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렐 차페크는 그의 작품 <로봇 R.U.R.> 등에서 ‘대량생산’이라는 주제를 되돌아본다.
‘대량생산’은 기계가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기계에 봉사하게 된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카렐이 1924년 여름에 개최된 ‘대영제국 박람회’에서 했던 발언들은 회의적인 것 이상이었다.
“현대 문명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둘도 없이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은 기계적입니다. 기계는 아름답고 완벽하지만, 그들에게 봉사하는 삶 혹은 그들에게 종속된 삶이란 더 이상 아름답지도, 빛나지도, 완벽하지도, 매혹적이지도 않습니다. …” 물론 카렐은 <로봇 R.U.R.>에서 ‘산업주의’가 파괴적인 경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카렐은 앞서 《The Saturday Review》에 올렸던 논평에서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지금 제 두 번째 생각은그 희극이 진실에 관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공장장 ‘도민’은 기술적 발전들이 힘든 육체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것임을 입증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런 도민은 옳습니다.
톨스토이 같은 생각을 가졌던 건축가 ‘알퀴스트’는 도민과는 정반대로 기술적 진보가 인간을 좌절시키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알퀴스트의 주장 또한 옳았다고 봅니다.
‘부스만’은 산업주의가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도 옳습니다.
‘헬레나’는 인간이 이렇듯 기계에 의존하는 점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합니다. 그녀는 아주 옳습니다.
최종적으로 로봇들은 이런 모든 생각들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옳다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렇듯 여러 대조적인 생각들에 붙여줄 이름들을 따로 찾을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제가 강조하려는 것은 이 사람들이 보수적인 사람들이건, 사회주의자들이건, 노랗건 뻘겋건,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 모두의 생각이 옳건 아니건 간에 그러한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들 모두는 이들이 가진 믿음과 관련해서 물리적ㆍ정신적인, 그렇기에 나름대로 아주 진지한 동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그들의 동포들 중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본능에 따른 것입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대사회의 대립 중에서 두 개의, 세 개의, 혹은 다섯 개의 비슷비슷한 중대하고 숭고한 생각들 사이의 유사한 충돌을 목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현대 문명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요소는 어떤 인간적 진리가 그렇지 않은 진리를 상대로 일어선다든가, 어떤 이데올로기가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대항해서 일어난다든가, 어떤 긍정적 가치가 그렇지 않은 가치에 대항하여 일어난다든가, 숭고한 진리와 비열하고 이기적인 악마 사이의 충돌이라 일컬어지는 그러한 대립 같은 것이 표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희곡의 두 번째 주제에 관한 이 설명에서 상대주의 철학의 주장을 간파하기가 어렵지 않다.
모든 이들은 나름대로진실을 가지고 있다.심지어 그들의 행동이 아주 반대되는 의견들과 관심사들에서 튕겨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자들은 순전히 관념적인 동기들에 따라 행동하기 마련이다.
카렐도 그의 희곡 <강도>와 <로봇 R.U.R.>을 공연한 뒤에 쓴 단편 <절대적으로 거대한 것>을 포함한 다른 작품들에서 비슷한 경향을 지닌 의미를 설명하려고 시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