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될 기회를 잔뜩 잡았는데 죽을 수가 있나! 어이-! 이 파푸아 뱃속뿐만 아니라 이 빌어먹을 마할 밖에도 내가 수집해온 노다지가 지천이야!, 잘 갈무리해서 계산해줘. 날 속이려고 했다가는 도즐 장군께 박살이 날 것이야!”
“흥, 자쿠한테 박살난 연방군 순양함 따위! 차라리 루나 2 요새에 짱박힌 연방 놈들에게 팔지 그랬나! 연방군 두목이신 레빌 제독 가카께옵서 값을 아주아주 잘 쳐주실 텐데 말이야, 하하하!”
선체가 녹색인 파푸아의 동체 옆구리에는 갈색 수납용 튜브가 달렸다.
이 튜브에 우주항 내부로 이어지는 문이 달린 파이프가 연결됐다.
파푸아 내부와 파이프 내부의 압력이 같아지자 파이프 양끝의 문이 열렸고, 수송함과 우주항이 비로소 하나가 됐다.
파푸아 내부에서 크고 작은 고철들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쏟아져 들어왔고, 작은 로봇 팔들이 크기에 따라 분류했다.
한스는 무중력 덕에 둥둥 뜬 채 화물 운반용 컨베이어벨트를 잡고 우주항으로 들어왔다.
관제사는 한스가 곧장 관제소로 올라오는 걸 씨익 웃으면서 지켜봤다.
“샤샤, 자네 위스키소다 튜브 숨겨논 거 기억하는데?”
한스가 관제사 샤샤의 헬멧에 툭툭 박치기하며 말했다.
웃고 있는 샤샤의 얼굴이 헬멧의 강화유리를 통해 아주 잘 보였다.
“이래서 자네가 죽기를 바랐지.”
샤샤는 비꼬듯이 말하면서도 캐비닛에서 음료수병만한 튜브를 두 개 꺼냈다.
튜브의 끝에는 빨대 역할을 하는 가느다란 튜브가 달렸다.
“하지만 연방 놈들도 이런 고물배 따위는 소가 닭 보듯 대하더군.”
한스가 비웃듯이 말했다.
“콜로니 사이를 운항하던 민간 화객선 따위도 지구 방면군에 보급품을 지원해주는 수송함이라든가, 거 뭐시냐? 아, 신형 모빌슈츠라든가 모빌아머를 시험하는 지원함으로 사용된다는 판이야. 역시 우주공격군 사령관 도즐 자비 장군의 빽으로 받은 군함은 이렇게 팔자 늘어진 짓도 하는군.”
헬멧을 벗어 우주복의 목 뒤에 매단 샤샤가 위스키소다 튜브를 빨면서 말했다.
한스의 파란 눈은 샤샤의 갈색머리 사이에 더 많이 배치된 새치에 박혀있었고, 샤샤의 눈은 한스의 파푸아에 꽂혀있었다.
한스는 자신의 금발머리가 얼마나 많이 하얘졌는가를 떠올리며 샤샤의 머리카락을 쳐다봤다.
이런 한스에게 샤샤가 물었다.
“어떻게 이 배가 지금까지도 공출이 안됐지?”
한스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대답했다.
“이 배는 여전히 화학연료를 쓰니까. 그러니까 파푸아급 중에서도 극초기형이라고. 미노프스키 선생이 만든 핵융합로를 단 신형함들을 따라갈 지구력이 없지. 물론 도즐 자비 장군이 내게 넘길 생각으로 만들어낸 핑계였지만.... 그런 좋은 분을 모실 수 있었으니 난 운이 좋았어.”
“한스, 자네가 그렇게 말해도 그 양반 또한 자비 가문 사람이야. 어차피 이 빌어먹을 공업용 콜로니로 쓸려 들어온 뜨내기들은 높은 놈들을 믿지 않잖아. 자네 같은 특이한 경우를 빼곤...."
샤샤는 자신을 노려보는 한스를 무시하고서 말을 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말이야, 내 외할머니는 지구의 코리아 출신이셨거든. 그분 말씀이 ‘자비’라는 말은 그 나라에서는 참 좋은 뜻을 가진 말이었다더군. 누군가에게 인심 좋게 베풀어준다는…, 뭐 그런 뜻이라고 하셨어.”
“그럼 도즐 자비 장군은 그 단어가 어울리시는 분이군.”
자신이 한 농담에 스스로 깔깔거리며 웃는 한스를 보며 샤샤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이드 1, 2, 4의 주민들은 옛 사이드 3인 지온 공국민들과 같은 스페이스노이드인데도 지온의 편에 서는 대신 연방에 남는 걸 택했다.
