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2011년에 썼던 원문을 가급적 그대로 놔두기로 한 겁니다. 이걸 썼던 시절의 시대상도 돌아볼 수 있겠죠. ※
21세기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흘렀다. 1979년에 <건담>이 시작된 날로부터 따진다면 고작 30여 년이 흘렀을 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투자처에만 돈을 쓰는 각국의 '높으신 분들'이 핵융합과 우주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인구 과밀이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지구상 만악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을 보면, 아마 우리의 증손자들이 활약할 시대에는 토미노 월드 같은 현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래의 그 현실이 진짜 토미노 월드처럼 사기꾼들과 썩은 사과들에 의한 디스토피아라면?
그런 자들에 휘둘린 우리의 자손들이 우주에서 비참하게 죽거나, 필수적인 설비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주 도시에서 궁핍하게 산다면?
그렇다.
토미노 요시유키가 20세기에서 봤던 21세기는 결국 20세기의 연장이었다.
20세기의 잔재들이 제거되지 않은 21세기, 바로 우리가 '새 천년'이 시작된 뒤 10여 년간 경험한 그것이다.
10여 년 전 언론과 상아탑은 21세기의 희망과 비전을 시뮬레이션 해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현재 삶은 인터넷과 네트워크 게임,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 매트릭스다(늘 우리를 감시하는 스미스 요원도 있다).
9.11 테러를 비롯한 큰 사건이 발발하면 어느새 여론에 휘둘렸고, 정신을 차리면 어느 특정 세력은 이미 그들의 목적을 달성한 뒤였다.
현실에 속고 돈에 우는 사람들에게 “돈이 없어 우는 자들아, 기뻐하여라. 상종가를 친 주식과 고가 아파트가 너희들의 것이다”라고 외치던 자를 지도자로 모셨더니 그나마 남은 것까지 벗겨 먹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믿었던 어떤 지도자는 취임 초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더니, 말년에는 자신을 비방한다는 이유로 기자실을 폐쇄했고, 마침내 그의 주변인들이 뇌물을 받아먹었다는 비난을 받자 담배 연기와 함께 저 세상으로 떠밀려갔다.
여기서 우리는 수하들을 잘 뽑는 것도 지도자의 책임이자, 그 일이 그 자신 또한 살리거나 죽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자기 아들이라서 믿었던 수하인 기렌의 손에 불타 죽은 데긴이라든가, 그의 아름다운 이상이 왜곡된 것은 물론 그의 자녀들까지 신분을 숨긴 채 와신상담하며 살아야 했던 지온 다이쿤의 경우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건담>을 계속 보면서 탄식이 솟구친다.
화려한 비주얼로 승부하면 관객들이 인정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스토리텔링에 대한 반성 없이 '투자ㆍ관심 부족'을 한국 역대 애니메이션들의 패배 원인으로 들이대는 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건담>이 후쿠이 하루토시라는 또 다른 걸출한 작가를 배출했다는 점과, 일본 방위성이 <건담>에서 영감을 얻어 차세대 첨단 장비를 기획한 사실, 그리고 토미노 월드가 제시하는 우주 시대의 비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