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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8. 2024
- 경찰 공무원 아저씨 고토 키이치와 바빌론 프로젝트
유키 마사미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1988)
“(은근히 교묘하게 악착같이 부려먹는) 빌어먹을 중년” 혹은 “면도날 고토”……
부하인 시노하라 아스마와 형사인 마츠이가 각각 붙여준 이 별명들은, 너무 뛰어나서 출셋길이 막혀버린 40대 초반의 남성 고토 키이치 경부보에게 상당히 잘 어울린다.
도호쿠 대지진으로 폭로된 일본 공직사회의 꽉 짜인, 기존에 작성된 매뉴얼에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 닥칠 경우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 받는 이재민들에게 시청 창고에 그득그득 쌓인 구호품 상자 하나 내줄 수 없는 시스템에서 유독 (보통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면에서) 튀는 존재인 고토에게는,
도쿄 만의 간척지에 세워진 도쿄 경시청 경비부 특차(일명 '레이버 부대') 2과 2소대가 아마 마지막 근무지가 될 것이다.
그 또한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득 허구한 날 당파싸움을 벌이며 왕에게 바른 말을 할 줄 모르는 동료 벼슬아치들에 질려 낙향해버린 선비라든가, 일부러 한직을 택해 내려온 지방 관아 사또의 모습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 중 대부분의, 심지어 동료인 나구모 시노부 경부보의 눈에도 그는 단지 퇴직하는 날만 기다리며 대강대강 일하면서 월급이나 챙겨가는 공무원 아저씨일 뿐이다(그리고 이즈미 노아에게는 마음씨 좋은 삼촌 같은 상관이고).
하지만 고토는 출동이 없을 때마다 (그러니까 한가할 때마다) 간척지의 가장자리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저 너머를 바라본다.
고토의 시선이 멈추는 그곳, 거기서는 도쿄 만을 매립해 새로운 토지를 만들겠다는 일본 정부의 야심찬 계획에 따라 대규모 토목 공사가 수천 대의 레이버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바빌론 프로젝트' ……그 계획의 이름이다.
너비 100제곱킬로미터, 수심 20~40미터, 도쿄 도(都)와 가나가와 현 및 지바 현 등 일본을 대표하는 공업지대를 벨트처럼 두른 바다가 도쿄 만이다.
임진왜란 이후 자신의 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학습을 반복한 일본을 자극하여 메이지 유신을 실시하고 조선과 중국을 다시 한 번 침략하게 만든 페리 제독과,
군사력에 의한 팽창 대신 경제력으로 그리고 요리와 예술(문학과 만화 등) 같은 소프트 파워로 세계를 장악하면서도 일견 미국이 키우는 호랑이의 입장을 고수하게 만든 맥아더 원수가 각각 전함을 기항시킨 곳이기도 하다.
21세기가 막 시작된 시점이 배경인 <패트레이버>의 세계에서 도쿄 만은 일본 유력자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곳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전 세계 산업의 왕도(王都)인 도쿄의 영광을 계속 떨치기 위한 도쿄 확장 사업의 일환으로 도쿄 만에 거대한 간척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초거대 콘크리트 둑들을 만든 뒤 그 안에 갇힌 물을 뽑아내 서민들의 거주지와 산업 시설이 들어설 값싼 토지를 확보한다는 게 바빌론 프로젝트의 요지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제4장에 등장하는, 대궐 옥상에 펼쳐진 '공중 정원'을 거닐다가 수도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내 손으로 공들여 세운 대바빌론, 이것이 바로 내 영광을 떨치는 나의 왕도로다"라고 외쳤던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가 수천 년 뒤 도쿄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느부갓네살은 그 오만방자한 발언 때문에 주님에게서 벌을 받았다.
https://childrenofthelamp.fandom.com/wiki/King_Nebuchadnezzar_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