지온군 수뇌부는 이 콜로니들을 핵무기로 파괴하거나 독가스탄을 쑤셔 넣어 그 주민 수십억을 전멸시켰다.
이 작전을 실행했던 바로 그 악마 같은 자. 그것으로도 모자라 사이드 2의 콜로니 '아일랜드 이피시'에 엔진을 달아 지구를 공격하는 초거대 미사일로 사용했던 자, 그런 짓으로 10억이 넘는 지구 거주민들을 살해한 자. 그가 바로 한스가 찬양하는 도즐 자비다.
항간에는 도즐도 단지 큰형인 기렌 자비 총수의 지시에 따라 그런 짓을 했다고도 하고, 아내인 제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샤샤는 그런 얘기들 모두에 고개를 흔들어왔다.
물론 자비 가문을 욕하다가 걸리면 큰 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샤샤는 지난 10년간 늘 그래왔듯이 이 건에 대해서도 입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한스가 ‘지온 공국’의 변두리에 위치한 공업용 콜로니 마할을 출발했던 3월 중순과 비교해보니,
콜로니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용 태양전지위성 수효가 대여섯 배 이상 늘어난 것 같았다.
대충 봤는데도 말이다.
훈련용이던 구형 모빌슈츠까지 동원하여 배치 작업을 하는 걸 보니 그 수는 더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일랜드 3형 콜로니 ( https://worldofjaymz.fandom.com/wiki/Island_Three_Colony )
태양광 집광-반사판을 도시 모듈인 원통 밖에 달아 일종의 인공태양으로 사용하는 다른 콜로니들과는 달리,
사이드 3은 지온 공국의 이상에 공감하여 타 콜로니들이나 지구로부터 몰려오던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인공태양의 빛을 받아들이는 강화유리로 된 ‘강(江)’이 있어야 할 곳에도 ‘대지’를 채워 넣었다. 그 꽉 막힌 원통의 양 끝에는 도넛 모양의 거대한 농업지구가 있다.
그런데 얼핏 보니 항구 쪽에 있어야 할 농업지구가 안 보였다.
“요즘 연방에 건담인가 하는 하얀 모빌슈츠가 있고, 그놈이 활개치고 다니면서 우리 군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다닌다던데……. 혹시 '연방의 하얀 악마'라는 그놈이 여기도 와서 다 부수고 간 거야, 샤샤?”
한스의 질문에 샤샤는 말 없이 고개만 저어 대답한 뒤 잠시 창밖의 파푸아만 바라봤다, 한스의 눈을 피하듯이….
샤샤 옆에 한스가 다가와 섰다.
한스는 얼마나 많은 고철이 유입되는지를 계속 숫자를 바꿔 보여주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파푸아에 실린 고철은 모두 하역했으니, 이제 슬슬 이 고물 파푸아로 예인해온 연방군의 사라미스급 순양함들과 마젤란급 전함들을 항구 안으로 갈무리해야 했다.
물론 전투에서 패한 그 배들에 실려 있을 연방군 병사들의 시체에 기겁하거나 우주복 안에 구토할 녀석만 없다면 모든 작업이 대여섯 시간 안에 끝날 것이다.
한스는 지온 공국군의 주력인 무사이 급 경순양함도 거의 멀쩡한 것만 두 척이나 발견했지만 일부러 방치했다. 공국 병사들은 편히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만한 고철로 자쿠를 만든다면 100대 이상은 만들겠군. 전쟁을 핑계로 나라에서 헐값으로 구매해도 한 재산은 되겠지. 그 돈과 이 파푸아를 판 돈을 합쳐 사이드6이나 월면도시에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계획 대로. 그러면 아내랑 아이들이랑 다시 합칠 수 있어.’
한스는 친지온적 중립을 선언한 사이드6에 피난하여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내 마리, 그녀와 함께 사는 두 딸내미들을 떠올렸다.
마리는 월면도시이자 지온 우주함대의 거점이며, 한스가 물자를 보급 받거나 수집품들 중에서 건져낸 귀중품을 파는 그라나다로 보내는 편지에 온갖 얘기를 다 적어 넣었다. 마리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전쟁에 비상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는 한스를 늘 씁쓸하게 만들었다.
“지독할 정도로 많이 가져왔군, 한스. 이걸 다 옮기려면 장난이 아니겠는데.”
“응? 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한스를 향해 샤샤가 고개를 돌렸다.
