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엄마의 기미상궁 역할을 하며 마지막 간을 맞추고 있던 그때,
둘째 조카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가게를 뛰어 들어왔다.
“할머니!!!!”
무슨 일이라도 난 건지 놀라 뛰어나간 엄마에게 둘째 조카는 드디어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었다고 방방 뛰며 자랑하고 있었다.
둘째 녀석도 드디어 성공했다. 두발자전거.
한 달 전, 아빠는 첫째 조카에게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중심을 못 잡는 첫째의 자전거 앞뒤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한참을 함께 뛰셨다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텐데.... 아빠의 셔츠가 땀으로 완전히 젖었을 때, 조카는 자전거 타기에 성공!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아빠가 찍어온 영상에는 세상 신나는 표정으로 바람을 가르는 첫째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 모습에 예전 기억들이 소환되었다. 아빠는 30년 전에도 나의 자전거를 잡고 동네를 같이 뛰어주셨었다.
그렇게 첫째 조카가 자전거를 타게 된 그날 밤, 공원에서의 에피소드를 신나게 이야기하시던 아빠는 일주일이 넘게 다리에 침을 맞으셔야 했다.
아빠는 첫째의 성공을 시작으로 올해 1학년이 된 둘째 조카에게도 두발자전거를 가르쳐 보시려 했는데... 녀석은 굳이 굳이 네발을 고집했다. 누나의 두발자전거가 부러웠지만, 한번 도전했을 때 생각대로 안 되는 걸 겪은 후,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타야 했는데, 그게 안 되자 오히려 네발 자전거를 고집하며 내게 자신은 절대 두발은 안탄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랬던 녀석이 두발자전거에 성공해 혼자서 작은 공원을 3바퀴 돌고 난 후, 할머니께 자랑을 해야겠다고 가게로 홀로 뛰어온 것이었다. 방방 뛰며 방금 전 일을 설명하며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빠짐없이 쏟아 놓는 녀석. 눈을 반짝이며 멋지다고 박수를 백번 치는 엄마. 이 둘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좋겠다, 임마.
뒤이어 가게로 들어온 첫째 조카와 동네 친구들. 아빠는 이들 무리를 이끌고 아이스크림을 쏘시겠다고 마트로 향하셨다. 가게를 나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지상에서 10cm는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이제, 자전거 경력이 30년이 되어 간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 처음 자전거를 배웠고, 성인이 된 후 자전거 한 대로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두발자전거에 첫 도전을 했을 때, 내 자전거 뒤를 잡아주던 아빠를 믿었기에 자신 있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고, 난 그 동력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다. 요즘, 조금 힘 빠진 일상을 살고 있어서 였을까. 가게로 뛰어 들어와 방방 뛰던 조카 녀석의 얼굴을 보니,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빠가 잡고 있으니 앞만 봐!"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오직 아빠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자신 있게 페달을 밟았던 그때.
난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
겉으로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의욕이 없는 삶은 계속되고 있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불안해하며 계속 흔들리고 있다. 내가 잘하는 건지, 이대로 내 인생이 괜찮은 건지 끊임없이 물으며
난 지금 비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엄청나게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는 않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미친 듯이 흔들려도 주저앉지 않았던 이유는 아직까지도 나를 잡아주고 있는 아빠의 시선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두발자전거에 성공한 두 녀석들은 앞으로 본인의 길을 달려갈 것이다. 그 길이 언제나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지만은 않겠지. 그래도 달리는 그 길에서 처음 자전거를 잡아준 할아버지의 그 손길과 눈빛을 기억한다면 두 녀석의 앞길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비틀거리긴 해도 쓰러지진 않을 거란 확신.
아빤 앞으로 일주일간, 또 다리에 침을 맞으셔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손주들이 자전거 타는 영상을 돌려보시며 웃고 계시겠지.
내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봐야겠다. 바람을 가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던 그때를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