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그 남자의 주말농장 쿠킹 라이프 / 012
주말농장의 끝 : 김장 TWO
어머니와 이모는 절인배추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부터 확인한다. 보통 날이 추우면 배추가 잘 절여지지 않기 때문에 자주 뒤집어 주어야 하는데, 어제는 날이 별로 춥지 않고 좀 오래 절이기로 해서 아직 한 번도 뒤집어 주지는 않았다.
가끔 배추가 적절한 시간대에 적당하게 절어지지 않으면 뻣뻣한 배추로 김치를 담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숨이 죽겠지만 잘 절여서 김장을 한 김치보다는 숙성된 아삭함이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배추가 죽었는지 살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서 소금을 더 치거나 시간을 조금 더 두고, 볼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결정은 김장마스터인 어머니께서 하시는데 행여 어머니께서 “아이고. 배추가 살아서 다시 밭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그러네.”라는 말씀을 하시면 재빨리 일어나서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 뒤집는 작업을 도와드려야 한다.
다행이 이번에는 배추가 아주 적당히 절여졌고, 아침이 준비 되는 시간까지 여잠을 마저 잘 수 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사진기를 들고 일어났다. 전날 너무 늦은 탓에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을 해결해 볼 참이었다. 사진을 찍다보니 아직도 주말농장에서 사람의 양식이 될 만한 것들이 넘쳐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까워 이번 기회에 모두 수확을 할 태세였다.
특히 상추의 경우에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월동도 가능하다. 보시다시피 늦가을에 저렇게 고운 잎을 내밀고 있으니 냉해에 매우 강한 채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상추들은 포기 째 뽑아서 비닐하우스 안에 30cm 정도 땅을 파고 옮겨 심는다. 그리고 그 위로 굵은 철사를 이용해서 두꺼운 비닐을 두 겹에 걸쳐 씌우고 두꺼운 담요를 덮으면 월동이 가능하다. 물론 두꺼운 담요는 조금 틈을 두어 낮에는 햇빛이 조금씩 들어 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듬해 보면 전부 다 살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2월 말부터는 죽은 잎을 정리하고 담요를 걷어서 햇빛에 충분히 노출 시키면 3월 초부터 싱싱한 상추를 먹을 수 있게 된다. (다른 집들은 보통 3월초에 씨를 뿌리니 제대로 된 상추를 먹으려면 한 4월말이나 5월이나 되어야 한다.) 심할 때는 영하 20도가 넘게 내려가는 주말농장의 날씨를 감안하여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작물이 상추다.
대충 사진들을 찍고 나니, 슬슬 본격적으로 김장 준비가 시작됐다. 그 사이에 이모부 내외와 아버지가 도착했고, 식구들은 슬슬 부재료를 수확했다.
서리가 오고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 때문에 이미 지난주에 뽑아서 창고에 쌓아둔 무를 꺼내왔다. 주말농장의 땅이 꽤나 질어서 매년 무 농사는 매우 잘 됐었는데, 올 해는 김장에 쓸 정도 밖에는 되질 않았다. 배추가 잘 되면 무가 말썽이라더니. ㅋ 다행히 김장에 쓸 요량은 되어 보였다.
무거운 무를 창고에서 마당까지 다 날라 놓고, 쪽파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쪽파가 별로 없어 보였는데, 수확을 해 놓고 보니 양이 상당했다. 굵기도 큰 것은 작은 대파만 해서 김장에 쓰고도 남을 정도였다.
이건 시래기용 무다. 보통 무가 매우 잘된 해는 시래기용 무를 따로 심지는 않는다. 재작년인가? 무가 매우 잘된 해에는 무는 김장용으로 쓰고 무청은 시래기로 만들어도 충분했는데, 올해는 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시래기용 무를 느지막이 따로 심어 두었다. 덕분에 시래기용 무청을 어느 정도 수확할 수 있었지만 세 가정이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마치 알타리무처럼 달린 무들은 석박지용으로 사용 할 예정이다.
필자는 석박지를 진짜 좋아하는데, 아이고, 이거 얼마 되지를 않는다.
그리고 갓이다. 갓은 올해 꽤나 잘 되어서 모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응? 잘 되었는데 웬 실망이냐고? 갓 손질을 해본 적이 있는가? 쪽파랑 무청이 있으니 갓은 없으면 안 넣거나 조금만 넣더라도 김치는 된다. 그런데 갓이 잘 되어 버렸으니, 김치 말고는 다른데 쓸 일도 별로 없고, 버릴 수는 없고, 결국 김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거 손질이 만만하지 않다.
더욱이 쪽파도 많고, 무채까지 치려면 서너 명이 두어 시간 동안 달려들어야 한다. 진짜로 이번에는 쪽파와, 청갓, 무청 손질에 여섯 명이 달려들어 한 번도 안 쉬도 거의 두 시간동안 손질을 했다.
결국 우리는 해냈고, 잠시 쉬기로 했다.
