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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Nov 13. 2023

무질서한 우주(2)

내 머릿속은 무질서한 우주다.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잡생각으로 인해 스트레스받던 날들이 있었다. 남들은 그저 쓸데없는 잡생각이라 치부하고 그냥 넘길 법한 생각들을, 나는 왜 그냥 넘기지 못할까. 왜 매 순간마다 생기는 생각들을 모두 품어버리고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이런 잡생각들은 남들처럼 그냥 흘려버리면 참으로 단순한 머릿속이 될 텐데, 왜 나는 어느 것 하나 흘려보내지 못할까. 결국 이 모든 잡생각들이 모여 무질서한 우주를 만들고 내가 결코 정리할 수 없는 머릿속 세계가 될걸 알면서도 왜 그냥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 잡생각이 나더라도 그저 쉽게 떨쳐버리고 마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쓸데없는 잡생각이더라도 여러 번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나서야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어.

- 하지만 매번 그런 식으로 잡생각을 흘려보낼 순 없잖아요.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떠올라서 힘들어요. 이런 생각을 여러 번 들어줘야 하는 상대도 짜증 낼걸요.

- 힘들면 뭐 어떡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말해, 몇 번이고 들어줄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든든하고 고마운 말이다. 전에는 잡생각으로 인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던 내가 한심했다. 별 중요하지도 않은 쓸데없는 생각들 정리하느라 소중한 하루하루를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잡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꾸 생각하고야 마는 내가 한심했다. 그때 이후로도 잡생각들은 무성하고 끈질기게 자라났다. 가벼운 잡생각들은 속으로 몇 번 다독인 다음 흘려보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피어나는 생각들도 있었다. 어떤 날에는 잡생각들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아무리 정리하려 해도 무질서하게 흩어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이렇게 무질서한 생각들을 지니고 있어도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 그냥 생각나면 나는 대로 사는 거 같아요, 뭐 어쩌겠어요.

- 그래, 덜 생각나는 날도 있을 거고 더 생각나는 날도 있을 거고.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새 희미해질 수도 있는 거고 갑자기 선명해질 수도 있는 거고 그런 거지 뭐.


 그래, 무질서함은 우주의 섭리인데 꼭 내 머릿속이 질서정연할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내 머릿속이 우주처럼 무질서할지라도, 이 우주를 떠다니는 대다수의 잡생각들은 성간 물질이라는 사실만 알아두자. 중요하지 않은, 먼지 같은 잡생각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사라지지 않고 떠돌며 내 머릿속을 무질서하게 만드는 주범들. 따뜻한 말들로 내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었던 누군가의 말처럼, 이 존재들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유독 신경 쓰이는 날도 있을 거고, 이상하리만큼 신경 쓰이지 않는 날도 있을 거고, 먼지같이 희미해져서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 날도 올 거고. 내 머릿속은 이들을 모두 안고 살아가는 무질서한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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