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게
사춘기와의 연재 작업은 그 준비 과정에 의미가 크다. 이번엔 사춘기가 메일로 보내 준 이야기를 스케치하기 전에 시대적 배경이 비슷한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함께 보았다. 나는 여전히 사춘기가 어떤 그림을 그려줄지를 기다리는 입장이지만, 서로 대화하고 쓸 말을 정리하는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어린이는 인간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한 명의 사람이다.!
악명 높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로 가는 날, 코르착은 아이들에게 가장 깨끗한 옷을 입히고, 고아 200명과 선생님들과 함께 기차역까지 행진했다. 아이들은 4명씩 짝을 지어 코르착이 쓴 동화 주인공인 '마치 우시 왕'의 깃발을 들고 걸었다.
"얘들아, 우리 소풍을 가자! 가장 깨끗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줄지어서 기차를 타자!"
사춘기가 메일로 보내 준 감상문은 슬펐다. 비극적이고 더없이 잔인한 결말이지만, 죽음 앞에 놓인 아이들을 한순간도 두려움에 빠뜨리지 않으며 그 곁을 지킨 어른의 모습에서 양육자의 자세를 배운다.
사춘기 아들과 좌충우돌한 일중에 가장 후회된 일은,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 했던 점이다. 아이가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난 바로 해결하려 조바심을 냈었다. 문제가 있더라도 아이 스스로 느끼고 해결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런 여유가 없었다.
특히, 사춘기 아들과의 이런저런 일 중에 가장 나를 당황케 했던 일은 바로, 아이가 사랑받은 기억이 안 난다고 우기던 일이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리 철이 없지만 이렇게 속을 뒤집을 일인가,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 맥이 빠졌다. 뭘 더 어떻게 줘야 사랑이라 느낀다는 건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나도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해서 말이 곱게 나오질 않았다. 안 그래도 사랑을 언제 줬냐는 마당에 말조차도 곱게 나가질 않으니, 아이와 나 사이엔 매일 언제 터질지 모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나는 아들을 신뢰하지 못했고 안 그래도 불안이 많은 아이는 자기를 바라보는 양육자의 불안한 모습 때문에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내가 곁을 지키는 양육자의 자세에 대해 진작 알았더라면 불 필요한 상처를 덜 주고받았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다. 아이가 이제와 사랑을 언제 줬냐고 모르쇠로 일관한다지만, 한없이 사랑한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다.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는 사춘기 아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로 한 것이다. 뭐든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그게 사랑이든 버릇이 됐든.
사춘기 내내 가르쳐야 할 건 많았지만, 대화는 잔소리가 되거나 자주 어긋났다. 이제 곧 사회적 성인이 되지만 늦은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양육자라면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사랑도 다시 시작하고, 가르칠 것도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나는 매일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가지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고 있다. 바쁜 일과 중 잊어버릴까 봐 알람을 해놓고 있다. 은근히 기다리는 것 같은 아들을 보니, 참고 기다리고 다시 시작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이제 짧지만 언제나 감사하다는 답을 보내줬다. 저녁에 돌아오면 내 곁에 와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린 관계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어쩌면 사춘기들이 양육자에게 바란 것도 그 정도 아니었을까? 언제든 곁을 지키는 어른, 확신을 주는 존재의 목소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