“지금 이 마할에서는 민간인들과 공업 시설들이 퇴거하고 있어. 지난 여름부터였지. 기렌 자비 총수의 명령이 내렸다더군. 물론 아버지인 데긴 자비 공왕님의 승인이 있었고. 그래서 아마 이 고철들의 처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제련소까지 모두 다른 콜로니들로 이동될 거야, 한스. 물론 그 전에 군대로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나라'는 명령이 떨어질지도 모르지. 전황이 급박해서 이곳 마할도 요새화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니 말이야. 저 솔로몬이나 아바오아쿠처럼....”
광석 채굴을 위해 화성과 목성 사이의 아스테로이드 벨트에서 가져왔다는 소행성인 솔로몬과 아바아쿠를 요새로 개장했다는 이야기는 한스도 그라나다에서 들었다.
채굴할 광석이 더 없어서 방치하느니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시큰둥해했던 한스였다.
헌데 사람들이 멀쩡히 거주하는 이 마할을 개조하는 것에 더해 가진 걸 다 내버리고 가라고?
“마―, 말도 안 돼! 저게 다 해서 얼마친데, 저걸 다 놔두라고? 이런, 이런,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곳에 가는 건데. 왜 괜히 마할엔 와가지고! 아냐, 아냐, 지금 공국은 자원이 부족하니까, 저걸 버리진 않을 거야! 그러면, 그러면 난 일단 시세의 절반이라도 받을 수 있어. 그, 그렇겠지, 샤샤?”
샤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침울한 표정을 하고서 창 밖의 파푸아만 바라봤다.
한스는 문득 옛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럽 북부에 살던 '한스'라는 노동자가 10년간 열심히 일해 황금 한 덩어리를 대가로 받았다. 휘파람을 불며 고향으로 가던 한스는 별 시덥잖은 이유로 남들에게만 좋은 거래를 계속한 끝에 빈털터리가 되었더라는 이야기였다.
한스의 황금은 그의 다리를 편하게 해줄 말과 바뀌었고, 그 말은 한스의 목을 축여줄 젖을 줄 암소로 바뀌었으며, 그 암소는 그의 배를 채워 줄 돼지로 그리고 거위로 바뀌었다가, 마지막에는 칼을 가는 데 쓰는 숫돌과 바뀌었다. 그 숫돌마저 물을 마시기 위해 우물가에 몸을 기울였다가 잃어버렸다.
결국 한스는 빈손으로 귀향했다.
'크큭! 왜 하필이면 지금 그 얘기가 내 머릿속에....?'
지금 한스는 ‘우주의 쓰레기장’이 된 전쟁터들을 수개월간 돌아다니며 모아온 자신의 재산을 송두리째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샤샤의 말이 사실임을 한스가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마할 시내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샤샤와 함께 술과 밥을 먹으며 회포를 풀 곳은커녕 며칠 쉴 곳도 못 구했다.
그래서 한스는 우주항에 있는 샤샤의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주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에 우주항의 출입국 사무소로 가는 전기자동차들의 행렬이 들어왔다.
“저들도 다 지온 사람들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어쩔 수 없지. 공왕의 명령이고, 군대의 지시니까.”
“그래도 이럴 순 없는 거야. 저들도 여기서, 지온의 콜로니에서 길게는 우주세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짧게는 지난 몇 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삶을 일구어왔는데.”
“어차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잃었잖아, 이 사람아.”
문득 자신이 끌고 온 ‘고철’에 타고 있던 자들도 그랬다는 생각에 한스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샤샤보다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짐이 전혀 없으니 홀가분하다며, 그러니 자신은 '운수 좋은 한스'라고 중얼거리면서 고향으로 가던 이야기 속 한스처럼 말이다.
‘역시 나란 놈은 행복해지기 힘든 건가? 마리, 제니와 리타……. 아내와 딸년들 모두 행복하게 해주려고 도즐 자비 장군 휘하에서 8년간 수송선을 몰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저 고물딱지 파푸아를 받았고. 초기형 자쿠인 MS-05에도 밀려 전투장비로 쓸 수 없다는 MS-04도 불하받았다. 난 그놈의 두 팔과 두 다리로 우주를 휘저으며 고철을 주워 모았다. 이 전쟁 덕에 돈이 넘쳐난다는 월면도시들이나 사이드6에 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조국'을 믿었다. 그래서 이 지온 공국이 물자 부족에 시달린다기에 공업 콜로니이자 나와 마리의 또 하나의 고향이기도 한 이 마할에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뭐가 어째?’
