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몇가지 이야기
남태평양 미국령 괌(GUM)으로 출장을 갔었다. 호텔에서 해 질 녘에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걸어서 2분~3분 거리에 넓게 펼쳐진 해변이 보였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맥주를 몇 병 사들고 해변에 펼쳐진 산호모래밭을 맨발로 걸었다.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부드러움을 즐기며 걷다가 야자수 밑에 자리 잡고 비스듬히 누웠다.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며 해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사이로 마지막까지 붉은빛을 비추고 있었다. 게다가 잔잔한 바람이 저 멀리 남극에서 남태평양 파도를 타고 불어왔다. 석양의 붉은빛, 잔잔한 바람, 찰랑이는 파도, 맥주 한 모금의 시원한 맛이 온몸으로 느껴지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날의 이국적인 멋스러움과 기쁨은 오래도록 호사스러운 추억으로 남았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내 삶에 행복을 더하는 길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행복이 뭐가 그리 기쁜 일이겠나 싶겠지만, 행복한 추억을 다시금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밝아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행복에 효과가 있는 게 분명히 틀림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은 언제였을까. 대학합격, 내 아내와 첫 만남, 딸과 아들의 탄생, 경영지도사 합격 등등이다. 비록 지난 과거의 행복이지만 오늘 잠시나마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기쁨과 행복감을 재생하게 한다.
“행복하려거든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려라.”
행복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대상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변화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의 욕망과 기대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 날씨가 추우면 하늘의 날씨를 바꾸려 할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바꿔서 행복을 얻으려고 한다. 자신의 욕망과 기대는 바꾸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혼자서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려고 하면 할수록 행복은 멀어지고 그만큼 자신이 짓밟히거나 모욕을 당한다. 나아가 끔찍한 고통과 불행이 닥쳐오기도 한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평생을 불행으로 가득 채울 것인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인류의 발전에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나를 변화시켜 불행의 고리를 스스로 끊을 줄도 알아야 행복하다.
“행복하려거든 나 자신을 바꾸며 살라.”
행복해지고 싶으면 비교하는 마음도 버려야 한다. 요즘 같이 TV·인터넷·SNS 등이 발달한 세상에서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은 참으로 공허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불행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불화가 생기고 불행이 싹트기 때문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나는 현재에 머물러 있거나 뒤로 퇴보하고 있는데 가까운 친구가 잘되고 친척이 잘되는 것을 보고 그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속이 쓰린 것이라 마음에 상처가 생기고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꼴이어서 불행해지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거든 타인과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비교하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달고 적절히 조절해야 불행이 줄어든다. 행복의 씨앗은 비교가 아니라 조절이다. 혹시라도 마음속으로 비교하게 되거든 그 싹을 전지가위로 자르듯 싹둑 잘라내면서 내 마음을 조절해야만 좀 더 행복한 삶이 늘어나는 것이다.
“행복하려거든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행복한 삶을 위한 또 다른 길도 있다.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이다. 기대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 마음속 욕망과 욕구에서 나온다. 똑같은 상황에 처하더라도 기대가 낮으면 마음의 평온과 기쁨이 더 높아진다. 기대와 행복은 반비례한다. 기대가 낮으면 불평이 줄어들고 만족감이 높아지고 행복감도 훨씬 더 늘어난다. 나의 기대치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뒤바뀌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직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두 사람은 추석 명절에 동일한 선물세트를 받았다. 그런데 A는 만족을 느끼지만 B는 불만족을 느낀다. 왜, 그럴까? 각자가 기대하는 눈높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에 대해서 기대하는 성과가 서로 다른 것이다. 서로 주관적인 기대치가 다르다 보니, 동일한 상황에서도 감사와 불평으로 나누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행복을 느끼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앞에 사례에서와 같이 A와 B는 삶에 주관적 기대치에 따라서 감사와 불평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보았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어서 결코 채워질 수 없다. 그러니 나 자신의 욕구인 기대치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행복하려거든 세상의 성과·결과에 대한 욕망과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 더 높은 것 더 좋은 것만 마냥 기대하지 말고 조금은 내려놓고 나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면, 세상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한두 가지라도 더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하면 마음이 더 평안해지고 세상만사가 행복한 일로 가득하고 얼굴은 훨씬 더 밝아질 것이다.
“행복하려거든 기대치를 낮추고 살라.”
그렇다면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한 삶을 위해서 선각자들은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에 썼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여기에 옮겨 적었다. (출처 : 최정규, 《마케팅 경영 Ⅲ》, 지식과감성, 2021)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마음속으로 느끼는 행복은 형체가 있는 물체가 아니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입으로 먹어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 볼 수도 없다. 그렇다고 행복한 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향긋한 꽃 내음을 느끼고, 맛난 음식을 먹고, 따뜻한 손을 잡는 순간에 갑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느낌이며, 심리적으로 기쁘고 즐겁고 만족한 상태다. 행복이란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마음속으로 느끼는 만족감과 기쁨의 주관적인 감정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러한 행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독일 시인이며 소설가인 칼 부세(Karl Busse)는,
“산 너머 저쪽에 행복이 있다기에
나도 남들 따라 찾아갔건만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어요.”라고 했다.
행복을 멀리서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했고,
벨기에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마테를링크(Maurice-Polydore-Marie-Bernard Maeterlinck)는 그의 저서 《파랑새》에서,
“행복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행복의 조건에 대해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는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에서,
“인간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순수한 ‘선의지’”를 주장했고,
유대인 정신문화의 원천으로 꼽히는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성경》에도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행복이 아니라 비록 불행한 일일지라도, 그 속에서 어떻게든 감사의 이유를 습관적으로 찾으며 고맙게 여겨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인간이 삶의 여정에서 인생의 목적이나 추구하는 것에 정해진 정답이 있을까?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의 선각자들이 하는 말을 가슴에 담아 삶의 지표로 삼는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불행을 겪더라도 앞으로 다가올 기쁨과 행복을 그리며 살아낸다. 가까운 사람들과 사회와 관계를 맺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선이라도 베풀고 주변을 감동시킬 때에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삶 속에서 선을 행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좀 부족하더라도 성실하게 삶을 살아간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법과 질서·도덕과 양심의 무게를 느끼면서 기쁨과 행복을 추구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여기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본인은 그것이 행복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한다.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행복하다는 뜻이다. 때로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미친 듯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빨리 찾아 거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만, 삶의 여정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일들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스스로 명답을 찾으며 살아야 한다. 나 스스로가 나의 산타클로스가 되어 내게 행복을 전해주어야 한다. 기왕이면 나와 이웃들이 선을 행하고 작은 행복을 이루며 하루하루를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 한다. 나와 더불어 가까운 이웃들이 좀 더 고상하고 아름다워지도록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