피를 입 앞에 가져다 댄 채, 그저 한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인석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에 머금은 담배 연기를 상일의 얼굴에 훅ㅡ 하고 내 뱉었다.
“악! 아아악! 뭐야!?”
“정신 좀 차리라고.”
뻔뻔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던 인석을 향해 상일은 으르렁 거렸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자꾸 시선이 그 곳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봐 불알친구. 입사동기. 또는 아직도 중3때의 첫사랑의 흔적을 찾아 서른 넘게 헤매고 다니는 불쌍한 로맨티스트. 아니면 병신아. 내 말 좀 들어보렴. 그녀는 수연이 아니야.”
상일은 자신의 이 오랜 친구이자 한 회사를 같이 다니는 녀석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 뭘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도, 녀석 특유의 날카로움도 잠시 좀 접어 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상일은 다 식은 자판기 커피를 하수구에 쪼르륵 버리고는 빈 종이컵을 인석에게 건넸다.
“담배재 함부러 버리지 마라. 넌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지랄. 안도현 선생이 들으면 유치하다고 고소하겠다. 그보다 아까운 커피는 왜 버려?”
“다 식어서.”
“뭐하느라고 뽑아 놓고 마시지도 않고.”
“그러게.”
“하. 내가 말을 말자. 여튼 적당히 하고 들어와라. 오늘 기획안 통과 못되면 또 야근이다.”
상일이 내민 종이컵에 다 피운 담배를 톡 하고 버린 인석은 그대로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상일은 종이컵을 돌려 담뱃재의 불씨를 확실히 끄고는 근처 휴지통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좋아하던 그 빈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의 반을 그렇게 그 빈자리만을 바라보고 있던 상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던 그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최근 한 달 동안 매 점심시간이면 회사 앞 쉼터 돌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햇볕을 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일의 첫사랑과 닮아도 너무 닮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점심시간에 보이지 않았다. 상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녀가 마시던 브랜드의 커피숍까지 가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는 매장을 서성거리기도 했고, 일찍 퇴근한 뒤에는 점심시간이 끝나는 시간에 그녀가 들어가던 옆 건물을 주시하며 마냥 서 있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녀는 없었다. 점심시간에도 퇴근시간에도. 그리고 남은 것은 그녀가 앉아서 햇볕을 쬐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던 그 빈자리뿐이었다.
오래 전 상일의 첫사랑이 전학을 가던 날. 오래 담고 있던 마음을 저하지 못했던 그 자신의 마음의 빈자라에 또 하나의 빈자리가 생겼다.
언제나 그 빈자리가 채워질까? 연애를 하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아니면 성욕이라고는 생기지도 않을 정도로 시어빠진 노인이 되면?
상일은 갖지도 않은 감성질이라고 자신에게 혀를 차고는 회사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두 번쯤, 뒤를 돌아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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