“마할을 떠나는 사람들을 자네의 파푸아로 실어 나르면 어떨까? 몇 푼이라도 벌지 않겠어? 아니면 파푸아를 끌고 군대에 다시 소속되든가 말이야.”
“역시 난 운수 좋은 한스인건가.”
한스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주항에 돌아왔을 때 한스와 샤샤는 고물 파푸아가 군대에 다시 소속된 걸 확인했다.
한스의 손에는 어느 배불뚝이 대위가 쥐어준 ‘차용증’ 한 장이 쥐어졌다.
“저 안의 MS-04는 그냥 가져가라. 어차피 저런 고물 모빌슈츠에게 쥐어줄 무기 따윈 없으니까.”
선심 쓰듯이 말하는 대위에게 한스는 신음하듯이 말하려 했다.
“도즐 자비 장군이…….”
하지만 샤샤가 옆에서 찔러대는 바람에 더 말을 할 수 없었다.
샤샤를 돌아본 한스는 그가 힘없이 고개를 젓는 걸 보았다.
그날 밤 두 중년 사내들은 남아 있던 위스키소다 튜브들을 모조리 비웠다.
우주군에 ‘해병대’라는 병종이 존재하는 것이 지온 공국군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는 원래 사이드 3 소속이 아니던 자들을 병사로 받아들여 ‘외인부대’를 창설하면서 누군가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프로파간다를 중시하는 지온 공국군은 그 군복만큼이나 번드르르한 별명을 사용하기를 좋아했다. 그 덕에 많은 바보들이 지온 공국군에 입대했다.
심지어 사이드3 출신 불량배인데도 지구의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마린보이’인양 모병관 앞에서 행세하여 해병대에 입대한 녀석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해병대가 아닌 해병대'의 MS-06 자쿠들과 MS-09 릭돔들이 퇴거를 거부한 매국노들을 ‘청소하려고’ 독가스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이때 한스는 콜로니의 안쪽 벽에 설치된 창고에 기어들어간 MS-04의 조종석에서 만취한 채 자고 있었다.
“응, 뭐야? 왜 바깥 공기 데이터가 이따우로 나오지?”
한스는 아픈 머리를 두들기고 알코올 냄새를 뿜어내는 입을 열어 하품을 하면서 모니터를 두 번 세 번 다시 들여다봤다.
결국 한스는 마할 내부에 이상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한스는 바깥 공기가 GG가스로 오염됐다고 판단했다.
이 전쟁 초반의 일주일 동안 사이드 1, 2, 4를 전멸시켰던 바로 그 망할 독가스! 그것이 지금 마할 내에 가득 찬 것이다!
한스는 하필 우주복을 입지 않고 조종석에서 자고 있었기에 조종석의 문을 열 수 없었다.
한스가 제 머리를 두들기며 조심스럽게 조종하는 MS-04가 창고에서 기어 나와 샤샤가 있을 우주항의 숙소 쪽으로 움직였다.
서너 발자국을 떼자마자 MS-04의 머리에 달린 카메라, 아니 ‘눈’이 피바다 속에서 엎드려 있는 시체 하나를 발견했다.
녹색 우주복을 입고 손에 쇠막대기 하나를 쥔, 그래서 당장 일어나 싸우려고 할 것 같은 시체의 모습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대하고 또 확대했다.
역시나 샤샤의 시체였다.
샤샤의 가슴에 난 총구멍 덕에 독가스로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연방 놈들이 쳐들어왔나? 마할이 요새가 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서? 그렇다! 바로 그 건담인가 하는 하얀 악마 놈을 만날 수 있겠구나! 오냐, 샤샤의 복수는 내가 해주겠다, 이 연방의 하얀 악마 놈아!’
MS-04가 무기로 쓸 만한 게 필요했다.
다행히 고철을 정련해 만든 길고 두꺼운 ‘몽둥이’를 여럿 발견했다.
양 손에 몽둥이를 든 MS-04는 항구 내에서 계속 진격했다.
독가스로 가득 찬 마할의 대기 속을 여섯 시간이나 돌아다녔지만, 한스는 그 하얀 악마 놈 '건담'을 발견할 수 없었다.
피난 명령을 거부한 이들의 시체들만 눈에 띄였다.
샤샤처럼 총구멍이 난 시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독가스로 사망한 것 같았다.
‘빌어먹을 건담 놈! 오냐, 그럼 나도 숨어 있다가 네놈을 잡으리라!’
양 손에 몽둥이를 든 MS-04는 우주항 깊숙한 곳에 있는 창고에 숨었다.
