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인용문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 회스의 고백록>에 수록된 내용으로, 1942년 봄에 회스가 첫 번째 유대인 학살을 벌일 때에 관한 증언입니다. 회스도 학살 공장 운영 노하우를 막 축적하던 시기라 영화 등에서 많이 소개된 그런 가스실이 아니라 '제1호 창고'라는 건물을 가스실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저 네 컷 만화의 주인공인 야누시 코르자크 선생은 의사 양반이자 아동교육가, 그리고 고아원 원장이었다고 합니다. 유대계 폴란드인이지만 아직 폴란드가 해방되기 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러시아군 야전병원 부원장직으로 군복무를 했다네요.
코르자크 선생은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게토로 몰아넣었을 당시 서류 위조 등으로 도망칠 수 있었지만,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걸 택했다고 합니다. 위에 링크한 위키피디아 내용을 보면 대략 회스가 회고했던 저 여인과 비슷한 경우였구나 싶더군요.
덧붙이자면 회스는 저 여인이 "유대인은 아닌 것 같았다"고 했지만, 히틀러에 항거한 여대생 조피 숄의 동생 잉게 숄 여사가 쓴 <백장미의 수기>를 보면 "조피보다 더 아리아인처럼 보이던 금발 소녀가 유대인으로 파악됐다"는 얘기도 있던 걸 보면, 역시나 족보 때문에 유대인 혈통으로 낙인이 찍힌 게 아닌가 합니다. 뭐, 나치의 공군사령관 괴링은 자기가 총애하는 부하가 유대인이라는 썰이 있자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정한다!"는 말도 했다죠.
이는 고 알랭 들롱 옹의 영화 <고독한 추적>에서도 묘사된 거지요. 주인공(알랭 들롱)이 동명이인 때문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소문이 퍼져서 1942년의 파리를 지배하던 게슈타포(나치의 비밀경찰)에게 쫓기게 되자 자신에게 유대인 혈통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려고 하지만 그 전에 체포되어 결국 수용소로 간다는 영화요.
헌데 이와 좀 비슷한 경우가 저 <회스의 고백록>에도 나옵니다. 나치를 열렬히 추종해 거액을 바친 사업가라든가 나치의 여성 조직에서 열렬히 활동하던 여대생 등에게 (나치가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잡아다 수용소에 처넣던) 집시의 혈통이 있다는 게 드러나면서 이들이 체포되어 회스 앞에 끌려왔다는 얘기요. 뭐, 이런 경우는 동정할 필요가 없겠죠. 타인에게 "친일파의 자손!" 같은 낙인을 찍던 사람이 정작 지 할배 할매도 친일파였다는 이야기가 있는 식으로요.
예전에 이순재 옹 주연 시트콤에서도 나왔죠. 마음에 안 드는 사위더러 "친일파 자손"이라며 갈궜는데, 실은 사위의 조부님이 독립운동가였고, 정작 이순재 옹의 할배가 그분을 고문했던 일제 부역자였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