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선생님. 절도사인 안록산과 그 부하인 사사명이 올해 말에 범양(范陽:베이징)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겁니다. 맞죠?”
'사사명?'
어쩐지 들어본 이름인 것도 같아 주영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반란군 우두머리들에 대해 이렇게까지 잘 안다니! 이 젊은이가 저 역적들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아는지도 모르겠군. 대관절 이 젊은이는 어떤 사람인가? 혹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조직의 높으신 분이거나 그 자제인 건가?'
하긴 좀 마른 편이긴 하지만 근육 덩어리가 튀어나온 연갈색 가슴팍은 단단해 보였고, 가슴팍보다 좀 더 검어서 진흙으로 막 빚은 것 같은 얼굴은 각이 졌으되 조각도로 깎아서 만든 듯했다. 콧날도 오뚝하고, 입술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으며, 눈매는 매서워 보였다.
저 눈만 쳐다봐도 어지간한 병사들은 창을 들고서도 벌벌 떨 것 같다.
'혹시 변을 당한 귀공자가 아닐까?'
주영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젊은이의 질문을 떠올리고서 힘겹게 대답했다.
“그렇…소.”
젊은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주영치는 젊은이에게 먹을 걸 권해보려다가 자신의 집안을 휘 둘러보고 한숨을 한 번 토하고서 관뒀다.
“젊은이도 보다시피 이 집안 꼴이 이러하오. 마누라는 병으로 죽고, 자식들도 어릴 때 다 죽어, 홀아비 혼자 이렇게 산다오. 고선지 장군께서 주신 저 돼지들이 내….”
“방금 누구라 하셨습니까?!”
젊은이가 놀란 표정을 짓고서 버럭 묻기에 주영치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곧 질문을 알아듣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고선지 장군이라 했소. 저 옛 고구려 땅의 씨돼지들을 구해다 주신 분이 말이오.”
분명 많이 아플 텐데도 젊은이는 애써 몸을 일으키더니 쪽구들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그러고서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선생께서는 고선지 장군과 아는 사이십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소. 회회인(回回人: 이슬람교도)들과의 전투에서 내가 장군을 구해드렸지! 회회인 장수가 고선지 장군을 베려고 달려올 때, 아 이 주영치가 침착하고 용맹하게 장창을 그놈이 탄 말의 옆구리에 박았단 말이오! 그래서 고선지 장군께서 저놈들을 상으로 주셨소.”
젊은이가 지켜보는 걸 의식하면서 주영치는 창자루를 휘두르듯이 비어있는 두 손을 격하게 움직였다. 그 덕에 당시 회회인 장수의 장검에 맞은 오른쪽 어깻죽지가 찢어지듯 아팠다.
왼손으로 아픈 어깻죽지를 주무르며 달래는 주영치에게 젊은이가 더욱 공손하게 물었다.
“혹시 그 전투가 4년 전에 서쪽에서 일어난 것인지요?”
“그렇다오, 젊은이. 안서사진(安西四鎭) 절도사셨던 고선지 장군께서 석국(石國: 타슈켄트)을 원정하실 때였다오. 혹시 이에 대해서도 잘 아시는 거요?”
“예…, 대강… 귀동냥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군이 패했다는 얘기도요.”
젊은이가 어쩐지 아주 많은 걸 아는 듯했지만 정작본인이이렇게 말하니 주영치도 더 묻지 않았다.
“헌데, 선생님은 무슨 일을 하십니까?”
젊은이의 시선은 꽃불약을 만드는 데 쓰는 도구들로 어수선한 탁자를 향해있었다.
“꽃불약 만드는 일을 하는 홀아비라오.”
“꽃불약? 화약 말씀입니까?!”
'으응? 이 젊은이도 꽃불약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었나?'
하긴 손사막 선생이 처음 꽃불약이라 할 수 있는 걸 만든 이래,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이상적인 꽃불약’을 만들려고 다양한 재료와 배합 비율을 연구한다고 들었다.
주영치도 고선지 장군의 휘하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서 이렇게 도전하고 있고 말이다.
“혹시 젊은이도 꽃불약, 그러니까 '화약'이란 걸 만드는 일을 하시오?”
모를 일이다.
이 젊은이가 이 주영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오다가 이렇게 변을 당한 건지도.
혹시라도 이 주영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오던 길이었는지도.
하지만 뭔가를 망설이는 젊은이의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듯했다.
“전… 신라에서…, 아, 신라에서 당나라로 공부를 하러 왔었습니다.”
“설마… 꽃불약을 말이오?”
“아, 예…, 화약과 관련된 건 아니고…, 빈공과(賓貢科: 외국인 대상 과거)에 응시하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