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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Dec 15. 2024

깨어나니 당나라 (1)

타임슬립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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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뒤 변소 청소를 하러 장안으로 가보니 역시나 대인은 엊그제에 온 재산을 싸들고 떠났다고 했다.

작은 저택이 딸린 농장이기도 한 이 방에서는 옷감 한 조각, 동전 한 닢, 좁쌀 한 톨, 병아리 한 마리도 찾을 수 없었더랬다.


‘에잉~, 하긴 겁이 많은 병사는 짐만 되니 냅두고 가는 게 낫다고 하셨지.’


고선지 장군의 말씀을 떠올리면서 주영치는 ‘대인’ 저택의 변소들은 물론 마구간과 외양간, 돼지우리까지 치웠다.

‘대인’이 돌아올 날에 대비해서이기도 했지만, 분토가 아까웠다는 게 더 큰 이유였다.

이곳 하나만 치웠는데도 하루치 일이 끝나버렸다.


“정말 대단하긴 하구먼. 뭐, 이 댁 분들은 하인들까지 언제나 고기며 생선 같은 기름진 것만 잡쉈으니, 아마 이번에도 좋은 염초를 정제해낼 수 있겠지.”


그건 그렇고, 하루 종일 똥을 푸고 이를 수레에 싣기를 수십 차례 반복했더니 온몸이 쑤셨다.

 역시 늙음이란 악착같이 거부해도 물러나는 법이 없다. 젊은이라도 하나 고용하고 싶었다.


“에라이―, 나 하나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무슨!”


더군다나 이곳에   하루종일  붙박여있었는데도 돼지를 흘레붙여보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대인’을 비롯하여 여러 거상들이 사라지고, 서시에서도 외국인들이 시나브로 좌판을 거두면서 장안 전반에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황제 폐하와 귀비께서 여전히 대궐을 지키신다지만, 백성들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시작한 것이다.

태종 시절의 정관치지(貞觀治之) 이후 처음 들이닥친 난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큰돈으로 바꿀 수 있는 귀중품 같은 건 없고, 재산이라는 게 대개 크고 무거운 세간들과 곡식이 담긴 가마니며, 장이 담긴 항아리며, 소금에 절이고 연기로 그을린 돼지다리나 돼지갈비짝이나 말린 생선의 꿰미 같은 것과, 부엌 쓰레기로 키우는 돼지 따위다.

 수레는커녕 나귀나 노새를 구할 곳조차 없으니 도망가기가 참 난망했다.


“그래, 어쩔 수가 없다니까! 이렇듯 돈 없고 평범한 백성들을 지켜주실 분은 역시나 우리 고선지 장군뿐이시라니까! 어여―, 어여 만들자!”


내일도 또 다시 새로 만든 꽃불약에 불을 붙일 것이다. 이번에는 구덩이가 연기가 아니라 손사막 선생의 자택을 무너뜨리고 불태웠다는 화염폭풍으로 차오르기를 기원했다.







수퇘지 두 마리가 먹이통 앞에서 꿀꿀거렸다.

쉰 살이 넘은 사내는 바가지의 삶은 콩꼬투리와 술지게미를 먹이통에 쏟아 부었다.


안록산이  그 돼지 놈 때매 네놈들도 계집 맛을 못 보는구나. 하긴 양 귀비를 직접 봤다면 그 어떤 사내놈이 안 미치겠냐만….”


동쪽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에 장안성(長安城) 내외가 뒤집어졌다.

모두들 피란을 가야 하는가를 고심하는지라 암퇘지에게 새끼를 갖게 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런 주인의 생각과 말을 알아듣는지 수퇘지 두 마리 모두 그에 맞춰 툴툴 거렸다.


“끄으응~.”


등 뒤의 쪽구들에서 들리는 소리에 주영치는 고개를 돌렸다.

 꽃불약을 실험하는 구덩이에 알몸으로 누워있던 젊은이가 깨어나고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뭔가를 찾는 듯 계속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주영치는 준비해둔 물그릇을 갖다 주며 물었다.


“정신이 드요?”


대답 대신 사내는 자신이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또한 주변을 휘 둘러보고 천장을 한참 물끄러미 보더니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영치에게 되물었다.


“여…, 여긴…, 창, 아니, 민갑니까?”


“그렇소. 민가요. 그럼 대궐인 줄 아시오?”


주영치가 건넨 물그릇을 두 손으로 받아 게걸스레 비운 젊은이의 질문이 이어졌다.


“헌데…, 중화인민공화국이…, 맞지요?”


“인민공화국? 그건 또 뭐요?”


젊은이의 눈이 커지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를 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놀랄 일인가?

오히려 꽃불약의 연기 속에서 벌거벗고 나타난 것도 이상하고, 절을 뛰쳐나온 지 얼마 안 된 파계승마냥 까까머리인 것도 이상한데, 깨어나자마자 오랑캐처럼 기묘한 말투로 이상한 말만 하는 이 젊은이가 더 이상하지 않은가.

 

'혹시 탈주한 오랑캐 포로인가? 아니, 그러고 보니 바로 이 당나라 주변에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게 있던가? 혹시 안록산의 반란군이 세운 나란가?'


주영치도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일단 젊은이가 먼저 묻게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사내의 상태가 영 아닌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젊은이는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가 있을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 여기가…, 그러니까 여기 이곳이 안, 아니 장안입니까?”


“그렇소. 장안성 남문 밖이오.”


대답을 해주면서 주영치는 젊은이를 주의 깊게 살폈다.


'머리가죽에서 싹이 트다 만 듯한 짧은 머리카락을 보니, 원래 승려였다가 파계한 걸까? 아마 도적을 만나 가진 건 물론 입은 것까지 털리고 꽃불약을 실험하는 구덩이에 밤중에 던져졌겠지. 아는 게 이토록 없는 건 아마도 도적놈들에게 머리를 세차게 두들겨 맞아 기억을 잃어설 게다. 아니, 혹시 이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조직의 일원인 건가'


이렇게  생각을  골똘히  하던  주영치가  뒤늦게  깨달은  게  있었다.


‘헌데 꽃불약을 심어놓을 때, 구덩이엔 쥐새끼 한 마리 없었는데?하긴, 도화선이 웅덩이 물에 젖어 새 걸 가져오느라 집에 다녀오던 사이에 던져 넣어졌나?'


주영치가 곰곰  생각하고  있듯이  젊은이도  뭔가를  곰곰  생각하더니  대뜸  물었다.


“헌데, 지금이 몇 년돕니까?”


“천보 14년이오만?”


“천보 14년? 그렇다면 755년이군요!”


젊은이가 깜짝 놀랐다는 듯이 외쳤지만, 주영치는 더 기가 막혔다.


“뭐, 뭐요, 755년?”


주영치는  젊은이에게  되물으면서  기가  막혔다.


'연호도 붙이지 않고 냉큼 755년이라니? 혹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조직에선 이렇게 연도를 세는 건가? 도대체 뭘 기준으로 755년이 흘렀다는 건가? 설마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게 생긴 지 755년이라는 얘긴 아니겠지?'


주영치는 답답했지만, 자기보다 더 답답해하는 젊은이를 보면서 묻기를 주저했다.

가뜩이나 안록산의 반란군이 수도로 진격해온다는 판이니, 그것이 이 젊은이에게도 영향을 준 모양이다.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이란 안록산이 때매 엉망이 된 밀교(密敎) 교단일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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