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 percent Nov 19. 2023

에이 이런 실수를? 내가 하네.

외줄타기 외과인턴 -2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오프 저녁.


휴대폰이 세 번 울렸다.

그 휴대폰을 바로 봤어야 했는데..


수술과의 인턴은 수술 전날 저녁, 수술 동의서를 받으러 병원에 출근한다.

그게 설령 일요일이더라도, 당연히 오프인 일요일이더라도.

동의서를 받지 않으면 수술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병동에서는 수술 전날 이 동의서가 받아져 있는지를 항상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오프 저녁.

동의서를..

완전히 까먹어버렸다.


변명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그 날 점심에 경기도를 다녀오느라 피곤했다던가, 그 주가 유독 힘들어서 정신이 없었다던가하는.

하지만 결국 이유는 하나다.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요? 방심해서


휴대폰이 세 번 울리고, 무음이라 그대로 부재중으로 찍힌 전화 세 통. 그리고 그 부재중을 1시간이 지나서야 확인한 뒤통수는 식은땀으로 차가웠다.


큰일났다.


인턴이 하는 실수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는데 환자에게 위해가 갈만한 아주아주 큰 일은 인턴에게 극히 드무니 그건 제외하고 보자.


남은 실수의 큰일남 정도는 다음 단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판단된다. 내가 다시 하면 되는 일은 작은 일, 전공의 선생님 업무가 지연되면 중간일, 교수님이 기다린다? 이건 큰 일.


다행인 점은 인턴은 주동의서가 아니라 부동의서만 받는다는 점. 그러니까 환자에게 큰 위해는 없다.


이후의 알고리즘을 따라가보자면, 수술은 교수님의 영역으로 만에 하나 모두가 오늘 이 동의서를 잊었다면..

내일 마취과에서 입실을 시키지 않을 것이고, 수술이 지연되고, 음, 큰일이다.


택시를 타고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하자 10시 30분. 

이미 빠른 취침을 하는 환자분들은 한두분씩 잘 준비를 하고 계셨다.


정신없이 동의서를 준비하고 설명하고 사인을 받는 동안에도 마음은 끝없이 복잡했다.

내가? 이런 실수를? 대체 왜 까먹었지?

병원은 실수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곳인데. 만약 병동에서 전화를 주지 않았다면 최소 당직한테 그대로 넘어갔을 일이 아닌가.

안 그래도 힘들었을 당직에게 일을 더 얹어줬을지도 모른다니.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나름 바짝 긴장한채로 큰 실수없이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풀어져있었나보다.

정신 차리자.

휴대폰 무음모드는 없애버리고.


그리고 드는 생각인데, 남의 실수에 더 관대해져야겠다.

실수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재앙같은거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담당의사, 인턴일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