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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진 Aug 19. 2024

- 호바 에이지 그리고 츠게 유키히로

유키 마사미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


일반적인 범죄는 욱해서, 술 때문에, 혹은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순간적으로 번뜩 저질러진다(라고 텔레비전에 얼굴을 가리고 출연하는 범죄자들은 말한다).

고토  경부보가  지휘하는  2과의 임무 또한 주로 그런 범죄를 레이버로 저지르는 자들을 제압ㆍ체포하여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는 데 있다.


그런데 종종 주가 조작, 수천 명을 상대로 한 사기, 컴퓨터 바이러스 유포나 디도스 공격 같은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는 '큰손'들도 우리는 늘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극장 개봉작들에 등장하는 두 사람, 호바 에이지와 츠게 유키히로가 그렇다.

 아이러니 한 것은 그들의 범죄 배경에 '위대한 제국의 수도 바빌론'을 도쿄 만 일대에 건설하려는 일본 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극장 개봉작 제1호에 등장하자마자 대사 한 마디 없이 자살하면서 퇴장한 호바 에이지……

시노하라 중공업에서 레이버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MIT에서 수학하던 시절에는 동기들에게서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여호와(주님)'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하지만 귀국 후 바빌론 프로젝트에 따라 도시가 재개발되면서, 수많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애환이 담긴 거리와 주거지가 레이버들에 의해 철거되는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전대미문의 사고를 저지르기로 결심한다.


 즉 레이버의 활용 효율을 몇 배 끌어올리는 - 그리하여 대박을 터뜨릴 -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고층 빌딩 사이에 바람이 불면서 만들어진 초음파에 반응해 레이버를 폭주시키는 바이러스를 그 안에 심은 것이다(심지어 시동이 꺼진, 조종사가 타지 않은 레이버도 자동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런 자신을 호바는 마치 바벨탑 건설 인부들이 소통할 수 없게 만들어 공사를 중단시키신 님이 된 것처럼 착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토의 눈에 호바의 행위는 단지 독선을 따라 수많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호바가 죽기 전에 수도권 내 모든 레이버들의 바이러스가 한날한시에 활동하게끔 명령하도록 프로그램을 세팅해둔, 바빌론 프로젝트의 지휘본부이자 레이버 기지인 '방주'를 높으신 분들을 현란한 말발로 구슬려 받아낸 '묵인'에 따라 파괴한다.


하지만 마츠이 형사와 함께 호바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보고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고토 또한 호바가 느꼈을 아픔에 시나브로 공감하게 된다.






극장 개봉작 제2호에 등장하는 츠게 유키히로……


고토가 마음까지 내준 동료 나구모 시노부 경부보의 옛 연인이기도 한 그는, 한때 육상자위대의 촉망받는 장교였다.


츠게는-이 작품이 제작된 시기를 생각하면 캄보디아가 아닌가 싶은-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시험용 무장 레이버 부대를 이끌고 PKO로서 파병된다.


하지만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레이버 부대가 게릴라들의 구식 대전차 로켓탄에 차례차례 궤멸되는 것을 보고, 조종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부하들의 비명을 들으면서 전쟁의 참모습을 깨닫는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귀국한 츠게……

하지만 쿠데타를 모색하던 자위대 내의 불순 세력을 이용하여 사실상 전쟁놀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로써  일본의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상이 180도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츠게와 그의 일당은 고토와 나구모에게 체포되지만, 나구모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경시청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는 츠게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토는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을 거절하고 옛 연인을 다시 택한 여인인 나구모 시노부에 대해서, 그리고 “대개의 일본인들은 관심을 갖지 않거나 심지어 유희처럼 여기는” 타국의 전쟁 덕에 쌓아올릴 수 있었던 오늘날 일본의 경제적·사회적 번영과 그 덕에 유지되는 "일본인들의 평화로운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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