“양미리 없는 김장은 없다”라는 철칙이 있는 삼촌은 아침에 들어오는 이모에게 양미리를 부탁해서 사오도록 했다. 아직은 꾸덕하게 말린 양미리가 나오지 않는 관계로 생물 양미리를 사오셨는데, 때문에 구워 먹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물이 자작한 양미리 조림으로 해서 먹었는데, 나름 살이 올라서 맛도 있었다.
그렇게 또 양미리에 소주 한잔을 걸치고 작업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야외 아궁이에 불을 놓아서 솥을 얹고 된장을 풀기 시작했다. 아직 김치소도 만들지 않았는데 고기부터 삶으실 요량이었다. 수육용 고기는 삼겹살과 앞다리로 해서 두어 시간 잔불에 푹 삶았다. 점심때쯤이면 수육이 야들야들하게 잘 익어 있으라고 말이다.
그 사이 삼촌과 필자는 한 해 동안 시중에서 사면 아마 100만원 어치는 가뿐하게 넘을 토마토를 제공해준, 토마토 밭을 정리했다. 토마토는 서리만 없고 영하로만 내려가지 않으면 끝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데, 올해는 서리가 좀 일찍 와서 토마토가 시래기 삶아놓은 것처럼 변해버렸다.
내년 봄에 정리 하고, 그냥 나둬도 되지만 삼촌과 어른들은 을씨년스럽다고 빨리 정리를 해버리는 쪽을 선호한다. 결국 삼촌과 필자가 정리를 했는데, 하고나니 마당아래 있던 텃밭이 매우 환해졌다. 덕분에 주말농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아졌다.
사람 사는 것이 그런 것 같다.
겨울동안에는 누가 자주 들어오는 것도 아니라서 가만두어도 되고, 손 쓸 필요도 없고, 일이 꼭 필요할 날, 좋은 봄날에 해도 되지만, 굳이 밭을 정리하고, 마당을 청소하고 겨울을 맞이하는 것은 일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간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인 것이다.
토마토 밭을 정리하고 필자는 땅에 떨어진 덜 익은 토마토와 다 익은 토마토를 구분해서 주워 창고로 옮겼다. 다 익은 토마토는 갈아서 먹고, 덜 익은 토마토는 김치나 장아찌를 담아서 먹으면 맛이 좋다.
자. 이제는 점심이 준비되기까지 각자의 시간이 왔다. 점심 이후에는 무채 작업과 김치소 작업을 하는 1번 팀과 배추를 씻는 작업을 하는 2번 팀으로 나눠서 일을 하게 되기 때문에 좀 쉬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이다.
아버지와 이모부는 탈모와 모발 건강에 매우 관심이 많으심으로 (움화화화~ 필자는 외탁을 해서 모발 하나는 끝내준다!) 시험 삼아 백수오를 심었다. 얼마 전 가짜 백수오 파동도 있고 해서 직접 심기로 했다. 아직 1년생이라서 올해는 씨앗만 받기로 했는데, 두분은 아주 그냥 열정적으로 수확을 했다.
그 사이 삼촌은 더덕씨를 털었다. 더덕 역시 씨앗을 뿌려두면 알아서 잘 자라는 탓에 씨를 받아 뒷산에 조금 뿌려 놓으면 1년생도 향이 매우 진한 더덕을 양 것 채취 할 수 있다. 삼촌은 특히 더덕을 좋아하는지라, 더덕씨앗을 열심히 털고 까불었다.
더불어 필자는 더덕순 무침을 진짜 좋아하는데, -_-;;; 더덕순을 따면 더덕이 안 자란다고 만날 혼나기 일쑤다. 내년에는 저 씨앗을 좀 훔쳐서 내가 심어 봐야 겠다.
그러고 보니 큰 틀에서 모여 함께 운영을 하는 주말농장이지만 개인적인 관심과 취향에 맞게 각자의 품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벌써) 건강에 매우 관심이 많은지라 주말농장은 건강식품 채취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개는 운지버섯이나, 오갈피열매나 쇠뜨기 등을 달여서 물처럼 마시는데 면역력 강화에 매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엉겅퀴다. 엉겅퀴는 실리마린이란 간 건강에 기가막한 약물을 만드는 재료로서 피를 멎게 하고 간을 보호하고 재생하는데 그 효능이 탁월하다고 한다.
보통 실리마린은 엉겅퀴 씨방과 씨앗에서 추출하는데 가을에 나는 엉겅퀴의 뿌리에도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하여, 큼직한 엉겅퀴가 몇 개 눈에 보이 길래 바로 채취를 했다. 잘 말려서 끓여 물처럼 먹으면 좋다.
아! 엉겅퀴는 반드시 고무장갑이나 두꺼운 장갑을 끼고 호미가 아니라 쇠스랑으로 흙을 깊이 찔러 뽑아내야 한다. 엉겅퀴는 가시가 매우 많고 날카롭고 딱딱해서, 잘못 잡으면 대번 피를 보게 마련이다. 필자도 이번에 목장갑을 끼고 작업 작업을 했는데도 두어 번이나 찔렸다. 한번 찔리면 꽤나 욱신거린다.