다행히 비상식량인 에너지바와 에너지워터 보름치가 조종석 안에 있었다.
샤샤가 우주항의 창고에 있던 물품들 중에서 빼돌린 것이다.
군용 우주선에 어찌어찌 매달려서라도 다른 콜로니에 가는 동안 샤샤와 한스가 함께 먹을 식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스 혼자만의 것이다.
에너지바와 에너지워터를 아껴 먹으며 일주일을 보내는 동안, MS-04의 감지기는 상당히 거대한 진동과 열을 일으키는 활동을 모니터링했다.
아무래도 연방 놈들이 어떤 거대한 음모를 이 ‘죽음의 콜로니’ 마할에서 꾸미는 모양이었다.
한스는 불쑥 나가서 '건담'이란 놈과 싸워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샤샤의, 마할 주민들의 복수를 할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자쿠 수십 대와 전함 여러 척을 박살냈다는, 공국군 최고의 에이스 ‘붉은 혜성’ 샤아 아즈너블 대령마저 여러 번 대패시켰다는 건담과 몽둥이만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스는 일주일 더 기다렸다.
외부 활동이 잠잠해졌음을 감지기가 알려주던 날 한스의 MS-04는 은신처였던 창고에서 나왔다.
싸우는 대신 도망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 일단 물러나서 강해졌다가 되돌아와서 싸운다는 말이 있지. 난 그렇게 하려는 거야, 샤샤.'
그런데 창고에서 나온 한스는 봤다.
보름 전까지 그의 눈앞에 펼쳐져있던 시가지가 없어진 걸,
그리고 시가지가 있던 원통 내부를 구식 레이저포의 내부 부품 같은 것들이 차지한 걸….
‘이건 뭐지? 연방 놈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MS-04의 등에 달린 로켓 엔진을 가동시켜 이 괴이한 ‘공간’을 한스는 그냥 날아다녔다.
'연방 놈들은 이런 식으로 우주요새를 짓나?'
계속 날아갔다.
한스가 들어온 우주항의 반대쪽, 그러니까 소행성을 매달고서 자원을 채굴하는 '광산'이 '있던 곳'에서 우주가 보였다. 마치 거대한 렌즈를 통해서 보는 것 같았다.
MS-04가 양 손에서 몽둥이를 떨어뜨리더니 그 투명한 벽, 아니 ‘렌즈’를 찬찬히 만졌다.
‘정말…… 렌즈네.’
바로 그 순간 한스는 MS-04의 통신기가 지지직거리면서 그 배불뚝이 대위의 말이 튀어나오는 걸 봤다.
“겔 돌바 선상의 모든 아군 함정들에 알린다! 즉각 다른 공역으로 후퇴하라! 솔라레이가 30초 후 발사된다! 어이, 거기 태양전지 위 무사이! 출력 떨어지니까 비켜라!”
‘뭐! 뭐라고! 솔라 뭐?! 아니, 그럼 여긴 연방군 요새가 아니란 말인가?’
한스가 이런 생각을 한 순간 조종석 전체가 뜨거워졌다.
한스는 자신의 몸이 불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시간은 0.5초도 되지 않았다.
솔라레이 발사 순간 ( https://jp.quora.com/%E6%A9%9F%E5%8B%95%E6%88%A6%E5%A3%AB%E3%82%AC%E3%83%B3%E3%83%80%E3
지온 공국군의 최종병기인 초거대 우주광선포 솔라레이가 발사되던 순간,
포격 지휘함인 중순양함 치베의 함교에서 어느 통신병이 이런 외침을 들었다고 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
그 무전의 출처가 솔라레이의 안쪽이었다는 괴담은 1년 전쟁이 끝나자마자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공국군의 솔라레이 일사(一射)에 의해 연방군은 전 전력의 약 30퍼센트에 해당하는, 마젤란급 전함 14척(레빌 제독의 기함 페베 포함)과 사라미스급 순양함 60척, 모빌슈츠 GM(건담의 양산형) 4천 기 이상을 상실했다. 아울러 연방군 총사령관 레빌 제독과 단독으로 평화회담을 하기 위해 전함 그레이트 데긴으로 연방군 함대에 접근하던 데긴 자비 공왕도 함께 산화했다. 호사가들은 데긴 자비 공왕의 죽음이 그의 장남이자 솔라레이의 발사 스위치를 누른 기렌 자비 총수가 고의로 저지른 패륜 행위에 의한 것이라 보고 있다. ___ 출처는 아래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