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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 percent Nov 15. 2023

당신의 담당의사, 인턴일 수 있다.

외줄타기 외과인턴 -1

뇌를 빼고 일하는 것이 대학병원 인턴의 장점이자 단점이라지만, 거기서 벗어난 존재가 하나 있으니


이름하여 차트인턴.


말 그대로 차트를 잡는 인턴이다.

"판떼기"라고 불리는 클립보드는 필수다. 항시 끼고다닐 물품이니 되도록이면 기분이라도 좋게 귀여운 것으로 장만하자.  


차트인턴은 환자의 검사결과를 보고, 매일매일 교수님과 회진을 도는, 그 과의 유사 레지던트가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 드레싱이나 동의서 받기같은 인턴일도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인턴 중에서도 상급 난이도를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뇌를 안 쓴지 벌써 5개월이 됐는데 나보고 환자를 보라고??!

차트인턴에 배정되고 벌벌 떨며 인계를 받으러 가는 길. 내 선임 차트인턴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척척 처방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프로-페샤날해보이던지. 다음달 차트인턴을 지원했다는 그에게서 레지던트 1년차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내가 저렇게 할 수 있는걸까..


처음으로 자신감 0%로 출근하는 날.

환자 파악을 하느라 밤을 꼴딱 새고 라운딩을 허겁지겁 돌고나니 벌써 회진 시간이 되어있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시사항을 받아적으니 회진 시간은 삽시간에 끝나있었다. PK 때는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었는데.


처방을 하나씩 붙잡고 처리하니 어느새 벌써 12시. 차트인턴의 인턴잡은 가장 후순위가 된다. 띠링띠링 울리는 간호사 선생님들의 노티부터 처리해야한다.

환자의 vital이 이상해요, i/o가 positive입니다, 아프다는데 어찌할까요. 저는 어찌합니까..

정신없이 몰아치는 콜들 속에서 가장 많이 되물어본 것은


무적의 한마디 "보통.. 어떻게.. 했나요..?"


이 한마디가 무적인 것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가 초보임을, 나는 이전 선임들의 지혜를 한번에 파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헤쳐나간 콜들을 뒤로 하고 이제 오후회진 준비를 위한 라운딩을 돌 시간이다.


눈 앞에 미뤄놓은 드레싱 잡이 아른거리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정시퇴근은 저멀리 날아가고 없다.

오후회진까지 돌고나면 그래도 한숨 돌릴 수 있다.


차분히 앉아 그 다음날 정규처방에서 바뀐 것을 정리하고, 그 다음날 수술 일정을 보다가..


"선생님 드레싱 오늘 안에 해주시나요? ㅜㅜ"


라는 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뛰어가는 하루.


그것이 차트인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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