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세상이 'S'화 되어가고 있다.
인문학의 멸종. 이런 엄청난 말이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문학들보다 실용서가, 고전 철학보다는 과학 논문을 읽는 것이 더 멋져보이는 시대.
내 주위가 특히 그런 것일까.
가벼움과 무거움.
세상이 무거움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고전적인 가치 같은 것들. 어린아이의 웃음이나, 자유라던가 평등이라던가 하는 실체없는 아름다움.
가벼움을 좇는 사람들에게는 허영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대장정'을 사명으로 갖는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만한 것들.
밀란 쿤데라가 말하는 바도 십분 이해한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서는 생각없는 무거움을 경게할 필요가 있겠다고도 느꼈다.
하지만 그런 무거움마저 없다면 세상이 온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스스로를 맡겨버린 자들밖에 없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런지.
지리멸렬하고 자기모순적이고 갈피를 못 잡는 그런 신념들이지만 그것이 사람을 짐승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카레닌을 비롯한 개들은 낙원에서 쫓겨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럼 나는 낙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다, 라는 것이 결론이다.
고대에서 중세, 중세에서 근대, 근대에서 현대로 인간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퇴화한 부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인류 발전의 역사라고 부르고 싶다. 인권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것을 보장하(는 척이라도 하는) 법률들도 생겼다. 지금이 진정 노예제가 존재하던 그 때보다 퇴화했는지?
인문학이 왜 필요하냐고. 그런 오글거리는 N들은 왜 필요하냐고.
그들이 있어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을 더디게 만드는 것이다.
위선적으로 보이는 대장정이 있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의사들이 전쟁 중에도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을 사는 것은 중요하다.
존재의 가벼움을 인정하고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비록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 존재하기 위해 고민하는 어느정도의 무거움도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