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여행

남쪽으로 떠난 기차여행

by 상록수
서천 어느 펜션에 머물다가 석양에 취해서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거나 함께 여행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즐겁게 보내는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한 삶의 굴레에서 잠시 벋어나 숨을 돌리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거나, 내 마음속에 조각난 에너지를 모으고 배터리를 새롭게 충전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여행이 어떤 의미일까? 이런저런 의미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전반적으로는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이다. 새롭고 신기한 것에 호기심을 느끼고 실제로 가보고 싶어서 떠나는 여행이고, 기왕이면 나 혼자보다는 아내와 함께 즐기며 추억을 만드는 여행이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아내와 함께 여행하는 꿈이 있었다. 일상적인 생활을 떠나 언제든지 아내와 함께 즐겁게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부터는, 틈만 나면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다니며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 소소하지만 꿈을 이룬 셈이다.


돌이켜보면 나 혼자만의 여행은 거의 없다. 아내와 함께하지 않은 여행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국내는 제주에서 철원까지 200여 곳이 넘게 여행을 다녔다. 그래도 TV 방송을 보면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다. “정아야! 저기 가봤나? 언제 한번 같이 가자!”




2013-10-05 18.18.06.jpg 진주 등축제를 촉석루에서 바라보며


여행에서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했던가. 사진 찍는 법을 공부하고 카메라도 몇 번 바꿨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일반 카메라는 가볍고 소형화되었다. 전에는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소형 디지털카메라·아이패드로 사진을 찍으며 소소하게 멋을 부리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휴대폰으로 찍는 게 더 간편해서 좋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멋지고 아름다운 곳에서는 습관적으로 휴대폰에 손이 먼저 간다. 사진 한 장에는 그 순간의 풍경·날씨·느낌·온도·분위기를 담을 수 있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그 순간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사진을 찍을 때, 아내에게 이런저런 위치와 포즈를 당연한 듯 요구했었다. 풍경 속에 묻힌 아내를 멋있게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귀찮다며 종종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아내의 눈치를 봐가면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 어느새 8,000여 장이나 컴퓨터에 저장되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컴퓨터를 켜고 사진들을 꺼내서 하나하나 보노라면, 사진은 아무런 말이나 그 어떤 향기도 없다. 사진에서 그날의 향기가 나고 바람소리도 마법처럼 들렸으면 좋으련만, 그저 눈으로 보고 그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밖에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동영상으로 찍으면 이런 아쉬움은 없어지겠지만, 사진은 정지된 찰나의 느낌을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는 매력이 있기에 주로 사진으로 찍는다.


나이가 들면 가장 소중한 재산은 추억이라고 한다. 추억이 가장 잘 깃들어 있는 것은, 어떤 장소나 물건들 그리고 일기장이나 사진일 게다. 이 중에서도 내 사진은 결혼해서 아이들이 함께 했던 순간들과 아내와 둘이서 여행을 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사진이야말로 나에게는 다양한 추억이고 가장 소중한 재산이 아닐까 싶다.


지난날의 사진들을 꺼내보니 아내와 내 얼굴에는 스쳐간 세월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결혼하고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열심히 직장·신앙·사회생활을 하며 찍은 사진들, 아내와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 속에 아내와 내 모습은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다. 지난날의 사진들을 보면서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음을 느낀다.



사실 지금이야 아내와 마음만 맞으면 승용차로 언제든지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직장생활과 아이들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가까운 대둔산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2차선 우회전 도로 산모퉁이에서 대형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피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대형버스가 자기 차선으로 급히 돌아갔기에 사고는 겨우 면했으나, 초보자인 나는 기운이 빠져서 도저히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떨리는 마음을 한참 동안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때의 충격으로 오랫동안 두려워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운전을 할 수 없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의 여행이 오히려 더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아내도 그렇다고 했다. 오랜만에 여행이기에 마음속에 더 진하게 남아서일까? 그때의 사진들을 꺼내 보노라면, KTX 열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던 옛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해수욕장에서 발만 적시는 아내

한 여름에 기차를 타고 아내와 부산 여행을 떠났다. 기차 안에서 둘만의 나지막한 소곤거림과 스르르 밀려오는 잠결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의 첫인상은 하늘에 나지막하게 떠 있는 뭉게구름이다. 저 멀리 남쪽바다를 지나오면서 바람결에 방금 만들어진 구름일 게다. 수도권에서는 이처럼 낮은 구름은 거의 볼 수가 없어서 이채로웠고 그래서 더욱 멋지게 느껴졌다.


