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흑사병(페스트)이 고려에 끼친 영향은?

벽란도 같은 무역항이 있던 고려에도 경제적인 영향이 있었나요?

by 장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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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이 엄청났다지요. 조선에서 상업을 하는 것도, 화폐가 사용되는 것도 힘들었던 이유라지요.



일단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절에, 고려 또한 몽골제국(원나라에 중앙아시아의 4개 칸국들 포함하고, 여기에 모스크바 대공국 등 고려와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도 포함)의 일부였습니다. 즉, 몽골제국의 경제권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 그 유명한 교초(원나라 지폐)가 고려에서도 당시에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인삼이나 고려청자를 원나라에 팔고, 그 대신 "은화 500냥" "은화 1,000냥"이라 적힌 지폐를 받았던 거지요.



1280px-Yuan_dynasty_banknote_with_its_printing_plate_1287.jpg 교초(오른쪽)와 인쇄용 원판 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C%B4%88




헌데 유럽의 흑사병(페스트) 원인이 유럽 중 제노바 공화국과 거래하던 흑해의 도시 카파가 몽골군의 침공을 당했을 때, 몽골군이 투석기로 쏘아 넣은 흑사병 걸린 사람들의 시체 때문에 그랬던 것에서 보듯이, 흑사병은 몽골 제국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몽골 제국이 오늘날 중국의 윈난성을 침공하면서 윈난성의 풍토병인 흑사병이 역으로 몽골 제국군에 퍼졌고, 그래서 몽골 제국의 사회와 경제가 무너진 거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교초는 은과의 교환이 불가능한, 말하자면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베네수엘라의 지폐 같은 쓰레기가 되어버렸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려의 거부들이 폭망했다지요. 이로 인해 고려에서도 대혼란이 나면서, 고려가 곧 망하고 일어난 조선에서는 상업이나 무역을 별로 안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돈 대신 쌀과 포목 등이 화폐처럼 사용되었고요.



일본 또한 원래 원나라 남부에서 쌀을 수입해 먹었는데, 원나라 남부 또한 흑사병으로 저 지경이 되니까 쌀을 못 구하게 되니 결국 한다는 짓이 고려를 터는 거였고, 그래서 고려는 왜구에 시달리게 된 겁니다. 가뜩이나 몽골의 간섭과 무리한 일본 원정 참가로 군사력도 거덜났던 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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