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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Nov 15. 2024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배급제

- 이미 사라진 어느 영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홈페이지 글 번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옷, 금속으로 된 세간류, 석유제품과 함께 모든 주식거리 및 부식거리를 배급했다. 이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 영국이 매년 5500만 톤에 달하는 식품을 세계 각국에서 수입한 데서 비롯되었다.



1939년 9월에 전쟁이 발발한 뒤 독일 잠수함들이 영국으로 향하는 수송선들을 공격하자 영국 정부로서는 해외에서 들여오던 식량의 양을 줄일 수 밖에 없었다(라고 쓰고 "되니츠 개객기!"라고 읽는다). 이로써 민간인들이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는 식료품의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 이르자 영국 정부는 식량 배급 제도 도입을 결정했다.



1940년 1월 8일 (중요한 반찬거리인) 베이컨과 버터, 설탕의 배급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배급통장(Ration Books)'이 큰 이슈가 되었다. 이 제도에 따라 식품 등을 구매할 때는 돈과 함께 쿠폰(Coupon, 배급표)을 묶은 통장을 지참해야 하며, 계산할 때 가게 점원은 손님의 통장에 있는 쿠폰에 표시를 해야 했다. 이는 잼, 치즈, 차, 밀가루 등을 구입하는 데도 통용되었다. 



이는 고기와 베이컨 등의 판매량이 예년 수준을 회복한 뒤인 1954년 7월 4일에 종료되었다. 



1939년도에 발행된 배급 통장의 표지(왼쪽)와 버터를 구매한 뒤 받은 도장




베이컨과 버터를 구매하는 데 사용된 쿠폰들






* 각종 품목들이 배급제에 포함된 연도 (감자와 신선한 과일, 생선 등은 배급에서 제외)




* 전쟁 당시 어른 한 명이 한 주에 구입할 수 있었던 식품의 수량





이외에 매월 쿠폰 16장에 해당하는 양의 식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식품 배급이 시작된 지 2년 뒤인 1941년 6월부터는 옷도 배급하기 시작했다. 옷 공장들과 노동자들도 탄약 생산에 동원되었으며, 옷감 원료의 부족 때문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직접 옷을 지어서 혹은 기워서 입어야 했다. 또한 배급제에 따라 사람들은 새 옷을 1년에 48벌 구입할 수 있었다. 옷 배급 규정은 다음과 같으며, 이는 아동 한 명을 입히는 데 필요한 양이다.






아울러


1941년 7월부터는 탄광의 광부들 또한 징집되었기에 석탄 배급이 시작되었으며,


1942년 2월부터는 원료인 유지(油脂)가 식품으로 사용될 수 있어서 비누도 배급되기 시작했다.


1942년 3월부터는 석탄, 전기, 가스도 전면 배급되었으며,


1942년 7월 26일을 기해 감미료와 초콜릿도 배급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감미료나 초콜릿의 구매는 4주마다 200g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식품 배급제는 시골에서는 제대로 지켜질 수가 없었다.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산품을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진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1939년 10월부터는 '승리를 위한 삽질(Dig For Victory) 운동'이 전개되어 도시 주민들도 자기 집 정원이나 별장 등에서 채소를 재배하거나 닭이나 토끼, 염소 등을 키워야 했다.




원문 출처 : 


http://www.woodlands-junior.kent.sch.uk/Homework/war/rationing.htm#2 (현재 없어진 사이트인데, 영국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만들었던 겁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이 세 작품들에서 배급제가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는 장치 역할을 합니다. 


위의 두 작품은 전후를, 크리스티 여사의 마지막 발표작인 아래의 작품은 전쟁 당시가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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