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관림은 최치원 선생이 진골들에 의해 조정에서 박살나는 걸 막으려고 정강왕(진성여왕의 작은오빠)이 피신시키듯이 함양에 부임시켰을 때 조성하신 걸로 설정했습니다.
진골들은 최치원 선생이 함양의 수해를 잡지 못해 속이 끓는 걸 보고 싶었겠지만,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에서 보고 배운 치수 기술을 활용해 이를 해결했다는 거죠.
최치원 선생이 쓰신 『성광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 朗慧和尙 白月光塔碑)』의 문구에는, "은혜가 바다같이 넘쳤다"라는 진성여왕을 찬양한 내용이 있다는 점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최치원 선생이 당신 주군이기도 했던 진성여왕에게 굳이 안 좋은 소리를 할 수 없어서 적었을 거라고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라 멸망의 책임을 진골 귀족들, 특히 효공왕의 예비 장인이던 박예겸 등이 진성여왕에게 돌렸다는 걸 돌려 깐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는 측천무후(무측천, 무 황후)에 관해서 "황족들과 귀족들에게는 잔혹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성군이었다"는 평가도 있어서입니다.
피렌체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만들었으나 제왕학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후계자로 인해 대충 망했던 메디치 가문을 다시 일으킨 로렌초 2세 데 메디치의 따님이자 앙리 2세의 왕비이며 프랑수아 2세, 샤를 9세, 앙리 3세의 모후이고, 앙리 4세의 장모이며, 이탈리아의 선진적인 식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하여 프랑스가 미식의 전당이 되게 만든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도 "프랑스판 무측천"이어서인지 평이 더럽게 안 좋죠.
물론 위그노 학살 사건 때문에 그렇다면 당연한 거지만, 무측천이나 진성여왕과 마찬가지로 "음란한 아줌마"라고까지 하는 건 남성 중심으로 역사가 쓰여지면서 생겨난 피해 사례라고 봐야겠지요. 덕분에 "여성향 작품"이라면서 여주인공이 여러 남자들을 달고 다니는 역하렘물이 나오는 게 재밌어 보이네요.
각설하고, 카트린 드 메디시스(카테리나 데 메디치)가 <군주론>을 애독했기에 프랑스의 무측천이 될 수 있었던 것임을 10여 년 전에 알았더라면, 제가 범우사에서 일할 때 <군주론>을 개정하면서 써먹었을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