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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ul 15. 2020

모기와의 전쟁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에게

탁, 타닥.      


드디어 잡았다. 몇십 분간의 대치였을까.

책장 앞으로 쓱 날아올랐던 놈은 전기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졌고, 나는 얼른 휴지를 찾아 녀석을 짜부시켜 쓰레기통에 버렸다.      


여름이 왔고.

또, 시작됐다. 모기와의 전쟁.

          



모기향을 켰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놈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앞을 유유히 날아오르는 꼴을 몇 번을 보면, 그야말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3시간을 더 쓸 수 있다고 해서 산 매트는 3시간마다 갈아줘야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꽤 효과 있던 리퀴드 제품은 이젠 택도 없어졌다.      


작년 이맘때,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던 모기.

난 벽에 앉아 있던 놈들 위로 손바닥을 짝짝 내리쳤고, 내방 4면 곳곳에 놈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거뭇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굳이 흰 벽에 죽이지 않아도 됐었는데, 화가 많이 났던 탓도 있고, 그렇게 한 놈씩 처리하며 조금 쾌감을 느낀 것도 아주 쬐금은, 있었다.      


겨울 초반까지 나를 괴롭히던 모기들은 1월 즈음에서야 자취를 감추었고, 그것들이 사라지자 그들이 남긴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늦은 후회.      


곳곳에 남겨진 자국에 물감을 덧칠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고민만 하다 다시 여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집엔 이미 전기 모기채가 몇 년 전부터 있었는데, 난 굳이 쓰지 않았다. 부모님이 쓰고 계셨기 때문도 있고, 그닥 손이 가지 않아서 말이지. 하지만 성큼 다가온 여름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usb로 충전이 가능한 모델을 대(大) 자로 구매했다.      


4평도 안 되는 방에 모기를 잡자고 말이지.      


그날 이후, 놈들과의 본격 전쟁이 선포되었다. 사실, 그깟 피. 조금 가렵기만 하면 되니 큰 병 옮기지 않는다 하면 그냥 줄 수도 있다. 나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귓가를 앵앵 거리는 돌아다니는 거슬림. 그리고 내 눈앞에서 깔짝깔짝 날아다니는 뻔뻔함에 치가 떨려 살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모기채 양쪽의 두 개의 스위치를 눌러 놈들에게 휘두르자 타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몇 놈이 한번 떨어진 후 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목격하고 난 뒤엔 여러 번 전기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기 모기채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모기들이 탈 때,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난다. 맡아본 사람은 알지. 정말 토할 것만 같다. 그 냄새에 담긴 역한 기운을 쉽사리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전기 모기채는 꽤나 좋은 성과를 내주어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명확하게 죽였고, 닿기만 하면 100발 100중이었으니. 그런데 조금 무서운 것은 그 전류가 강해 조금만 여러 번 충격을 가하니 모기가 모기채에 눌어붙기도 했고, 몇몇 모기들은 전기 충격 한방에 다리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 방에 침입한 검지만 한 큰 모기를 잡았는데, 몇 번 타닥타닥 전기 충격을 가하니, 그 큰 모기의 다리가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때의 끔찍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한때, 자존감이 바닥이던 시절. 집에서 누워만 있던 날 보며 내가 우리 집에서 모기 같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돈도 벌고 있고, 그냥저냥 살고 있지만 내 삶이 치명적이지 않게 적당하게 부모님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혐오스러워졌다. 그 생각 때문에 내가 싫어서, 내가 너무 미워서 그렇게 벽을 짝짝 내리쳐가며 놈들을 죽였는지도 모른다. 놈들을 죽이는 게, 내 안의 모기를 죽이는 거라도 되는냥.


한참 동안 그렇게 놈들을 죽여 가며 난 결심했다. 앞으로 살면서 두 번 다시는 이런 느낌을 받는 삶을 살진 않겠다고.      




그런데, 지금. 난 수많은 모기떼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수많은 모기떼가 몇 명의 인간에게 빨대를 꼽고 피를 빨아먹고 다니는 중이다. 정말 가관이다. 그것도 모자라 모기 주제에 염치도 없이 인간의 삶을, 인간의 목숨을 조롱하고 있다. 그 모습을 목격하며 뒷목이 쭈뼛 섰다. 놈들의 몰염치함에.      


적당히 피를 빨고 사라져 준다면 그까짓 피, 줄 수도 있다. 욕하고 몇 번 긁는 것 정도는 감수하겠는데, 도를 넘었다. 인간 목숨의 위협을 넘어섰다. 그 더러운 빨대로 빨아먹는 게 인간의 삶이고, 인간의 고결함이라니 분통이 터진다. 놈들이 스스로 모기임을 자각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그들은 모기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은 두 갈래 길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내가 되는 길과 이런 나를 정당화하는 길.

너무도 당연하게 두 번째 길을 선택한 이들에게 오늘도 치가 떨린다.      




매일 밤, 난 전투 중이다.

고작 4평짜리 방 안에서 모기와 대치한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눈으로 사방을 경계한다. 놈들이 날아오르는 순간, 모기채를 뻗어 놈들을 튀겨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그깟 피 정도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지금부터, 또 하나의 제대로 된 싸움을 준비할 시간이다.

그깟 모기들 소탕.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지도 몰라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끔찍함에 치가 떨릴지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계절이 흘러 그들이 소멸되는 것을 기다리기엔 지금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한 손에 모기채를 들고, 밤을 기다린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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