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들이 처음으로 중국의 문을 노크했던 명나라 때, 그들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잔꾀와 뇌물을 썼다.
19세기 중반, 서구인들은 총과 대포로 중국의 문을 때려 부쉈다.
나폴레옹이 "유혈사태를 보고 싶지 않다면 절대로 깨우지 말라"고 경고했던 중국이라는 용을 서구인들이 무참히 도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8세기에 완성된 뉴커먼과 와트의 증기기관이 있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Edward_Duncan
아편전쟁 당시인 1841년에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무장증기선 네메시스호가 청나라 수군의 함선들을 궤멸시키고 있다.
토미노 월드에도 증기기관 같은 혁신적인 동력원이 존재한다. 바로 '미노프스키식 핵융합로'다.
핵융합로는 원자로의 궁극적인 발전형이다.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대신 융합시켜 에너지를 만들 경우, 원자력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방사능을 거의 남기지 않으면서 더욱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태양 내부의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압력과 열을 통제할 방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앞으로 한두 세대 내에도 실용화되기는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에너지 위기와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계속 연구 중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정도 미래일 토미노 월드에서는 증기기관이나 원자로처럼 일반화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한국이 개발한 핵융합로가 30초간 섭씨 1억 도에 도달했다는 기사. 2022년 9월 7일 자
하지만 토미노 월드의 미노프스키식 핵융합로의 특징은 '극단적인 소형화'다.
일단 핵융합로가 실용화될 경우, 이는 '토카막(Tokamak)'이라는 거대한 도넛 모양의 자기차폐식 상자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무려 1,000만 도에 달할 초고온 물질이 될 중수소와 헬륨-3를 거대한 자석으로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융합로를 실제 교통수단에 사용한다면 거대한 우주선 정도에나 적합할 것이다. 마치 증기기관이나 원자로가 커다란 기관차나 배에서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토레노프 미노프스키라는 과학자가 우주에서의 핵실험 도중 발견한 '미노프스키 입자'(<건담>에만 등장하는 가상의 입자이지만, 핵폭발 때 발생하는 전자기 펄스에서 제작진이 힌트를 얻은 것 같다)로 초고온 물질을 통제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마치 토머스 뉴커먼이 증기기관을 발명한 지 60년 뒤에 더 작고 스마트하며 출력은 세 배인 증기기관을 완성한 제임스 와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인 기렌 자비가 이 미노프스키식 핵융합로에 주목했다.
데긴 공왕의 장남이자 지온 공국의 총수인 기렌은 연방군의 우주 함대를 격파할 신무기를 이 신형 핵융합로를 사용해 개발하게 했고, 곧 지오닉 사가 모빌슈트인 MS-05 자쿠-1과 MS-06 자쿠-2를 내놓았다(이들은 <건담> 시리즈의 대표적 악역이다).
- 자신의 위대한 재능을 과시하고자 했을 뿐인 토레노프 미노프스키, 그의 열정과 허영심을 악용한 독재자 기렌 자비.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 펠레스의 관계 같다. 파우스트 박사가 주님의 구원을 받은 것과는 달리, 미노프스키는 토사구팽을 당했다.
'인간형 전투기'인 자쿠는 기존의 우주 전투기보다 훨씬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으며, 우주 공간에서 부스터에 더해 팔과 다리를 휘저어 움직일 수 있어서 상하좌우전후 어디서든 공격할 수 있었다.
마치 강력한 무장과 이동장비를 갖춘 스쿠버다이버가 물속에서 잠수함을 공격하는 식으로 작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붉은색 모빌슈트는 지온군 에이스 샤아 아즈나블의 전용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 에이스 '붉은 남작'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의 전용기에서 따온 설정이라는데, 적들이 보기만 해도 벌벌 떤다는 점에서 '홍의장군' 곽재우 장군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느 왜장: 곽재우다! 홍의장군이다! 도망쳐라!
지온군의 일반적인 자쿠 도색
마침내 우주세기 0079년 1월 3일 오전 7시 20분, 기렌은 지구 연방 및 이를 계속 지지하기로 결정한 사이드들에 선전포고 직후 전면전에 돌입했다. 연방으로부터 스페이스노이드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이었다.
신무기인 자쿠의 선전에 더해, 미노프스키 입자의 전자파 교란 성질로 연방군의 레이더와 통신기기를 무력화하는 데 성공한 지온 공국군은, 개전 12일 만에 연방군의 우주 세력을 궤멸시키고, 3개월 뒤에는 지구의 반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지온 공국군은 자국 및 친지온적 중립을 선포한 사이드 6를 제외한 사이드들의 주민들 중 대부분을 핵무기와 화학무기로 학살했으며, 연방군의 사령부가 있는 아마존 북부 지역을 초토화한다는 명분으로 초거대 운석 같은 콜로니를 1기 투하하면서 지구에 대지진과 환경 재앙을 일으켰다.
즉 "스페이스노이드들의 해방을 위한 전쟁"을 선포하고선 막상 스페이스노이드들 중 절반을 학살했으며, 우주로의 이주를 특권을 활용해 거부하던 권력자들과 그 추종자들인 '어스노이드'들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지구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다.
https://www.gundam-nyumon.com/story/108/
연방군 사령부를 직격하겠다며 내부의 시민들을 독가스로 살해한 뒤 바깥에 엔진을 달아 투하한 콜로니는 연방군의 반격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콜로니의 파편은 지구 곳곳에 떨어져 재앙을 야기했으며, 가장 큰 파편은 호주의 시드니에 떨어져 시드니를 거대한 만(湾)으로 만들었다.
일제가 주장한 '대동아공영권'을 상징하는 이미지.
잘 보면 인도인이나 필리핀인, 베트남인 아이들과 함께 일본 아이 기준으로 왼쪽에 태국 아이와 중화민국 아이가 있다. 중화민국 아이 뒤쪽의 여자아이의 옷에는 난징국민당정부, 즉 친일파였던 왕징웨이의 괴뢰정권의 깃발이 달려있다.
일본군이 동아시아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로부터 해방시켜주겠다며 일으킨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 당시 벌인 짓거리들과 기렌 자비가 스페이스노이드들에게 벌인 짓거리들은 비슷하다.
실제로 토미노 요시유키는 일제의 전쟁 수행에 기술자로 참여했던 걸 자랑스러워했던 부친과 불편한 관계였으며, 이는 <건담>의 주인공들인 아무로와 카미유가 모빌슈트 개발자인 아버지들과 사이가 안 좋다는 설정으로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방군 또한 모빌슈트인 건담과 그 양산형인 GM을 개발하자 전황은 지온 공국 쪽에 불리해졌다.
그러자 기렌은 사이드 3의 콜로니들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인 '마할'을 초거대 레이저포로 개조했다.
기렌은 자기 집을 떠나기를 거부한 몇몇 마할 주민들을 매국노(비국민)로 몰아 독가스로 “청소”하라고 명령하기까지했다.
장남의 이런 행패를 지켜보며 만시지탄한 데긴은 기렌을 비난하면서 연방과의 강화를 위해 단독으로 지온 공국을 떠났다.
이를 눈치 챈 기렌은 마할 콜로니를 개조해 만든 초거대 레이저포로 연방군 주력부대에 합류했던 아버지를 불태워 죽였다.
그러나 기렌 또한 오빠 못지않은 야망을 지닌 누이동생 키시리아에게 살해당했고, 키시리아도 자신의 수하였던 '샤아 아즈나블', 즉 지온 줌 다이쿤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숨긴 지온군 에이스 카스발 렘 다이쿤에게 살해당함으로써 자비 가문과 지온 공국은 붕괴되고 전쟁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