다 캐낸 엉겅퀴는 깨끗이 씻어서 말리는데 이때는 고기 굽는 집게를 이용해서 흐르는 물에 씻고, 뿌리는 못 쓰는 칫솔을 이용해서 닦으면 안전하게 손질 할 수 있다.
집에 와서 손질한 엉겅퀴 입은 생으로 물에 끓이기로 했다. 대추 몇알 넣어서 끓이면 먹기 편하다. 단 운지버섯 처럼 맛이 구수하거나 하지는 않다. 못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좀 느글거린다.
뿌리는 따로 햇볕에 잘 말려서 끓이기로 했다. 사실 가을 엉겅퀴는 뿌리가 핵심이라고 한다. 잘 말려서 겨울에 한번 끓이면 1주일 정도 마실 수 있는 양이 나올 것 같다. 연말에 술독에 빠질 수도 있는 사람들에겐 꽤나 도움이 될 수 있다랄까? ㅋ
이렇게 각자의 업무를 보는 동안 필자는 커피 로스팅을 시작했다. 갑자기 왠 커피로스팅이냐고? 원래 필자는 오랫동안 내 카페, 남의 카페를 전전하던 사람이라 로스팅도 한 8년 정도 해왔다. 하여 공기 좋은 주말농장에 조그마한 로스팅 룸을 만들어 놓고, 카페를 하는 동안에는 직접 로스팅을 해서 영업을 했다.
현재는 잠시 쉬고 있는 관계로 로스팅은 한 달에 한번 정도 필자와 어머니가 소비할 정도만 하고 있는데, 겨울에는 주말농장에 자주 들어 올 수 없어서 약 두어 달 치 로스팅을 해야 했다. 개인적으로 한 달에 약 2Kg정도 소비하는 것 같으니 못해도 5Kg을 로스팅 해야 했다.
필자는 커피숍 창업 컨설팅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작은 평수의 지역기반 커피숍 창업 하실 분들은 연락주세요~ ^^ 참 저렴합니다.
5Kg 로스팅에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거의 앉아서 하면 됨으로 나에게는 꽤나 쏠쏠한 쉬는 시간이 된다. 적당히 적은 볼륨으로 음악을 틀어놓고(커피 크랙소리를 들어야 해서), 생두를 핸드픽하고 있으면 만사가 다 편안하다.
나중에 이 브런치를 통해서 이벤트 차원에서 갓 볶은 원두도 나눔을 해보고자 한다. 그러니 휴재기가 있더라고 참고 견뎌주시길~
그렇게 커피를 볶고 있는 중에 아버지와 이모부는 또 뭔가를 두고 투탁거리고 있었다. 두 분은 참 친한데, 가끔 투탁거리는 것으로 그 친함을 과시하시곤 한다. 이번엔 또 뭐로 저러시나? 하고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결국 이모부가 장갑 낀 손으로 개구리 한 마리를 들고 오셨다.
문제는 그 개구리가 금색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 개구리가 겨울잠을 자려는 참개구리라고 주장하시고, 이모부는 북한에 주로 서식하는 금개구리라고 주장하고 계셨다.
필자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개구리였는데, 모양은 참개구리 같이 생겼지만 색깔은 확실히 달랐다. 그러고 보니 무늬도 조금은 달라보였다. 여튼 인터넷을 찾아보니 금개구리도 이렇게 완전히 노란 녀석은 없어 보여서 매우 신기했다.
결국 결론은 내지 못하고 가까운 개울가에 놓아주었는데, 서울에서 가까운 이곳에 반딧불(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둘 다 있음)이며 (금)개구리며 다양한 생태환경이 잘 보전되어 있다는 것이 아직도 필자에게는 신기하게 생각되곤 한다.
각자의 업무들이 끝이 났다.
그 사이 수육은 잘 삶아졌고, 보쌈속도 한 접시 뚝딱 만들어 놓았다. 굴과 함께, 절인 배추에 싸 먹는 맛이 꿀맛이다. 필자는 끝까지 있고 싶었지만 일이 있어서 어쩔 수없이 돌아와야 했다.
다음에 계속
다음 편은 이전에 기록한(올해 말고) 김장자료를 가지고 포스팅 하도록 할 예정임으로 내용의 연결이 조금은 어색 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히는 바임!
아. 그리고.
매거진을 하나 더 발행합니다.
The 남자의 주발밥상의 스핀오프 시리즈가 될 것 같습니다.
주말농장에 넘쳐나는 허브를 이용한 레시피 매거진이 될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 연재를 할 예정이고, 요일은 아직 미정입니다.
매거진 타이틀은 <내맘대로 허브요리>입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
<내맘대로 허브요리>
바로가기
정식연재는 화요일에 찾아 옵니다.
주중에는 중간중간 사진 위주로 주말농장 소개가 올라옵니다.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