해운대·광안리 해수욕장에는 울긋불긋한 파라솔이 백사장을 온통 뒤덮었고, 남녀노소 수영하는 사람들과 튜브를 허리에 차고 노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내는 물을 싫어해서 해수욕은 못하고, 둘이서 신발을 벗고 모래 위를 걸었다. 발등을 타고 지나가는 작은 물결과 꼬물대는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촉감이 잔잔한 미소와 즐거움을 주었다.


그렇게 모래 위를 조금 걷다 보니, 전에 괌(GUM)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호텔 앞 해변으로 나가 맨발로 걸었다. 산호 부스러기로 만들어진 해변이라 발바닥으로 느끼는 촉감이 돌 부스러기 모래보다 더 부드러웠다. 물기가 전혀 없이 마른 곳에서는 모래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포삭거렸고, 파도가 밀려와 물기가 촉촉한 곳에서는 뛰어다녀도 될 만큼 딱딱해서 마냥 신기했다. 같은 모래인 줄 알았지만 서로 다른 촉감을 주었던 해변의 추억이다.


태종대는 바람과 파도와 바위의 합작품이었다. 저 멀리 남쪽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은 일렁이는 파도와 함께 절벽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를 만들었다. 바람에 뒤섞여 날리는 하얀 물보라는 다음 파도를 향해서 마중 나가는듯했다. 아내와 함께 거센 바람을 뚫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밑에서 절벽을 올려다보니 시루떡 같이 켜켜이 쌓인 지층들이 보였다. 그 틈바구니에서도 이름 모를 풀잎들이 거센 바람을 맞으며 나풀나풀거렸다. 모질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생명의 강인함을 보는 듯했다.


자갈치시장에는 사람과 생선의 북적임이었다. 부산의 대표적 명소인 자갈치 시장에 들어서니, 입구부터 사람들끼리 부대낌의 연속이었다. 손님을 부르는 여자 사장님의 목소리와 생선을 고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겨우겨우 걸음을 떼며 앞으로 나갔다. 영화가 끝나면 극장에서 빠져나오는 현장보다도 더 혼잡스럽게 떠밀려 나왔다.


아내는 생선보다 야채를 좋아한다. 나는 야채보다 생선을 좋아한다. 그래도 자갈치시장까지 왔으니 회 한 접시는 먹고 가야지 싶었다. 아내와 함께 횟집에 들러 싱싱한 회를 시켜서, 각자 취향대로 간장과 초고추장을 찍어서 맛있게 먹었다. 이때까지는 참 좋았으나, 나중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미 예약한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는 괜찮은데 나만 속이 좋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회를 너무 차게 먹어서일까? 아이고, 배야~~. 달리는 기차 안에서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창자가 꼬인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기차 바닥에 드러누웠다가 의자에 웅크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식은땀이 나고 기운이 쭉쭉 흘러내렸다. 이후로는 회를 먹을 때, 반드시 뜨거운 국물이나 더운물로 속을 달래면서 먹는다.




유달산 정기를 받으면서

결혼기념일 5월을 맞아 아내와 목포행 기차에 올랐다. 남쪽으로 멀리 내려가는 여행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창밖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다. 아내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다. 기차 식당 칸으로 가서 라면과 어묵을 주문했다. 널찍한 유리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푸른 논밭과 산등성이를 바라보면서 라면을 먹는 재미에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찰칵! 사진 한 장에 담았다.


