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어디로

책으로 남는 인생

by 상록수


© osalom, 출처 Unsplash


삶은 여러 생각 덩어리들의 조합이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에 따라 생각하고, 생각에 따라 다음 행동을 선택한다. 선택된 행동들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의 삶을 이룬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선택한 생각에 따라 전개되는 여러 가지 행동들의 총합인 셈이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은 다양한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사회·문화·정치적인 외부환경뿐만 아니라, 개인의 흥미·진로·삶·가치관·행복·불행 등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지식·감정 등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다양한 생각들을 하면서 평생 동안 살아간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생각하는 “생각의 양”은 얼마나 될까? 과학적으로 측정이 가능할까? 뇌의 활동을 측정하는 뇌파분석으로 가능할까? 인공지능(AI)으로 한 사람의 생각을 그대로 읽어 컴퓨터에 저장한다면 가능할까? 아마도 아직은 기술적·사회적으로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어떻게든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다. 다른 측정 방법은 없을까? 객관적이고 정확한 방법이 없다면, 관련성은 약하지만 어떤 사실에 비추어 추론하는 방법 말이다. 생각을 일일이 글로 써서 측정한다거나, “생각의 속도와 책을 읽는 속도가 같다.”는 가정을 하고 생각의 양을 정량적으로 추정해 보면 어떨까.


나는 책 1쪽을 집중해서 읽으면 약 90초 정도가 걸린다. 책 한 권이 250쪽이라면, 다 읽는데 22,500초가 걸리는 셈이다. 시간으로 계산하면 6시간 15분이다. 내 생각의 양은 6시간 15분마다 250쪽짜리 책 1권 분량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르고 생각의 속도와 질이 서로 다르겠지만, 생각이 멈추거나 수면 시간을 감안하면 하루에 책 3권 정도 분량이다. 유아 및 노년 시기에 생각의 속도를 감안하면, 80 평생을 우리가 생각하는 양은 책으로 약 8만 권 분량으로 추정된다.


책으로 8만 권이라면 어느 정도나 될까? 이는 소설 책 한 권의 두께가 약 13mm이므로 1km가 넘는 까마득한 높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828m도 이 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책 한 권의 무게가 350g 정도임을 감안하면 28톤 분량이고, 1.5t 트럭 19대 분량이다. 이렇게 보면 책 8만 권은 매우 방대한 양이다.


이러한 책들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담길까?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 가족들 생각, 학창 시절에는 놀이·꿈·친구·공부·선생님 생각이다. 대학생 시절에는 전공지식·이성친구·인생·동아리활동·장래희망 등으로 넓고 깊은 생각, 사회에 진출해서는 직장·사업·결혼·자녀·사회활동·인생관·세계관에 따라 살아가는 생각이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부부·가족·건강·소득·병원·질병·죽음·사후세계 등에 대한 생각들이다.


한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겪는 다양한 생각들. 생로병사·희로애락에 대한 생각들. 이러한 생각들이 개개인의 삶의 조건이나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서 참으로 다양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8만 권의 책 속에 “인생”이란 이름으로 담긴다. 그런데 흔히들 “인생은 순간”이라고 말한다.




https://www.seoul.co.kr/news/life/2023/05/19/20230519500068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해리슨 포드는 2023년 칸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때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수상소감을 말했는데, 많은 관객들에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었다.


“죽을 때가 되면...... 주마등처럼 지난 삶이 스쳐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방금 제 인생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갔네요”


인생은 이렇게 눈앞에서 짧은 순간에 스치듯 지나간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삶 속에서 떠올랐던 8만 권의 생각들 또한 한 순간에 사라진다. 80 평생 살아왔던 8만 권의 방대한 생각들이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없어진다. 그 누구의 생각도 예외 없이 한줄기 연기처럼 덧없이 어디론가 영원히 사라진다.




© _dillongroves, 출처 Unsplash

얼마 전 한 유명 소설가의 책을 읽었다. 읽다 보니 그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지만, 평소에 습작으로 써 놓았던 글들을 자제분들이 모아서 책으로 출간했던 글이었다. 자제분들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그 습작들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다.


수많은 습작들을 써 놓고도 등단을 못한 사람들의 생각은 또 어떠한가. 한 나라를 이끄는 황제의 생각도, 지리산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사는 어느 도인의 생각도 우리네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다. 비록 이 세상에 좁쌀만 한 자국이라도 남기고 싶지만, 죽음으로써 육체와 함께 방대한 생각들은 안개처럼 모두 사라진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질까? 우리의 생각이 육체와 함께 캄캄한 땅 속에 묻히는 것도 아니다. 육체에서 이탈하여 푸른 숲에 잎사귀나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것도, 물을 따라 흘러 흘러 강과 드넓은 바다를 유랑하는 것도 아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흩날리는 것도, 저 하늘에 구름과 함께 정처 없이 떠도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 생각이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냥 새하얗게 지워져 버린다. 컴퓨터 디스크를 포맷하면 아무 내용도 없는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 파란만장한 내 생각을 아는 이 아무도 없고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허탈하게도 이 세상에서 나의 생각은 새하얗게 불태워진 사진처럼 아주 작은 바람에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내 생각은 어디에 있을까

캄캄한 땅 속에 있나

푸른 숲 속에 있나

드넓은 바닷속에 있나

흩날리는 바람 속에 있나

떠도는 구름 속에 있나

그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네.




© 8moments, 출처 Unsplash

어느덧 산 날이 살날보다 더 많아 인생이란 산을 내려간다. 이별을 고하는 가을 낙엽을 주워 냄새를 맡으며 건강에 대한 생각이나 늙어감에 대한 생각이 점점 깊어진다. 머지않아 나도 낙엽처럼 바람에 날리고 부스러질 텐데. 우리 할머니도 그랬고 아버지도 그랬던 것처럼, 머지않아 내 삶도 하얗게 지워지리라. 내 존재도 내 생각도 모두 사라져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리라.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이렇게 세상을 다녀가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다니 너무나 허무한 것이 아닌가. 허탈한 마음에 다가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와 눈썹이 거울 속에 빤히 들여다보인다. 그러니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하거나 나 자신을 속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찌해야 할까. 더 늦기 전에 길을 찾고 싶다. 내 존재가 내 생각이 허무하게 없어지기 전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방법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만이 아닌 듯싶다. 다른 사람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게다. 가수 조용필 님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노래 가사가 내 마음을 톡 하고 건드린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이러한 생각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 생각 다음으로 이어지는 나의 행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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