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슈뢰딩거의 고양이, 내가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이자 물리학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선 한 번씩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 나도 그랬었다. 상자 뚜껑을 열기 전까진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상자 안 고양이. 이렇게 추상적으로만 알던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접하게 된 건 물리2를 과외해 주시던 한 선생님으로부터이다. 천문학과 대학생이시던 선생님은 물리2 수업에서 멈추지 않고 양자역학, 우주와 블랙홀과 같은 신비한 이야기들을 종종 해주시곤 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이 이야기를 한번 써 내려가 보려 한다.
파동함수의 붕괴
우선, 내가 말할 모든 주체는 대부분 미시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거시세계를 이루는 인간이나 고양이는 미시세계를 이루는 원자나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거시세계를 이루는 미시적 입자들을 가지고 이야기해도 되리라 생각한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는 ‘관측’되기 이전에 여러 상태로 중첩되어 존재하고, 하나의 ‘상태’는 파동함수로 표현된다. 즉, 모든 입자는 ’관측‘되기 이전에 여러 파동함수가 중첩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 선생님,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게 가능하긴 한 거예요..?
- 그러게,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에서 생각해 보자. 슈뢰딩거가 상자 뚜껑을 열기 전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다고 설명하지? 여기서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거야.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일단 그렇구나 하며 들으면 편해.
- ‘살아있으면서 죽어있는 상태라는 게 대체 뭘까..’
이렇게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상태에서 입자가 ’관측‘된 순간, 파동함수들이 붕괴되면서 단 하나의 파동함수로 수렴하게 된다. 그렇게 입자는 하나의 파동함수로 이루어진 상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자, 여기서 하나의 궁금증이 더 생긴다.
- 선생님, 입자가 관측된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사람이 무언가를 관찰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측이랑은 달라. 입자가 관측되는 기준이 인간에게 있진 않겠지? 이 ‘관측’이라는 것에 대해 더 생각해보자.
양자역학에서 ’관측‘의 의미
거시세계에서의 관측과 미시세계에서의 관측은 다르다. 미시세계에서 관측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정말 어려운 전문 지식이 필요한데, 나도 정확히 이해하기엔 아직 지식이 부족한 것 같다. 선생님은 그런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쉽게 설명해 주셨다. 간단히 말하자면, 입자가 ‘관측’된다는 것은 그 입자가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하게 되는 그 순간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측’되기 이전의 입자를 절대로 볼 수 없다. 인간이 보게 된 그 입자는 이미 수많은 미시적 입자들로 인해 관측된 입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살아있으면서 죽은 상태의 고양이가 실현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우리가 상자 뚜껑을 열었을 때는 이미 고양이가 관측된 이후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있으면서 죽은 상태의 고양이가 과연 어떤 뜻인지 절대 알 수 없겠네요.
- 그렇지. 자, 한번 정리해볼까?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이 세계의 모든 입자는 관측되기 이전에 파동함수로 표현된 여러 상태들이 중첩되어 있다. 이 입자가 관측된 순간, 파동함수들이 붕괴되면서 하나의 파동함수, 즉 하나의 상태로 수렴하게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서 이 이론을 적용해 보면, 상자 안의 고양이는 50%의 확률로 죽는 독극물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관측되기 이전에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가 중첩되어 존재하게 된다. 고양이가 관측된 순간, 둘 중 하나의 상태로 수렴하게 되겠지. 하지만 우리는 관측되기 이전의 고양이에 대해 알 수 없다.
- 여기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볼까? 파동함수가 붕괴될 때 수렴하는 하나의 상태는 어떻게 정해지게 될까?
- 음.. 확률이 제일 높은 상태로 수렴하지 않을까요?
- 그래, 결국 양자역학은 확률과 떨어뜨릴 수 없지. 이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은 가장 확률이 높은, 즉 가장 유리하면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간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겠지? 여기서 더 확장해 보면 다세계 해석과 다중우주론이 등장해. 초끈이론도 아주 깊은 연관이 있지. ‘엘리건트 유니버스’라는 책을 읽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 우와.. 다세계 해석이 너무 궁금한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나는 물리2 문제집 내용을 배우는 것보다 이렇게 신비하고 재미있으면서 복잡한 이론들을 듣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천문학과를 다니시면서 우주의 신비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던 과외 선생님을 떠올리면 아직도 감사하다. 꼭 들려주지 않아도 되었던 이야기들을 통해 물리학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디작은 원자 세계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우주까지 확장되는 이야기를 들을 땐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나에게 단연 최고는 역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