목포에 도착해 유달산으로 향했다. 목포개항 110주년 기념비에는 붓으로 새긴 “儒達山 精氣(유달산 정기)”가 멋스럽게 보인다. 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니 ‘목포의 눈물’ 노래가 구성지게 흘러나오고, 노래비에는 노래 가사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곳곳에는 기암과 바위들이 자리 잡았다. 올라갈수록 목포 시내가 점점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에 다다르니 저 멀리 바다에는 이름 모를 섬을 연결하는 다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기약은 없지만 다음에 또 오면 저 다리는 이미 완성되어 자동차가 다니고 있으리라.


내려올 때는 올라갔던 길과 다른 길을 택했다. 조금 내려오니 커다란 수직바위 표면에 양각으로 새긴 불교 조각 2점이 보였다. 오랜 세월 검푸른 이끼가 끼어 신비롭기에 얼른 사진을 찍었다. 사찰을 둘러보고 내려와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의 위장전술이 전해 내려오는 노적봉을 경건한 마음으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약간의 피로감이 밀려왔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온몸으로 목포 유달산 정기(儒達山 精氣)를 흠뻑 받았으리라.


해안가로 갔다. 갓바위를 보기 위해서다. 여행객들이 구경하기 좋도록 물 위에 데크길이 있었다. 갓바위를 처음 보는 순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해안가에 있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머리 위에 낡은 거적이나 갓을 쓴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바람과 파도의 힘에 움푹 파여서 생긴 자연의 예술작품이다. 신기한 모양을 이리저리 한 동안 둘러보았다. 풍화혈이라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목포에 있는 도자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현대식 유리건물이지만, 주변에는 예술적으로 꾸미고 전통 항아리들을 크기별로 가지런하게 배치해 놓았다. 어렸을 적에 흔히 보았던 항아리들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구에는 고급스러운 도자기들이 유리 상자에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부엌에는 뒤주·찬장·항아리가 보였고, 부뚜막에 가마솥과 시커멓게 그을린 아궁이에는 풍구를 배치해 놓았다. 1970년대쯤으로 보이는 현대적인 부엌에는 온통 양은으로 만든 주방용품들과 석유곤로·밥상·주전자·프라이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 다양한 전시물들은, 고풍스러운 기풍을 느낄 수 있는 예술품들과 토속적인 생활 항아리들이 함께 전시된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다양한 도자기와 생활용품들을, 예술과 생활·전통과 현대라는 균형감을 갖고 조화롭게 전시한 것이다. 도자기에는 문외한일지라도, 관람객들로 하여금 비교하기 쉽도록 전시했다는 느낌이다. 다양성을 균형감을 갖고 조화롭게 전시한 것은, 구경하는 관람객들의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심과 배려가 아니었을까.




혹자는 여행을 하면서 구경에만 도취되지 말고, 사람들의 삶과 인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한다. 방문한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동네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공감·배려하는 마음은 어떤지. 그 속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살아가는지 등등.


예를 들면, 방송인 최불암 선생님이 여행지 사람들과 격의 없이 포근한 대화를 나누고, 맛깔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곳 사람들의 친절한 인심과 분위기를 느끼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사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방문하는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격의 없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일반인은 그리 하고 싶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식점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궁금한 것 몇 마디 물어보는 게 전부다. 그것마저도 바쁜 사람 시간을 뺏는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에 가급적 짧은 대화로 마무리한다.


좋은 방법을 알았으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 보니, 눈으로 구경한 풍경과 경치들만 사진과 함께 기억에 남아있다. 그 마저도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진다. 이렇게 보면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반푼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글씨가 빼곡하게 쓰여 있는 관광지 안내판 앞으로 다가섰다. 오늘도 휴대폰 카메라로 신중하게 초점을 맞춘다. 이곳 사람들과 대화를 못해서 그들의 삶과 인심을 제대로 알 수가 없으니, 이곳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희로애락과 역사의 단편이나마 꼭 읽어 보리라 생각하면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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