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수학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
지금 나는 뉴저지로 이동 중인 버스 안이다. 수학여행으로 온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풀어낼 생각은 있었지만 미국에서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가면 기말고사 준비 때문에 더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잠시 시간을 빌려 끄적이고 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 나는 미국 자체 혹은 미국 유학에 대해 조금 부정적이었다. 아는 사람들과 모두 멀리 떨어져서 영어로 회화하고, 낯선 타지에서 지낸다는 것이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인종차별을 당한 이야기도 많이 듣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일주일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만난 미국의 사람들은 매우 쾌활했다. 작은 일에도 기쁘게 감사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우리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고 재미있어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회화할 때 긴장해서 매우 버벅거렸다. SNS에서 한국인 특이라는, 아임파인 땡큐 앤유를 볼 때마다 웃었었는데 나도 그 말만 무한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너무 웃겨서 친구랑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럼에도 내 대답이 매우 훌륭했다고 웃으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해준 분께 여기로나마 감사인사를 전한다..
하버드, MIT, 예일 등 대학교를 다니며 선배와의 대화를 가졌는데, 모든 특강을 마치고 나서 나는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하나는 설렘, 다른 하나는 안도감이었다. 현재 한국의 입시에서 단연 최고의 분야는 아무래도 의학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의대를 가고 싶어 하고, 그 이유에 대해 나도 공감한다. 안정되고 높은 수익. 내가 좋아하는 이과 분야는 순수과학은 특히 더 그렇고 그리 높은 수익을 받는 직업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NASA에서 엔지니어들이 흰 복장을 입고 먼지가 거의 차단된 곳에서 새로운 위성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든 감정은 설렘이다. NASA라고 지구과학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물리, 화학, 수학, 생명 자연 공학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엔지니어들이 모여 하나를 만들어낸다. 대학교 특강에서도 한 선배가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현재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몰라도, 아직 진로를 못 정했어도 괜찮다고. 아직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는 이유는 아직 여러분이 접해보지 않은 것들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 말을 듣고 든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내 진로는 생기부에 잘 적혀있지만, 늘 들었던 생각은 이 진로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맞나? 였다. 그렇지만 여기 와서 특강을 들으면서, 세상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선배님 말씀처럼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못 찾았더라도 괜찮겠구나 하는 그 거대한 안도감이 마음속에 정착했다. 정말 어느 분야를 선택하든, 그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어느 필드에서든 수물 화 생지 모든 분야가 쓰인다는 것을 NASA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직 현실을 몰랐을 때 상상했던 내 미래가 있었다. 비록 안경을 꼈으니 우주로 날아갈 순 없지만, 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미래. NASA가 그렇게 멋있게 느껴졌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그런 미래는 너무 허황된 미래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그리던 미래를 실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정확히 알게 됐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미래가 더 명확해지고 뚜렷해진 것. 딱 그만큼의 달라짐이다. 꼭 NASA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이런 메이저 대학에서 순수 자연과학을 전공한다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생겼다.
미국 와서 계속 느끼는 것은, 세상은 참 넓다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너무 좁게만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잘못된 길로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길은 언제나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비록 조금 돌아서 가는 길이더라도 어쩌면 그 길이 더 꽃이 가득한 길일수도 있겠구나. 이런 것들을 느꼈다. 정말 많은 것들, 많은 감정들을 느꼈지만 이 모든 것들을 글로 쓸 재주는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모든 감정들 뒤에 설렘과 안도감이 남았다는 것.
여기서부터는 TMI인데, 미국에는 평야가 매우 넓다. 오늘 너무 예쁜 핑크빛 하늘을 보았다. 그 예쁜 하늘 아래로 드넓은 강과 평야가 펼쳐지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사진으로 잘 안 담겼지만, 눈으로 많이 담았으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